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씻기의 연장이 밥물 조절입니다
밥짓기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결국 이것입니다.
“물을 얼마나 넣어야 합니까?”
간단해 보이지만 사실 가장 어려운 질문입니다. 밥물은 밥맛을 결정하는 핵심중 하나입니다. 물이 많으면 밥은 질어지고, 물이 적으면 되거나 설익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단순히 많고 적음이 아닙니다. 물은 밥알의 식감, 향, 윤기, 입안에서 풀리는 방식까지 바꿉니다.
물을 얼마나 넣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답하기 힘든 이유는 어떻게 씻느냐를 먼저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밥물 조절은 쌀씻기의 연장입니다.
쌀알에 물이 10퍼센트 이하로 먹었다면, 쌀을 다시 씻는 것부터 권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9%의 물을 먹은 쌀이 있다면(세 번을 씼었는데 이렇다면 필시 오래 묵은 쌀일 겁니다), 표준인 11~12% 정도 먹은 쌀과 비교할 때 밥물을 3% 정도 더 급수하는 것으론 상태를 맞출 수 없습니다. 물이 증기화 되면서 쌀에 먹은 물은 쌀알을 직접 익히는 힘이 쌀 외부의 물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쌀을 씻을 때 햅쌀 여부와 더불어 같이 봐야 할 것이 쌀알의 크기입니다. 조동지나 옥경, 신동진 같은 쌀알이 큰 품종들은 표면에서 중심까지의 거리가 상당히 멉니다. 우리 눈에는 1~2밀리미터 정도의 차이지만 그 거리를 작은 쌀알들과 퍼센티지로 비교해보면 두 자리수가 됩니다. 그래서 쌀알이 큰 종자들은 쌀을 한 번쯤 더 씼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작은 쌀알이라면 11% 정도의 흡수율도 충분합니다만 큰 쌀알은 12~12.5%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고작 그 정도냐고요? 햅쌀과 1년 묵은 쌀의 차이가 고작 그 정도입니다. 하지만 맛은 분명한 차이가 있지요.
이 숫자들에 주목해 주세요. 가정에서의 밥짓기라면 이렇게 할 필요까진 없겠습니다만, 진지하게 밥짓기를 공부하고 싶다면 꼭 이런 계량을 해보길 권합니다. 쌀을 세 번 정도 씻고나면 채에 받쳐서 물기를 전부 뺍니다. 여기서 마른불림이라고 또 30분이며 한 시간을 놔두는 것은 전혀 권장하지 않습니다. 그저 물기만 빼고 바로 다시 무게를 재보세요. 그럼 아마도 원래 쌀 무게의 11~13% 정도가 늘었을 겁니다. 이게 바로 '쌀이 먹은 물'입니다. 급수량은 쌀이 먹은물을 더해서 계산합니다.
쌀을 씻고 30분이나 그 이상 물에 불리는 관행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쌀을 씻고 나면 많은 사람이 당연히 쌀을 불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을 충분히 먹여야 밥이 고르게 익고 부드럽고 먹기 좋아진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좋은 밥짓기에서 불림은 그렇게 단순하게 ‘정답’이 아닙니다.
밥의 목표는 쌀알 전체를 똑같이 푹 익혀서 풀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혹 그것이 목표라면 불리기도 좋은 방법입니다. 하지만 좋은 밥은 부드럽기만 한 밥이 아닙니다. 겉은 익고, 속은 생쌀이 아니어야 합니다. 하지만 중심까지 완전히 풀려버리면 밥알의 힘이 사라집니다. 좋은 밥에는 씹히는 긴장이 있어야 합니다.
덜 익은 밥과 텍스처가 살아 있는 밥은 다릅니다.
중심에서 생쌀이 씹히는 밥은 실패입니다. 하지만 밥알의 중심까지 물러져 입안에서 바로 무너지는 밥도 좋은 밥은 아닙니다. 좋은 밥은 입안에서 부드럽게 풀리되, 처음부터 무너져 있어서는 안 됩니다. 씹을 때 쌀알의 존재가 느껴져야 합니다. 이 부분은 취향의 문제도 있어서 조심스러운 부분오 있습니다만, 한국인 대부분이 좋아하는 식감을 내기 위해서는 분명 표면과 중심부의 익힘이 달라져야 한다고, 수천 번의 밥짓기와 서빙을 통해서 통계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림은 조심해야 합니다.
쌀을 오래 물에 담가두면 쌀알은 더 많은 물을 먹습니다. 그러면 밥은 부드러워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밥알의 긴장은 약해집니다.
어쩌면 식감 이상으로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향’입니다.
쌀이 가진 향도 옅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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