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거대한 코끼리가 된 나에게

학습된 무기력의 쇠줄을 단숨에 끊어내지 못하는 이유

by소망안고

늦은 밤,

내일 해야 할 일들을 앞에 두고 쉽게 집중하지 못한다.

머릿속을 스치는 온갖 생각들에 사로잡혀 결국 조용히 글을 써본다


내 머릿속을 집요하게 맴도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이 주장한 '학습된 무기력'에 등장하는 코끼리 예화다.


서커스단의 사육사는

아직 힘이 약한 어린 코끼리의 발목에 두꺼운 쇠줄을 묶어 커다란 나무나 철제 말뚝에 고정해 둔다.

어린 코끼리는 벗어나기 위해 며칠 밤낮을 발버둥 치지만, 그 어린 힘으로는 쇠줄을 끊지도, 말뚝을 뽑지도 못한다.

발목에 붉은 상처만 입은 채 매번 실패를 경험할 뿐이다.

그 반복되는 절망 속에서 코끼리는 뼈저리게 학습한다. '내가 아무리 애써도 이 줄을 벗어날 수 없구나.'


시간이 흘러 코끼리는 거대한 몸집을 갖게 된다.

마음만 먹으면 말뚝을 뿌리째 뽑아버리거나 쇠줄을 단숨에 끊어버릴 수 있는 엄청난 힘을 가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어른이 된 코끼리는 더 이상 줄을 벗어나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이제는 쇠줄 대신 얇은 새끼줄을 묶어두어도, 그저 땅에 살짝 꽂아둔 조그만 나무 말뚝에 묶어놓아도 무기력하게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다.

자신을 묶고 있는 건 실제 밧줄이 아니라, 과거에 각인된 심리적 한계라는 사실을 모른 채.


오늘 밤,

질문 하나가 나를 깊이 괴롭힌다.

'왜 그 무기력한 코끼리가 바로 나 자신 같았을까.'

어릴 때부터 수도 없이 마음을 다잡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강하다", "독하다"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악착같이 견디며 살아온 건,

단 하나, 아빠처럼 살고 싶지 않아서였다.

아빠보다 더 잘 살고 싶었다.


어릴 때 내가 겪었던 가정환경,

성인이 되어 마주했던 그 막막했던 환경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다.

누구나 그렇게 힘들게 버티며 사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세상은 다른 모습으로도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알았다.


더 마음이 아픈 건 지금 나의 모습이다.

반복된 한계와 실패 경험 때문에 내 마음이 병들어가고,

그 여파로 내 아이마저 아파하고 있는데도 나는 여전히 멈춰 서 있다.


내가 조금만 용기를 내어 움직이면 답을 찾을 수 있는 환경임에도, 스스로 상황을 바꾸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직접 끊어낼 수 있는 줄임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에 짓눌려 누군가의 구원만을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를 더욱 아프게 하는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왜 나는 내가 겪은 환경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하필 지금 알았을까.

' 차라리 모른 채 살았다면 억울하거나 힘들지도 않았을 텐데,

왜 이제야 깨달아서 이토록 아파하는 걸까.


늦은 밤,

어린 시절 사슬에 묶인 코끼리의 잔상이 나를 괴롭힌다.

그리고 이제는 말뚝을 뿌리째 뽑아버릴 수 있는 거대한 힘을 가졌음에도, 여전히 어찌할 바를 몰라 그 자리에 서 있는 내 모습이 참 많이도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