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구를 이해하면 밥맛의 길이 넓어집니다
밥은 쌀과 물과 불로 짓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에는 도구가 있습니다. 냄비, 솥, 돌솥, 압력솥, 전기밥솥. 어떤 도구를 쓰느냐에 따라 밥맛은 달라집니다. 같은 쌀, 같은 물, 같은 사람이 지어도 도구가 바뀌면 결과가 달라집니다.
도구는 단순한 그릇이 아닙니다.
열과 수분을 다루는 조리 환경입니다. 밥짓기의 핵심은 물조절과 불조절인데, 도구는 이 두 가지에 직접 영향을 줍니다. 어떤 도구는 열을 빠르게 전달하고, 어떤 도구는 천천히 데워집니다. 어떤 도구는 증기를 강하게 잡고, 어떤 도구는 조금씩 내보냅니다. 어떤 도구는 바닥의 열이 강하고, 어떤 도구는 전체가 완만하게 데워집니다.
가장 익숙한 도구는 전기밥솥입니다.
전기밥솥은 훌륭한 생활 도구입니다. 누구나 큰 실패 없이 밥을 지을 수 있게 해줍니다. 바쁜 일상에서 쌀을 씻고 물을 맞춘 뒤 버튼을 누르면 밥이 됩니다. 이 편리함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기밥솥의 장점은 동시에 한계가 되기도 합니다. 전기밥솥은 대체로 실패하지 않는 밥을 목표로 합니다. 누가 어떤 쌀을 넣어도 평균에 가까운 결과를 만들려고 합니다. 이 점은 생활의 도구로서는 장점이지만, 좋은 쌀의 개성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싶은 사람에게는 한계가 될 수 있습니다.
전기밥솥으로도 좋은 밥을 지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 쌀을 어떻게 준비하느냐입니다. 좋은 쌀을 고르고, 조심스럽게 씻고, 그 쌀의 상태에 맞게 물을 잡으면 전기밥솥에서도 밥맛은 달라집니다. 좋든 싫든 전기밥솥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집이 대부분이니, 이 경우에는 우선 앞에 설명한 쌀씻기와 물조절을 잘 해주세요. 쌀의 특성을 이해하고 있다면 어렵지 않은 일일 겁니다. 그리고 백미취사 외에 현미나 고압취사 기능이 있다면 이것도 잘 활용해보세요. 유색미나 백미라도 7분도 이하 도정미는 현미 특징을 제법 가지고 있습니다.
전기밥솥이라고 한마디로 말하지만 제조사나 모델에 따라 세팅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어떻다고 기준을 제시할 순 없습니다. 몇 가지 옵션을 시험해보면서 자기만의 최적화 방법을 찾는 정도의 실험정신은 있어야겠지요. 이 정도만 해도 평소와는 밥맛이 완전히 달라질 겁니다.
다만 밥짓기의 원리를 더 깊이 알고 싶다면 냄비나 솥으로 밥을 지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냄비밥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좋은 공부가 됩니다.
냄비는 밥이 익어가는 과정을 직접 느끼게 해줍니다. 필요하다면 뚜껑을 열어 상태를 확인해볼 수도 있지요. 물이 끓는 소리, 증기의 움직임, 향의 변화가 보다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언제 열을 줄이고 언제 멈출지 직접 판단해야 합니다.
대체로 물이 팔팔 끓어오르면 불을 약불로 줄입니다. 그리고 물기가 다 증발한 것 같으면 불을 끕니다. 냄비에서도 뜸들이기는 여전히 중요하니 충분한 시간을 들여 뜸들기를 기다립니다. 이 경계를 정하는 것은 순전히 경험의 영역입니다. 냄비밥이라고 한 마디로 말하지만 재질도, 크기도, 화구도 다 다릅니다. 그러니 역시 각자의 환경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최적화되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전기밥솥의 경우보다 변수도 훨씬 많고 복잡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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