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은 못 덜어도 생각은 덜어낼 수 있다

by알레

덜어내고 또 덜어내기를 반복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우리 집에는 많은 짐들이 이곳저곳을 차지하고 있다. 가끔은 아직 발 디딜 틈이 있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미니멀 라이프와는 정반대로 살아가는 중이다. 굳이 이 부끄러운 고백을 서두에 내세우는 이유는, '나'라는 사람이 비워내는 삶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는 말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뭘 덜어내고 있다는 소린가 싶을 것 같다. 요즘 나는 생각 덜어내기를 훈련 중이다. 훈련이라고 하면 특별한 프로그램이나 규칙이 있을 것 같지만 전혀 아니다. 그저 생각이 제멋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려 할 때 '스톱' 사인을 내리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방법은 몇 가지가 있다.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제자리 뛰기, 산바카라하기, 전화 통화하기, 청소 및 집 정리하기 등 몸을 움직이며 불필요한 생각의 전개를 멈춘다. 움직임을 택한 이유는 효과가 가장 즉시 나타나기 때문이다.


먼저 생각이 많아질 때의 증상은 이렇다. 첫 번째는 '얼음, 땡' 놀이에서 술래가 가까이 오면 '얼음'을 외치며 부동자세가 되는 것처럼, 앉아있든 서있든 그 자리에서 한참을 멈춰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오히려 반대다. 이리저리 집 안을 서성인다. 그런데 방향도 목적도 없다. 고장 난 회로 때문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터 장난감 자동차처럼, 방에서 뭔가 잠깐 하다 거실로 나와 또 뭔가를 하고, 베란다에 갔다가 다시 방으로 가는 말 그대로 방황이 시작된다. 심지어 노트북으로 콘텐츠를 틀어놓고 스마트폰으로는 소셜미디어를 들여다보고 있을 때도 있다.


막상 써놓고 보니 매우 심각한 증상을 앓고 있는 듯 보이는데, 우려하지 않아도 되는 건 자가 진단과 처방이 가능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생각이 끊임없이 일어나도록 만든 공간에서 벗어나 자극을 줄이면, 확실히 생각도 제멋대로 일어나기를 멈춘다. 그다음 일정량의 움직임으로 생각이 정리되고 나면 다시 돌아온다.


도무지 움직일 수 없을 때나 날씨가 좋지 않을 땐 낮잠을 선택하기도 한다. 주의할 점은 누워서 폰을 보지 말 것, 너무 오래 자지 말 것이다. 또한 눈을 감고 있어도 잠이 들지 않을 땐 억지로 자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럴 땐 눈을 감고 심호흡에 집중하다가 적당한 시간에 다시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편안해진다.


생각이 많은 사람들은 공감하겠지만 그만큼 행동력이 떨어진다. 빠른 실행력을 가진 사람들은 나와 같은 사람을 보면 꼭 하는 말이 있다. "생각할 시간에 일단 움직이는 게 차라리 낫다." 생각이 많아지는 이유는 완벽주의 성향일 수도 있고, 움직이기 귀찮을 만큼 에너지 레벨이 떨어졌을 수도 있다. 혹은 사후 평가에 대한 두려움이 회피할 이유를 찾아내도록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이유든 혼자만의 의지로는 개선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챌린지 모임이나 정기적인 만남의 자리를 마련하는 게 좋다. 자기 계발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이미 들어봤겠지만, 변화는 의지가 아니라 환경(시스템)에 의해 일어난다는 걸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나도 매일 30분이라도 밖에 나가 걷고 있다.


단순해지는 훈련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는 간단하다. 하고자 계획한 걸 완료하는 것이다. 지난 세월의 경험이 분명하게 알려주는 게 하나 있다. 하지 않을 이유는 수백, 수천 가지이고, 하지 못할 상황은 하루에도 수십 가지 일어날 수 있다. 실행을 강조하는 분들이 오죽하면 '그냥' 하라고 말하는지, 이제는 잘 안다.


나에겐 실행을 막아서는 또 한 가지 장애물이 있는데, 바로 '자신감'이라는 걸 최근에 깨달았다. 생각보다 자신감이 낮아 새로운 것 앞에서 자연스럽게 한 발 물러서는 반응을 보인다. 이 자신감을 채워주는 건 다양한 성취의 경험이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건 '자존감'이다.


자존감은 하나의 저장고와 같아서, 실행을 위한 자신감이 부족할 때 수도꼭지를 열어 부족한 만큼을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 저장고가 비어 있으면 흘려보낼 에너지가 없고, 결국 실행하지 못하는 결론에 이른다.


단순하게 사는 것과 자존감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끝으로 이야기해보려 한다. 자존감은 내가 나를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자존감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외적 요인이 존재하지만,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 건 결국 나 자신이다. 그 말인즉슨 텅 빈 자존감의 저장고를 채울 수 있는 것도 바로 '나'라는 사람이다.


자존감에 대해서는 여러 전문적인 견해가 존재하지만, 한 명의 비전문가이자 스스로 마음을 돌아보며 나를 일으켜 세워가는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말은, 내가 나를 믿어주는 것이다. 나의 좋은 면을 바라보고 실제로 입 밖으로 꺼내 이야기하기를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꽤 효과가 있었다.


여기에 글쓰기도 한몫했다. 나의 경우 자존감이 낮아질 때마다 동일한 패턴이 있었다.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나 시행착오에 따른 주변의 부정적 평가를 나와 동일시했다는 점이다. 글을 쓰면서 이 둘이 별개라는 걸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어떤 행위의 결과가 곧 나의 존재라고 생각했던 건, 늘 그렇게 평가받아왔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았다.


자존감 영역에 대해서는 아직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지만, 여기까지 이른 것도 글쓰기 덕분이었다.


사실 아직도 덜어내야 할 생각들이 많다. 전보다 더 빠른 실행을 위해 개선해야 할 환경도 많이 보인다. 그럼에도 중요한 건 인지하고 있다는 점과, 변화하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해진다는 건 나에게 꽤 큰 도전이다. 보다시피 글도 대체로 장황하게 쓸 만큼 생각이 많은 사람이 다른 선택을 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나.


소기의 성과지만 덕분에 그동안 미루기만 하던 소셜미디어 콘텐츠를 꾸준히 업로드하고 있다. 아주 작은 변화지만 이 경험들이 도화선이 되어줄 거라 믿는다. 부디 멈추지 않고 쭉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