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흔히 우리는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을 보며 ‘사람다운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반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 ‘사람답지 못하다’고 평가한다.
그렇다면 그 이성적인 판단과 행동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사람의 감정과 행동을 조절하는 데 뇌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렇다면 뇌가 병들어 한 사람의 감정과 행동이 달라졌다면,
우리는 그 변화를 어디까지 그 사람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왜 지금 알지도 못하는 뇌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남들보다 스트레스 지수가 높고 성격이 꽤 까다롭기는 했지만,
그래도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려 애쓰던 사람이 있었다.
자신의 딸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했고,
아내를 위해 희생했으며,
강아지를 귀여워하며 간식을 챙겨주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사람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유전자 변이로 인해 뇌 속 미세혈관이 다발성으로 손상되는 백질뇌증, ‘카다실(CADASIL)’이라는 희귀 질환을 앓고 있다.
40대 초반,
지독한 편두통에 시달리던 어느 날 뇌경색이 처음 발생했고, 이후 여러 차례 뇌졸중을 겪었다.
첫 발병 후 십여 년이 지난 지금, 그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다.
딸아이를 그토록 사랑하던 사람이
“내 딸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아내에게 헌신하던 사람이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다.”라며 원망한다.
강아지를 귀여워하던 사람이
동물에게 욕설을 퍼붓고 위협을 가한다.
가족을 자신을 버린 사람이라고 의심하고,
타인에게는 가족을 험담하며 자신을 피해자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자신의 틀 안에 가족을 밀어 넣고,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릴 적 가족을 괴롭히던 아빠의 모습이 떠오른다.
술에 취해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던 아빠와는 다르다.
그는 몇날 몇일 문자로, 말로 사람을 협박하고 위협한다.
몸에 피멍이 드는 것은 아니지만, 정서적인 폭력이 내 마음과 딸아이의 마음속을 가득 채운다.
숨이 막힌다.
.
.
그가 보낸 문자 속 '1' 만 보아도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가슴에 커다란 불덩이를 안고 있는 것만 같다.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불덩이가 터지지도 않은 채 속을 바짝바짝 태운다.
금방이라도 불길이 솟구칠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린다.
처음에는 그저 불쌍했다.
아픈 사람이니까.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내가 안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병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이해하려고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아픈 사람이라는 이유로, 나는 어디까지 견뎌야 하는 걸까.
지금 이렇게 글이라도 쓰지 않으면 내가 먼저 미쳐버릴 것 같다.
마음속에 쌓인 앙금을 밖으로 토해내지 않고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다.
누군가는 쉽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냥 헤어지면 되는 것 아니야?”
하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현실 앞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오랫동안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다.
그가 분노와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화를 내기 시작한 지 벌써 4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그저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증상이 더욱 심해지면서 문득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는 평생 아빠의 폭력을 어떻게 참고 살아왔을까.’
그리고 곧바로 더 가혹한 질문이 나를 향했다.
‘나는 왜 내 딸에게 내가 어린 시절 겪었던 그 지옥 같은 환경을 똑같이 겪게 하고 있을까.’
그 순간 마음이 무너졌다.
나는 내 딸에게 이런 삶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
그리고 나는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
분명 벗어날 방법이 있을 텐데.
내가 아직 찾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스스로 바꿀 자신이 없어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일까.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하는 일조차 쉽지 않다.
조용히 기도조차 올리지 못한 채,
혼자 카페에 앉아 있는 지금 이 시간에도 마음은 쉬지 못한다.
내 안의 작은 코끼리가 다시 나를 괴롭힌다.
스스로는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얇은 줄에 묶여 꼼짝하지 못하는 거대한 코끼리처럼,
나 역시 무엇이 나를 붙잡고 있는지 알면서도 쉽게 움직이지 못한다.
바카라임감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어쩌면 그 모든 것이 뒤섞여 있는지도 모른다.
아픈 사람을 버릴 수 없다는 마음과,
그렇다고 나와 내 딸의 삶까지 무너뜨릴 수는 없다는 마음 사이에서 나는 매일 흔들린다.
그를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상처받고,
상처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또다시 그가 불쌍해진다.
어쩌면 가장 힘든 것은 이것인지도 모른다.
한 사람을 이해하는 것과,
그 사람 때문에 내가 고통받는 것을 견디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
그가 아픈 사람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 역시 상처받지 않아야 할 사람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조차 오랫동안 어려웠다.
이제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내야 하는가.
내가 사랑했던 사람을 어디까지 이해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를 이해하는 동안 무너져 내리는 나와 내 딸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이대로 살아갈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제,
나는 어디에서부터 한 걸음을 떼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