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천사가 되어
구글지도에서 보여준 숙소에서 기차역까지의 거리 60미터, 10분 전에만 도착하면 되겠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문 밖을 나서서 분명 60 미터를 걸어왔는데 높은 담만 눈앞에 덩그러니 보이고 도무지 기차의 흔적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구글 지도는 계속해서 제자리걸음. 날씨도 덥고 초조한 마음에 등에서 땀이 줄줄 흘렀다. 이번 기차를 놓치면 다음 역에서 만나기로 한 친구와의 약속도 못 지키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교황의 방문으로 인해 모든 표가 매진이라 영락없이 이 도시에서 갇혀버리게 된다. 눈앞이 더욱 캄캄해졌다.
얼굴은 이미 땀으로 범벅이 되어있고 무거운 캐리어를 돌바닥에 질질 끌며 지나가는 이에게 혹시 기차역이 여기가 아닙니까?라고 용기를 내어 물어보았다. 기차역은 한참을 더 가야 한다고, 마침 자기도 기차역을 가는 중이라고 하였다. 영어를 하다가 보니 한국분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정말 저의 은인이시라고 오늘 그쪽이 아니었으면 큰 일을 겪을 번 했다고 몇 번이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분도 용기 있는 자가 길을 찾는다며 너스레를 떨며 안전한 여행을 기원하며 목적지를 향해 돌아섰다.
목적지에 도착하여 그동안 밀린 빨래를 하기 위해 빨래방을 찾았다. 벽에는 분명 어떻게 사용하라는지 설명이 붙어 있었는데, 그 설명문은 한바탕 돈을 잃고서야 정독하게 되었다.
1. 문을 열고 빨래를 넣기
2. 결재를 하고 해당 세탁기의 버튼을 누르기
세탁기의 문이 처음부터 닫혀 있는 걸 확인하지 못하고 돈을 넣었더니 세제만 열심히 돌아가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바보 비용 발생!
다시 한번 짜증을 가라앉히고 세탁기의 문을 활짝 열고 빨래를 넣은 후 돈을 넣었다. 버튼을 누른다. 삐그덕 대는 의자에서 38분 동안의 자유시간을 누리며 휘 돌아가는 빨래들을 구경할 일만 남았다.
빨래방으로 들어온 다음 손님, 역시나 나와 같은 실수를 저지르기 일보 직전이다. 평소 같았음 모르는 사람과 말하는 걸 꺼려하는 성격에 모른 척했을 테지만 용기를 내어 다시 한번 말을 걸었다. 눈앞에서 나와 같이 바보비용을 지불하는 걸 두고 볼 수는 없다. 재빠르게 벽의 설명서를 읽어 보라고 안내하고 사용법을 알려 주었다. 심지어 동전이 없다고 하여 지폐를 잔돈으로 모두 바꾸어 주었다. 고맙다고 연신 말하는 그녀에게 손사래 치며 별거 아닌 듯 기분 좋게 빨래를 접어 빨래방을 나섰다.
비행기를 기다리며.
저녁 9시가 되도록 해가 지지 않는 이곳에서 할아버지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낡은 성경바카라을 읽고 있다. 묵주기도까지 마치자 비행기 탈 준비를 한다.
이 여행은 안전하겠구나.
결국 사랑이 마지막에 남겠구나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