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케이크가 먹고 싶어서 카페에 갔다

by알레

'조각케이크가 먹고 싶다.'


아침을 부실하게 챙긴 탓일까, 잠을 잘 못 잔 탓일까. 아니면 정말 케이크가 먹고 싶었던 걸까. 집 밖에 나갈 계획이 없었는데 오늘도 갑작스레 주섬주섬 짐을 챙겨 카페로 향했다.


오후 2시에 집을 나설 땐 늘 고민이 된다. 기껏해야 2시간 정도밖에 없는데, 왕복 걷는 시간을 빼면 20분 남짓이 또 빠진다. 남는 건 1시간 40분 정도. 그 시간에 글을 쓰고 바카라을 읽는다는 게 비효율적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실제로 어떤 날엔 고민하다 결국 안 나갈 때도 많았다.


그럼에도 나가고 싶을 땐, 정말 집중하기 힘들거나 피로감이 밀려와 집에 있으면 늘어지기만 할 것 같을 때다. 그렇지 않고서는 대부분 집에 머물기를 선택한다. 그랬는데 '조각케이크'가 또 하나의 강력한 동기로 등장할 줄은 몰랐다. 근데 왜 하필 조각케이크일까. 당이 필요했나. 커피 한 잔에 조각케이크까지 더하기엔 사치라고 여기며 억눌렀던 욕망의 발현이었던 걸까. 뭔지 모를 이유에 이끌려 어쨌든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키오스크에서 주문할 때 살짝 망설였지만, 목표대로 커피 한 잔과 조각케이크 하나를 주문했다. 참 희한한 건, 막상 케이크를 먹고 있는 지금은 나를 집 밖으로 이끌어낸 힘에 비해 만족감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허겁지겁 먹고 있는 모습을 생각하면 모순이지만, 원래 인간의 내면과 외면은 때론 서로 내외하는 사이가 아니던가.


아무래도 그간 억눌렀던 소비에 대한 욕망이 오늘따라 강하게 고개를 들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꼭 조각케이크가 아니어도 됐을 것 같으면서도, 6천 원대로 선방한 게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당장 벌이가 없어서 아끼는 걸 선택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재정관을 재정립하기 위해서였다. 생각보다 필요 외의 소비가 많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굳이 없어도 될 물건들이 차지하고 있는 방 한편을 바라볼 때마다, 오늘의 어려움이 괜히 온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만 꽤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어서, 지금이라도 재정 관리에 대한 공부가 필요함을 느꼈다.


어려움에 처해서야 돈을 버는 것만큼 관리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틈틈이 바카라도 찾아 읽어보는 중이지만, 일단 지금은 필요 외의 소비를 줄이고 불필요한 지출을 정리하기로 한 상태다.


마음먹었을 땐 쉽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겪어보니 이 또한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특히 지출을 정리하는 부분에서는 선뜻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은데, 마치 집을 정리하는 기분이다. 서재 방을 정리하려니 짐을 옮겨둘 창고를 정리해야 하고, 창고를 정리하려니 죄다 꺼내보기 위해 거실이 정리되어야 하고, 거실을 정리하려니 엄두가 나지 않아 손을 대지 못하는 그런 상황. 공감하는 독자님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딱 그런 상황이다.


그럼에도 해야만 하니 계속 들여다보며 하나씩 정리 중이다. 이럴 땐 차라리 돈이 없는 게 당장 행동하게 만드는 환경이 되어준다. 이런 걸 '오히려 좋아!'라고 표현하는 게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이왕이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중이다.


막상 먹고 났더니 별 느낌이 없었던 조각케이크처럼, 어쩌면 지출 정리도 하고 나면 뭘 그렇게 고민했나 허무함이 밀려올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마음의 이끌림을 따라 선택하는 아주 작은 경험, 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현실을 수용하고 필요를 자각해 실행에 옮기는 경험은 자산으로 남을 거라 생각한다.


별것 아닌 오늘의 경험을 통해 한 가지 깨달은 건, 나에게 모자람은 삶의 지혜를 가르쳐주는 선생과 같다는 점이다. 부족한 재능은 뭐든 배우고자 하는 마음을 키워줬고, 부족한 글재주는 내 일상과 주변을 관찰하며 그에 상응하는 마음을 들여다보게 했다. 최근에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접점을 만들기 위해 다시 소셜미디어에 콘텐츠를 부지런히 올리는 중이다.


그동안 많은 글에서 드러난 감정선이 다소 가라앉아 있던 것도 맞지만, 이 시기를 통해 많은 걸 되짚어보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중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자람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조언자가 아닐까 싶다.


조각케이크는 6천 원대에 사라졌고, 만족감은 기대만큼 크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후회는 없다. 케이크가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를 집 밖으로 데려온 건 케이크라는 이름을 빌린 작은 이끌림이었고, 나는 그 이끌림을 따라 이 자리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모자람도 그렇다. 채워지지 않은 자리에 들어온 건 불평이 아니라 질문이었다. 그 질문이 소비를 돌아보게 했고, 더 오래 관찰하게 했고, 오늘도 나를 카페로, 글 앞으로 데려다 놓았다.


다음에도 이유 없이 케이크가 당기면, 그땐 조금 덜 망설이고 나와봐야겠다. 6천 원이면 오늘의 이끌림에 지불하기엔 나쁘지 않은 값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