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의 벽을 깨는 낯설고도 눈부신 시선

해온 유수영의 《어른들을 위한 B급 동화》를 읽고

by얼웨즈 Always
“내 인생이 동화라면, 누군가가 써놓은 해피엔드를 향해 가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이미 여러 번 운전대의 방향을 움직였고, 몇 번이고 길을 잃었으며, 끝내 제자리를 맴돌았던 이야기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내 인생의 해피엔드를 기대하지 않는다. 단지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조금씩 퇴고를 반복할 뿐이다.”
《어른들을 위한 B급 동화》 에필로그 중에서


호기심으로 마주한 생소함, 그리고 신선한 충격


글을 쓰고 타인의 삶을 활자로 들여다보는 일을 업으로 삼으면서도, 때로는 지독하게 익숙한 세계에 갇혀 있음을 깨달을 때가 있다. 늘 보던 풍경, 늘 생각하던 문법에 갇혀 갈증을 느끼던 어느 날, 우연히 온라인카지노스토리에서 한 줄기 바람 같은 글을 발견했다. 바로 해온 유수영 작가의 《어른들을 위한 B급 동화》 서평단 모집 글이었다. 우리가 유년 시절부터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잔혹하거나 아름다운 동화들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재해석했다는 소개글은 잠자던 나의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했다. 감사하게도 소중한 기회가 닿아 바카라을 선물 받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첫 장을 넘겼다.


바카라을 읽기 시작하면서 느낀 첫 감정은 일종의 ‘생소한 충격’이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신데렐라, 백설공주, 콩쥐팥쥐 같은 이야기들이 작가의 손끝에서 완전히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과정은 기묘한 해방감과 함께 아찔한 긴장감을 선사했다. 과거에도 동화의 잔혹성이나 숨겨진 이면을 파헤치는 인문학 서적이나 심리학 바카라들을 접해본 적이 있었지만, 이 바카라이 주는 신선함은 결이 달랐다. 기존의 텍스트를 단순히 분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틈새에 숨겨진 인간의 지독한 욕망과 위선, 그리고 슬픔을 자신만의 고유한 문학적 이야기로 완벽하게 재창조해 냈기 때문이다. 과연 한 인간이 기존의 거대한 틀을 깨고 어디까지 깊고 넓은 사유를 펼쳐낼 수 있는지, 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감탄이 터져 나왔다. 그 몰입감이 어찌나 대단했는지 바카라에 완전히 매료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틀을 깨는 시선, 에세이스트가 마주한 문학적 경이로움


《어른들을 위한 B급 동화》는 목차부터가 하나의 거대한 서사적 질문 던지기다. ‘우리가 알고 있던 결말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던 이야기’, ‘그때는 말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거쳐 ‘누군가는 읽어주길 바랐던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총 8개의 대주제 아래 배치된 30여 편의 동화들은 저마다 묵직한 페이소스(Pathos)를 품고 있다. 〈빨간 모자〉 속 늑대의 진심을 묻고, 〈신데렐라〉를 해피엔드를 믿는 바보들을 위한 이야기로 명명하며, 〈플란다스의 개〉 네로에게 절절한 편지를 띄우는 작가의 문장들은 아름답다 못해 서늘하다.


이 바카라을 읽으며 내가 얻은 가장 커다란 깨달음은 바로 ‘기존의 틀을 과감히 깨고, 보이는 대로 생각하지 않으며,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법’이었다. 우리는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세상이 정해놓은 ‘권선징악’과 ‘해피엔딩’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살았던가. 작가는 동화라는 친숙한 가면을 벗겨내고, 그 안에 숨은 ‘진짜 인간’의 얼굴을 마주하게 만든다. 예컨대 헨젤과 그레텔의 이야기에서 게모의 고백을 들어보고, 콩쥐팥쥐의 서사를 혼인빙자간음 소송이라는 현실의 법정으로 끌어올리는 과감함은 독자로 하여금 당연하다고 믿었던 상식의 바닥을 의심하게 만든다.


