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지를 치우다

믿음과 신뢰를 생각하며

by소망안고


작은 베란다.

의자에 앉아 창밖을 바라본다.
눈앞에는 아파트 건물이 서 있고
아래로는 차들이 쉼 없이 지나간다.

저 차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누군가는 집으로,
누군가는 일터로,
또 누군가는 약속한 곳으로 가겠지.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차들이
오늘은 조금 부럽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어서.

문득
‘믿음’과 ‘신뢰’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믿는 마음.
믿고 의지하는 마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참 중요한 것들이다.

하지만 아무에게나
줄 수 있는 마음은 아니다.

믿음과 신뢰는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쪽에서 아무리 믿어도
다른 한쪽이 그 마음을 무너뜨리면
그곳에는 더 이상 믿음이 남아 있지 않다.

의지하고 싶어도
기댈 곳이 없으면
신뢰라는 말도 점점 멀어진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믿음과 신뢰라는 단어를
아무에게도 사용하고 싶지 않다.

누군가를 믿지 않겠다는 뜻인지,
다시는 의지하지 않겠다는 뜻인지
나도 아직 모르겠다.

그저 지금은

그 두 단어를
내 마음에서 잠시 치워두고 싶다.

그리고
내가 다시 어디로 가야 할지
천천히 생각해보고 싶다.

창밖으로
차들이 계속 지나간다.

나는 여전히
의자에 앉아 있다.

하지만 어쩌면

목적지가 없는 게 아니라
아직 정하지 못했을 뿐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