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작년 9월 진학한 대학원 학기다. 대학원에 들어온 이유는, 의미 있게 배운, 코칭 환경에 머물기 위해서다. 대학원의 존재는 몇 년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시간과 경제적 그리고 다양한 이유로 미뤄왔었다. 작년 8월, 모집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찾으려고 할 때는, 보이지 않던 공고였다. 접수 마감이 일주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 몇 년 동안 미뤄왔던 결단을 한순간에 했다. 원서 접수를 했고 면접을 봤다. 그리고 합격해서 생각했던 대학원에 진학했다. 빠르게 스쳐 간 일 년을 보냈다. 2년의 과정 중, 절반을 보냈다. 나름대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많은 성장이 있었고 새로운 도전을 했다. 생각지도 않았던 KCS 도전과 석사 이후 박사 과정까지 생각하게 됐다.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성장의 욕구 그리고 원하는 방향에 대한 목표가 뚜렷해졌다.
3학기 시작의 느낌이 남다르다.
첫 학기에도 시작이라는 설렘이 있었고 두 번째 학기는 다시 맞이하는 설렘이 있었다. 이제는 익숙해질 법한 3학기인데 묘한 설렘과 기대감이 올라온다. 1, 2학기와는 또 다른 설렘이다. 이 설렘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는, 조금 더 지나 봐야 알 것 같다. 마음을 명확하게 안다는 것이 이렇게 어렵다. 살펴보고 확인하고 다시 한번 바라봐야 한다.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도, 마음에 관해 생각하게 된다. 버스가 정류장에 멈췄다가 차선을 변경하는데, 뒤에서 큰 경적이 들려 왔다. 창가에 앉아 있던 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경적을 울린 차량이 이동하는 노선에, 버스가 진입하게 된 거다. 얼추 봤을 때, 사고 날 만한 가까운 지점도 아니었다. 이 상황에서 하나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떤 사람이 한적하게 호수에 배를 띄우고 있었다.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함이었다. 호수는 고요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여유로움을 충분히 즐기고 있었다. 몸도 마음도 편안한 그때,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뭔가의 부딪힌 느낌이었다. 호수 중간에 있었기 때문에, 돌이나 호수가 그 무언가에 부딪힌 것은 아니었다. 다른 배가 부딪쳤다는 것을 확신했다. 마음은 한순간에 깨지고 불같은 화가 끌어 올랐다. 감았던 눈을 부릅뜨고 편안하게 있던 몸을 일으켜, 부딪힌 곳을 바라봤다. 한마디 크게 쏘아붙일 심산이었다. 고개를 돌리고 잠시 있자, 이내 조용히 다시 자리를 잡아 앉았다. 자기와 부딪힌 배에는 아무도 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흘러온 배가 자신의 배와 부딪쳤다는 것을 알게 됐다.
왜, 불같은 마음이 내려갔을까?
배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배에 부딪혀서 고요했던 마음이 깨진 것은 바뀌지 않는 사실인데, 무엇이 이 사람의 마음을 바꿨을까? 생각이다. 자기감정이 올라온 그 원인이 예상한 것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마음이 가라앉은 이유다. 불같이 일었던 감정에는 이런 생각이 있었다. ‘누군가가 부주의해서 부딪쳤다. 그 부주의함이 나의 고요함을 깨뜨렸다. 그대로 둘 수 없다!’ 그 배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없는, 그 배에 화를 낼 수 있었을까? 물론 혼자 씩씩대면서 화를 낼 수는 있다. 이 사람의 마음이 가라앉은 이유는, 자기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부주의가 아닌, 그저 떠돌아다니던 배였다는 사실이 이 사람의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마음을 명확하게 알아야 하는 이유다.
마음은 세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감정과 생각 그리고 욕구다. 이 세 가지 중에 가장 먼저는 감정을 느낀다. 자기 배에 부딪힌 사람이 불같은 화를 냈던 것처럼, 감정이 올라왔다. 느껴지는 건 감정이지만, 그 감정을 불러온 이유가 있다. 바로 생각이다. 어떤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감정이 올라온 거다. 이 사람의 감정이 올라온 것은, 누군가가 부주의해서 자기 배에 부딪혔다는 생각 때문이다. 자기 생각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지만, 자기 생각이 틀렸음을 알게 됐다. 이 사람의 감정이 수그러졌던 이유다. 자기 생각이 틀렸음을 인지했기 때문에, 감정을 수그려 틀릴 수 있었다. 사람이 있었다면 자기 계획대로(?), 뭐라고 쏟아 붙였을 것이다. 빈 배에 화를 퍼부었다면, 이 사람은 자기 생각을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한 것이다. 아니면, 그 이유가 그저 자신의 고유함을 깼다는 사실로 여겼거나 말이다. 생각과 감정 그리고 욕구를 모두 종합했을 때, 이 사람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은 고요한 자기만의 시간을 갖기를 원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의 마음이다.
마음을 잘 알아야 한다.
내 마음을 잘 알아야 타인의 마음도 알 수 있다. 누군가에게 “그래! 네 마음을 알아!”라고 가볍게 이야기하지만, 그 마음 안에는 생각과 감정과 욕구 이 세 가지를 모두 알아차려야 한다. 이것을 알아차리지 않고 마음을 알았다고 하는 것은 기만이다. 타인을 기반하지 않도록 하고, 자기 자신을 기만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나의 감정은 무엇이고 그 감정은 어디에서 왔고, 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명확하게 파악하고 확인해야 한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며 다 인도 사랑할 수 있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된다.
[오늘의 질문]
“지금 나의 감정은 무엇인가?”
“그 감정은 어떤 생각에서 일어난 건가?”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