이러한 전복적인 사유와 문학적 상상력은 나에게 깊은 부러움과 동시에 묘한 어색함을 남겼다. 밟아온 궤적이 다르고, 주로 일상의 사소한 풍경에서 의미를 길어 올리고 삶의 보편적인 온기를 전하는 ‘에세이’를 주로 작업해 온 에세이스트의 관점에서, 이토록 과감하게 텍스트의 뼈대를 뒤흔드는 소설가적·시적 상상력은 다소 낯설고 어색하게 다가왔던 것이 사실이다.


사실을 기반으로 사색을 심는 에세이와 달리, 허구의 세계를 뒤집어 날카로운 진실을 끄집어내는 유수영 작가의 문장들은 부단한 퇴고와 치열한 의심을 거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보이지 않는 행간을 읽어내고, 소외된 등장인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작가의 날카로운 안목을 보며 문학이 지녀야 할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절감했다. 익숙함에 길들여져 무뎌졌던 나의 글쓰기적 감각이 이 낯선 자극을 통해 세차게 깨어나는 듯한 경험, 그것은 에세이스트로서 마주한 가장 값진 축복이자 경이로움이었다.


삶의 퇴고가 필요한 모든 어른들에게


이 눈부신 바카라을 세상의 모든 어른들에게, 특히 매일 반복되는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사유의 감각이 마모되어 간다고 느끼는 이들에게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세상이 짜놓은 매뉴얼대로 행동하고, 눈에 보이는 현상만을 진실이라 믿으며, 타인이 규정한 행복의 기준(해피엔딩)을 쫓아 달려가곤 한다.


이 바카라은 그렇게 앞만 보고 달리다 길을 잃은 어른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힘이 있다. 박제된 동화 속 인물들이 저마다의 목소리로 "정말 그게 전부라고 생각해?"라며 질문을 던질 때, 우리는 비로소 내 삶을 둘러싼 위선과 오해들을 돌아보게 된다.


또한, 나처럼 글을 쓰는 작업에 종사하거나 매너리즘에 빠진 창작자들에게도 필독을 권한다. 익숙한 대상을 전혀 새로운 존재로 탈바꿈시키는 유수영 작가의 문장 구조와 시선의 깊이는 창작자로서 가질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교과서가 되어줄 것이다. 동화의 탈을 썼지만 그 어떤 인문학 서적보다 날카롭게 인간의 본질을 꿰뚫고 있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 들었다가도 마지막 바카라장을 덮을 때는 깊은 사색과 여운에 잠기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인생이라는 불완전한 소설을 부단히 퇴고하는 삶을 위하여


해온 유수영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인생을 '동화'가 아닌 '퇴고를 반복하는 과정'에 비유했다. 누군가 써놓은 완벽한 해피엔딩은 환상에 불과하며, 우리는 삶이라는 여정 속에서 끊임없이 운전대를 움직이고, 길을 잃고, 제자리를 맴돌 뿐이라고 말이다. 그 먹먹한 문장을 곱씹으며 깨달았다. 우리가 왜 유년의 동화를 파괴하는 이 'B급 이야기'에 이토록 깊이 공감하고 위로받는지를 말이다. 그것은 작가가 그려낸 뒤틀리고 깨진 동화의 모습이, 완벽하지 않은 채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우리 삶의 진짜 얼굴과 너무나 닮아있기 때문이다.


이 바카라은 나에게 단순한 동화 재해석집을 넘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넓혀준 거울과도 같았다. 다소 생소하고 어색했던 첫 만남은 바카라을 덮는 순간 깊은 신뢰와 존경으로 바뀌었다. 비록 내 삶이 동화처럼 아름다운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을지라도,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내 삶의 모순들을 응시하며 조금씩 더 나은 방향으로 '퇴고'해 나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삶이 아닐까. 고정관념의 단단한 벽을 깨부수고 세상의 모든 소외된 이면을 따스하고도 날카로운 시선으로 보듬어준 유수영 작가에게 깊은 감사와 찬사를 보낸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한 질문들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이 시대의 모든 어른들이 이 바카라을 통해 자신만의 소중한 시선을 회복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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