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바라볼 것이가? 빛을 기다릴 것인가?

무기력한 오늘, 나는 어떤 생각을 붙들고 있을까?

by소망안고

오랜만에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

내가 가장 행복한 시간은 카페에 앉아 아메리카노 한 잔을 앞에 두고 글을 쓰는 시간이다.


늘 바쁘게 살아온 나는 이렇게 한가롭게 앉아 있을 일이 거의 없다.

오늘은 딸아이를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생겨, 내가 사는 동네의 조용한 카페가 아닌 도심 속 카페에서 잠시 여유를 누리고 있다.


그런데 여유로운 풍경과는 달리 내 마음은 여전히 무겁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

쉽게 벗어날 수 없는 환경.


나는 오랜 시간 반복되는 무력감과 싸우고 있다.

그 무력감은 단순히 의욕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알 수 없는 근육통과 몸의 긴장, 끝없이 자고 싶은 마음, 아무것도 하기 싫은 마음까지 함께 찾아온다.


심리학에서는 반복되는 무기력을 자신이 상황을 바꿀 수 있는 통제력을 잃었다고 느낄 때 나타나는 상태라고 말한다.

계속되는 좌절 속에서 결국 포기하게 되고, 감정마저 무뎌지는 것이다.


문득 나 자신에게 묻게 된다.

혹시 나는 이미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일까.

아니면 그렇게 믿고 있는 것뿐일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말씀이 떠올랐다.

'사람이 감당하지 못할 시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또 전도서는 말한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다고.


그렇다면 지금의 이 시간도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긴 어둠 끝에 새벽이 오듯, 언젠가는 웃을 날도 올 것이다.

피할 길 또한 분명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나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보지 못했을까.

혹시 나는 현실보다 내 생각에 더 사로잡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의 인생은 어쩌면 생각이 만들어 가는 길인지도 모른다.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은 기회를 발견하고, 어떤 사람은 절망만 바라본다.


그 차이는 환경보다 생각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어떤 생각의 소유자인가.


그리고 그 생각은 언제부터 내 안에 자리 잡았을까.

부정적인 사람은 시작부터 끝까지 부정을 바라본다.

반면 긍정적인 사람도 처음에는 흔들릴 수 있다.

하지만 끝은 다시 희망을 향한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부정적인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 생각에 머무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긍정을 선택하는 사람.


용서를 실천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에게 용서는 상대를 위한 일이 아니다.

나 자신을 이기는 일이고, 내 삶을 조금씩 긍정으로 바꾸는 원동력이다.

그리고 그 용서는 글을 쓰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오늘도 글을 쓰며 내 마음을 괴롭히는 사람을 떠올린다.

쉽지는 않겠지만, 지금 이 순간부터 용서하기 위해 노력해 보려고 한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