사랑 1
70세에 거의 다 와 가는 한 어른이 청년 시절의 사진을 한 장 보여 주셨다.
배경은 시장.
등장 인물은 한 청년과 여러 명의 7세 전후로 보이는 아이들.
함께 시장 나들이를 하는 사진.
청년은 두 아이와 손을 꼭 잡고 걷고 있었다.
청년의 앞뒤로 다른 아이들도 함께 걸으며 시장 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는 말씀하셨다.
"저 사람이 접니다. 스물 일곱 살 때쯤인가? 창신동에 있는 시장으로 아이들이랑 시장 나들이 나왔을 때 사진이에요. 참 용감했죠? 혼자서 저렇게 여러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허허."
그러더니 한 마디를 덧붙이셨다.
"저 아이들 이름 한 명 한 명 다 기억나요."
때는 1980년대 중반쯤?
창신동 작은 봉제 공장이 많던 지역.
농촌에서 상경하여 언덕 꼭대기에 자리잡은 가난한 부모들이 모두 공장에 나가고,
아무도 돌보는 이 없던 아이들을 돌보는 청년들.
그 때는 거대담론의 시대였다. 젊은이들의 정의감과 양심이 반민주화 운동을 향했던 시대.
그게 주류였던 시대였다.
그렇다면 이들의 관심과 활동은 비주류 쪽에 가깝지 않았을까.
빈민가 야학을 위해 들어온 청년들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아이들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공간이 없어서 천막을 쳤다고 한다.
청년들은 그 공간에서 아이들과 어울려 지내기 시작한다.
함께 지낼 교사를 뽑는데 '가난을 이해하는 사람'을 뽑고 싶었다고 하셨다.
가난한 아이들에게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하면 안 되니까. 아이들을 잘 자라도록 도움이 되어야 하는데 해를 입히는 어른이 되면 안 되니까.
그렇게 그 일을 하려고 리어카를 끌고 돈을 벌러 다니고,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을 해야 할까 페다고지 바카라을 읽고 토론을 하며,
아이들을 해방시키는 사람이 되자 하고,
노동자든 대학생이든 동등한 인격이니 베푸는 사람이 아니라 동료가 되겠다 하고,
그럼에도 결국 '돕는 사람'밖에 되지 못하는 것을 고민하였다.
구술서에는 결국 '돕는 사람', '시혜를 베푸는 사람' 밖에 되지 못한 것 같다'고 쓰여 있었다.
진짜를 하고자 하는데 진짜가 아닐까 봐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내가 몸담고 있는 나의 사랑하는 일터, 그곳을 처음 일군 분 중 한 분의 이야기이다.
나는 사랑을 모른다.
그런데 이게 사랑이라는 것은 알 것만 같다.
출발은 사랑이 아니었을까.
어떤 행동을 하면서 노력이나 용기가 가미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랑의 행동이 아니다. 여기에 예외란 없다.
사랑할 때 가장 먼저 노력해야 할 일은 상대방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는 그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인다. 즉, 그의 성장에 관심을 갖는것이다. (중략) 누군가에게 관심을 기울이기 위해 현재 몰두하는 일을 제쳐두는 (중략) 노력이 필요하고 적극적으로 의식을 바꿔야 한다. 관심은 의지의 행동으로서, 정신의 타성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인 것이다.
- 스캇 펙, <아직도 가야 할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