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사 새옹지마
이 장면을 보려고 내가 그동안 탄 비행기를 5번이나 타고 타고 날아왔었지. 꿈같은 여행지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드디어 돌아가는 날. 그동안의 더위도, 미친 듯이 비쌌던 물가도 이미 추억이 되어 아쉬운 것 하나 없었다. 오롯이 좋은 것들만 꽉꽉 채워 갈 차비를 마쳤다.
작은 공항에서 수많은 인파를 뚫고 비행기 탈 것을 생각하여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택시를 불렀다. 룰루 랄라 마지막으로 이곳 풍경을 마음에 담았다. 그런데 10분, 15분이 지나도록 택시가 잡히지 않는 것이었다. 어쩌면 사람들이 많이 있는 시내 쪽이 아니라서 그런가 싶어 지금이라도 시내를 가자며 재빨리 버스를 타러 나섰다. '시내에서 공항으로 가는 버스는 한 시간에 한 번씩 있음. 하지만 그 시간은 버스 기사만 알고 있음.' 이것이 인터넷에서 찾은 공항 가는 방법이었다.
시내에 내려서 다시 또 아빠의 도전과 같은 시간차 공격을 시작. 올드 타운의 인파를 뚫고 캐리어를 끌고 울퉁불퉁 오르막길을 힘차게 뛰었다. 오늘 캐리어의 바퀴 하나가 빠져도 이건 어쩔 수 없다. 무조건 공항 가는 버스를 타야 한다.
너무 나도 다행스럽게 버스 문 닫히기 일보 직전에 정류장에 도착하였다. 가까스로 결재를 하고 마지막 남은 좌석에 앉았다. 불과 1분 전까지만 해도 터질 것 같은 심장을 가까스로 진정시키며 진짜 안녕을 고했다.
공항에서 비행기 티켓을 발급받으려고 하는데 웬일로 나의 수화물을 공짜로 그냥 부쳐 주겠단다. 안 그래도 기내에 들고 가기 번거로웠는데 완전 땡큐죠! 하면서 짐까지 모두 부치고 나니 한결 홀가분해졌다.
모든 수속을 마치고 나니 그제야 휘몰아치며 허기. 어느 공항과 마찬가지로 비싼 물가에 한번 놀라고 아메리카노와 카푸치노 사이에서 고민하다 천 원 정도가 더 싼 아메리카노를 선택했다. 이렇게 절약한 것들은 여행을 마치게 되면 결국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기억도 나지 않을뿐더러 그 보다 더 의아한 바보비용이 더 많이 지출되었다는 걸 결국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나의 고민을 읽으셨는지 커피숍 직원분께서 아메리카노에 우유를 조금 줄까? 하시는데, 웬걸 이게 무슨 일이냐며 아침부터 버스도 한 번에 타고 왠지 잘 풀리는데? 마지막까지 여기가 최고의 여행지구나 그때까진 감탄의 연속인 하루였다.
모든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 티켓을 보여준 후 이동버스를 타고 비행기가 주차되어 있는 곳까지 갔다. 버스가 돌아 돌아가더니 한참을 가도 제자리로 돌아온다. 아직 정비가 완료되지 않은 건가? 슬슬 불안함이 엄습하는 그때 갑자기 '비행기가 취소되었으니 모두 자리에서 내리세요!' 라며 승무원들이 공항 밖으로 안내를 한다. 짐은요? 아까 부친 짐들은 다 어떻게 되는 겁니까?라고 물으니 짐들은 다시 컨베이어 벨트에서 찾아가세요!라는 안내뿐, 비행기가 언제 다시 뜨는 건지, 오늘 안에 가긴 하는 건지 더 이상의 정보는 자기네들도 줄 수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갑자기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람들의 질문 세례에 '각자 알아서 다음 목적지에 갈 것' 이후 컴플레인을 하든 보상을 청구하든 그건 각자 알아서 할 것' '더 이상의 질문을 받지 않습니다!' 라며 뒤돌아서 가버렸다.
뭐 이런 황당한 때가 다 있나. 이러려고 내가 아침부터 그렇게 열심히 뛰어 왔던가, 이러려고 오늘 운수가 좋았었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더니 헛웃음이 나왔다. 사람이 너무 어이가 없으면 헛웃음이 나온다더니 이게 그구나 싶었다. 허허허. 한편으로는 '내 이럴 줄 알았다. 언젠가 한 번쯤은 기차든, 비행기든 놓칠 것 같더라니 오늘이 그날인 건가? 올 것이 왔나?'라는 담담함이 밀려왔다.
분주했던 사람들이 저마다 흩어지자 담담한 마음과는 별개로 떨리는 손가락은 갈 곳을 잃고 어디서부터 무엇을 예약해야 하는지 멍하게 앉아 있었다.
다시 돌아가서 하룻밤을 더 자고 내일 다시 공항에 올까? 그러면 똑같은 비행기를 다시 타야 할 텐데 그건 취소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나? 아니면 비행기를 몇 번이라도 갈아타고서 목적지로 가야 하나? 이곳과의 안녕은 아침에 이미 다했기에 무조건 다른 비행기를 타고서라도 목적지로 가야겠다 마음먹었다.
비록 2시간이면 한 번에 갈 곳을 장 시간에 거쳐 2번의 비행기를 갈아타고 가야 한다는 것, 당일 비행기 티켓을 최고로 비싼 가격에 사야 한다는 부담과 밤 11시 30분에 도착하는 아주 긴 여행이 될 거라는 점을 모두 각오한다는 전제하에.
결론은 중간에 위기가 또 한 번 있었으나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것이고, 이 길었던 어떤 하루를 추억할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 지났다는 것이다. 놓친 비행기, 새로 산 티켓에 대한 보상 청구는 모두 완료되었다는 것이고,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오고 갈 수 있는 인생의, 아니 일상의 롤러코스터에 두렵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르막 내리막 결국엔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믿음이 생겼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