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여러나라의 밥맛 언어

와인만큼이나 다양한 표현들

by글짓고 밥짓는 백웅재

밥맛을 나타내는 말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흔히들 한국어에는 쇠고기의 부위를 나타내는 표현이, 아이슬랜드어에는 눈의 종류와 상태를 나타내는 언어가 많다고 합니다. 관심이 있으면 더 자세히 보게 되고 자세히 보면 말도 늘어나는 법이지요. 그런데 한국어에는 밥맛을 표현하는 단어가 의외로 그다지 풍부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벼나 쌀에 대한 농사 용어는 상당히 풍부하지만요. 여기서는 일단 밥맛을 표현하는 단어들을 정리해보고 우리나라에는 없지만 외국에서는 쓰이는 말들도 알아보며 밥맛표현을 풍부하게 할 기초를 정리해보겠습니다.


밥맛은 혀로 느끼는 맛만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윤기, 코로 맡는 향, 이로 씹는 감촉, 삼킨 뒤의 여운까지 합쳐져 하나의 밥맛이 될 수 있습니다.

좋은 밥을 먹었을 때 우리는 대개 이렇게 말합니다.


“밥이 참 맛있네요.”


아주 익숙한 표현입니다. 그런데 그 밥이 정확히 어떻게 맛있는지를 다시 물으면 설명이 막막해집니다. 윤기가 좋았는지, 밥알이 탄력 있었는지, 씹을수록 단맛이 났는지, 입안에서 부드럽게 풀렸는지를 따로 말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밥맛을 느끼는 감각은 세밀하지만, 그것을 설명하는 언어는 몇 개의 익숙한 단어에 머물러 있습니다.


밥맛을 더 정확히 이해하려면 먼저 밥을 말하는 언어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어에서 좋은 밥을 묘사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말은 ‘찰지다’와 ‘차지다’입니다. 밥알이 서로 적당히 붙어 있으면서, 씹을 때 탄력과 응집력이 느껴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여기에 ‘쫀득하다’, ‘탱글탱글하다’, ‘입에 감긴다’ 같은 표현이 따라옵니다. 비슷한 말처럼 보이지만 가리키는 감각은 조금씩 다릅니다.


찰지다는 밥 전체가 서로 붙는 성질과 응집력을 나타냅니다. 쫀득하다는 씹는 동안 쉽게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저항감에 가깝습니다. 탱글탱글하다는 눌린 밥알이 다시 돌아오는 탄성을 강조합니다. ‘입에 감긴다’는 표현에는 점착성뿐 아니라 온기와 수분감, 씹을 때의 부드러움까지 함께 들어 있습니다.


그 반대편에는 ‘고슬고슬하다’가 있습니다.

고슬고슬한 밥은 밥알이 서로 엉겨 붙지 않고 낱낱이 구분되면서도 지나치게 마르지 않은 상태입니다. ‘알이 선다’, ‘입자가 살아 있다’, ‘밥알이 또렷하다’는 표현도 비슷한 장면을 그립니다.

비빔밥이나 볶음밥에는 양념과 기름 속에서도 밥알의 형태가 유지되는 고슬고슬한 밥이 어울립니다. 흰밥만 먹거나 국, 찌개와 함께 먹을 때는 입안에 부드럽게 감기는 찰진 밥이 선호됩니다.

좋은 밥은 하나의 질감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음식과 용도에 맞는 질감을 갖추어야 합니다.


물이 많으면 진밥, 적으면 된밥

밥의 질감을 결정하는 가장 직접적인 요소는 물입니다.

물이 많아 밥알이 무른 밥은 ‘진밥’이라고 합니다. 밥이 ‘질다’고도 말합니다. 반대로 물이 적어 밥알이 단단하게 익은 밥은 ‘된밥’입니다.

‘꼬들꼬들하다’는 된밥과 비슷하지만 반드시 결점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밥알이 약간 단단하면서 씹는 맛이 살아 있는 상태입니다. 품종과 음식에 따라서는 꼬들꼬들한 밥이 장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밥알 중심부까지 충분히 익지 않았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이때는 ‘설익었다’, ‘심이 있다’고 표현합니다. 밥알 내부까지 물과 열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아 중심부의 전분이 제대로 호화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물이 지나치게 많거나 밥을 너무 오래 가열하면 밥알의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이때는 ‘퍼졌다’, ‘떡졌다’, ‘뭉개졌다’고 합니다.


진밥과 된밥은 취향의 영역일 수 있지만, 설익거나 뭉개진 밥은 조리 과정에서 생긴 결점에 가깝습니다.


좋은 밥은 먼저 눈으로 보입니다


밥맛은 입에 넣기 전부터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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