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운함은 기대에서 시작된다

관계가 끝나는 자리, 인연이 이어지는 자리

by소망안고

다른 환경, 다른 시간, 전혀 다른 소통의 방식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만나 이루어진 세상.

우리는 매일 그런 세상 속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에 부부도, 친구도, 온라인 게임의 동료들도 결국 서로 완전히 다른 타인이 만난 것이다.

이토록 다른 이들이 만나 부딪히며 살아가니, 오해가 생기고 그 오해가 쌓여 다투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진다.

왜 어떤 인연은 갈등 속에서도 계속 이어지고,

어떤 인연은 끝내 끊어지고 마는 걸까?


정답은 없을지라도,

내가 찾아낸 답은 '대화와 소통', 그리고 '상대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 있다.


상대를 내 기준으로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상대를 결코 이해할 수 없다.

나아온 길도, 성향도, 성격도 모두 다른 타인을 내 틀에 맞추려 하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왜 저럴까?', '왜 저렇게밖에 못 할까?'라는 의문이 거듭되면

이해는 오해로 바뀌고, 오해가 쌓이면 대화의 문이 닫힌다.


소통이 막힌 자리에 싸움이 번지고,

결국

"너는 나랑 안 맞아",

"너와는 대화가 안 돼"라는 서글픈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한동안 나와 너무나 맞지 않는 사람이 있어 깊이 고민하고 괴로워했던 적이 있다.

물론 지금도 완전히 편안한 것은 아니지만, 내 안에서 작은 변화가 시작되었다.


'내 기준으로 저 사람을 보지 말자.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이니,

저 사람은 그저 저런 사람이라는 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보자.'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을 마주할 때마다

'저 사람의 성향이니까', '저렇게 살아왔으니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하려 애썼다.


그러자 '왜 저러지?' 하며 치솟던 거부감이 조금씩 줄어들었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비록 아직은 선뜻 말을 건네기 부자연스러운 거리가 남아 있을지라도.


그렇다면 오해가 쌓이고 소통이 막혔다고 느껴질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오해가 앙금으로 굳어지기 전에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제대로 된 대화를 하고 있을까?

내가 하고 싶은 말만 쏟아내고, 듣고 싶은 말만 골라 듣는 것을 대화라 할 수는 없다.


나의 입장을 잠시 내려놓고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으며,

'왜 저런 생각을 했을까' 상대의 처지에서 헤아려볼 때 비로소 진짜 대화가 시작된다.


그러나 그 평범한 진리가 현실에서는 참 어렵다.

서로가 자신의 입장만을 고집하며 들어주지 않기에, 인연은 상처를 남긴 채 잘려 나간다.


문득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그동안 어떤 대화를 해왔는가.

어떤 마음으로 상대를 바라보았는가.

왜 나는 늘 내 입장만을 고집하고, 내 기준으로만 상대를 재단하려 했을까?


그 질문의 끝에서 발견한 단어는 '서운함'이었다.

서운함은 상대에게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이다.

'내가 이만큼 했으니 너도 나한테 이만큼은 해줘야지'라는 은밀한 기대감.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누군가에게 기대하고 서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향한 관심과 애정이 내 안에 존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마음이 있기에 우리는 관계를 맺고 인연을 이어나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스쳐 지나가는 만남을 소중한 인연으로 가꾸어 가기 위해, 이제는 다짐해 본다.

내가 기대하는 만큼 나 역시 먼저 내어주는 것.

내 기준이라는 안경을 벗어던지고 상대의 성향과 존재 자체를 인정해 주는 것.


그리고 나의 말보다 상대의 목소리에 먼저 귀를 기울여주는 것.

오늘도 나는 내 안의 기준을 조금씩 깎아내며, 타인이라는 넓은 바다를 향해 한 걸음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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