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밥 한 그릇의 선택이 세상을 바꾼다

일상이 바뀌어야 세상이 바뀝니다

by글짓고 밥짓는 백웅재


밥짓기를 배운다는 것은 단지 맛있는 밥을 먹기 위한 일일까요. 물론 그렇습니다.


좋은 밥은 한 끼를 바꿉니다. 같은 반찬도 더 맛있게 느껴지고, 식탁의 만족도도 달라집니다. 밥이 좋으면 식사는 안정됩니다. 반찬을 많이 올리지 않아도 되고, 자극적인 양념으로 입맛을 밀어붙이지 않아도 됩니다. 좋은 밥 한 그릇은 식탁 전체의 중심을 잡아줍니다.


하지만 밥짓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밥을 잘 짓게 되면 쌀을 다르게 보게 됩니다. 쌀을 다르게 보게 되면 논을 보게 됩니다. 논을 보게 되면 농부를 보게 됩니다. 농부를 보게 되면 농업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농업을 보게 되면 우리가 매일 무엇을 먹고, 어떤 세계를 지지하며 살아가는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밥 한 그릇은 생각보다 멀리 연결되어 있습니다.

쌀 한 톨은 그냥 식탁에 오지 않습니다. 씨앗이 있고, 논이 있고, 물이 있고, 흙이 있고, 햇빛이 있습니다. 모를 심고, 물을 대고, 풀을 보고, 벌레를 보고, 벼가 익기를 기다린 시간이 있습니다. 수확하고, 말리고, 도정하고, 보관하고, 운반하는 과정도 있습니다.

우리가 밥을 먹을 때, 사실은 그 모든 시간을 먹는 것입니다.


그런데 밥이 맛없으면 그 시간을 쉽게 잊습니다. 맛없는 밥은 쉽게 남깁니다. 밥이 식탁의 중심이 아니라 반찬 옆의 배경이 되면, 남겨도 마음이 덜 불편합니다. 반찬은 아까워하면서 밥은 쉽게 버리기도 합니다. 밥을 흔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좋은 밥을 먹어본 사람은 밥을 함부로 대하기 어렵습니다.

밥알이 살아 있고, 향이 맑고, 쌀의 힘이 느껴지는 밥을 먹으면 쌀 한 톨이 달라 보입니다. 그때 밥은 더 이상 탄수화물 덩어리가 아닙니다. 하나의 음식이고, 하나의 결과물이고, 누군가의 시간입니다.


여기서 토종쌀의 의미가 다시 중요해집니다.

토종쌀은 단순히 오래된 품종이 아닙니다. 사라질 뻔한 다양성입니다. 조동지, 귀도, 사두초, 녹두도, 흰베, 자광도 같은 이름을 부르는 순간 쌀은 익명의 흰 알갱이에서 구체적인 존재가 됩니다. 이름이 생기면 차이가 보입니다. 차이가 보이면 함부로 대하기 어렵습니다.


쌀의 다양성은 식탁의 재미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다양성은 농업의 힘입니다. 한 가지 품종, 한 가지 맛, 한 가지 재배 방식만 남으면 유통업체는 편해질지 몰라도 농업은 약해집니다. 기후가 바뀌고, 병해충이 달라지고, 소비자의 입맛이 달라질 때 다양한 품종과 다양한 농법은 중요한 기반이 됩니다.

토종쌀은 그 다양성을 회복하는 출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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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요리사, 여행자. 서울 한복판 '탁월한밥맛'에서 진짜 맛있는 밥, 건강한 지구를 지어나각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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