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사이 아이가 감기에 걸렸다.
점점 증세가 악화되어 병원에 갔더니 A형 독감 진단을 받았다. 아니길 바랐는데. 아내는 아이가 독감이 처음이라 밤새 잘 견딜지 걱정을 했다. 생각해 보니 나도 독감은 잘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수액 주사를 맞고 빨리 회복하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봤지만 아이는 극구 반대했다. 역시나 6세 아이에게 '주사'와 '발치'는 사전 협의 없이 진행하는 건 크나큰 위협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안 그래도 최근에 아이는 이빨 하나를 뽑았다. 정작 발치 과정은 1분도 걸리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 눕기까지는 하루가 걸렸다. 치과 정기 검진에 갔다가 촬영한 엑스레이에서 위쪽 앞니 하나가 뿌리가 완전히 녹은 상태임을 확인했다. 의사 선생님은 바로 발치 준비를 했다. 순간 놀라서 아이에게 물어보니 아이는 싫다고 했다.
마치 이런 느낌이었다. "아니, 검진만 받으러 가자고 해놓고 이빨을 뽑는 건 무슨 경우란 말입니까!?"
그랬는데 그날 밤, 이빨은 낮보다 더 흔들리고 잇몸에서는 살짝 피가 나는 게 불편했는지 바로 뽑아달라고 난리였다. 내일 치과 가서 뽑자고 아무리 얘기해도 불편하니 뽑아달라고 떼를 부렸다. 결국 저가 뽑겠다고 화장실 거울 앞에 서서 흔들어보다가 겁이 났는지, 다음 날 치과에 가겠다고 했다. 날이 밝자마자 바로 이빨을 뽑고 유치원에 갔다.
이번 독감 수액 주사도 그때와 같은 경우였다. "아니, 감기라서 진료만 받으러 간다 해놓고 왜 주사를 맞으라고 하는 겁니까! 대체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처사란 말입니까!?" 굳이 말하자면 이런 느낌이었달까. 주사 한 방이 회복에 효과적이란 걸 알기에 설득을 시도했는데, 상황은 잡기놀이처럼 돼버렸다. 아이는 싫다고 울면서 도망치고 아빠는 최대한 안심시키려 쫓아가는 참으로 웃픈(웃기고도 슬픈) 상황이었다.
그날 밤. 점점 아이의 증세가 악화되더니 결국 기침을 하다가 울기 시작했다. 많이 괴로웠던 것 같다. 급기야 엄마한테 안겨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내일 주사 맞으러 갈래."
어찌나 짠하던지.
밤사이 열이 39도까지 올랐다. 해열제를 먹여도 38도 정도에 머무는 게 전부였다. 밤새 뒤척이다 아침에 겨우 잠든 아이는 힘겹게 일어났다. 혹시나 싶어 아이에게 다시 물었다. "주사 맞으러 갈 거야?" "응, 갈래. 대신 선물 줘야 돼." 그럼 그렇지. 이번엔 내가 먼저 꿍쳐둔 선물을 주겠다고 한 거라 할 말은 없었지만, 이제는 선물이 너무 당연해진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병원에 가면서 신신당부를 했다. "선물 받았다고 물리기 없기다!"
간단하게 진료를 마치고 수액을 맞으러 들어가는데 아이는 점점 겁에 질린 모습이 역력했다. 아니나 다를까, 침대에 앉아있다가 간호사 선생님이 주사약을 들고 오는 순간부터 또 한바탕 난리가 났다. 사실 그 바로 전에 주사약을 준비하냐 마냐를 가지고도 실랑이가 있었다. 아이를 겨우 설득해서 약을 준비했고 더 이상 물릴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막상 상황이 임박하니 무서웠나 보다.
간호사 선생님이 손만 뻗어도 싫다고, 저리 가라고, 무섭다고 난리였다. 결국 최후의 수단을 택했다. 아내는 아이의 몸을 붙잡고, 나는 다리를 붙잡은 상태에서 선생님 두 분이 혈관을 찾기 시작했다. 아이의 혈관이 가늘어서인지 한 방에 성공하지 못했다. 안 그래도 겁에 질려있는 아이는 주사를 두 번 맞는 상황이 공포스럽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다. 간호사 선생님들이 살짝 원망스러운 순간이었다.
두 번 만에 겨우 성공했다. 최대한 아이를 다독여주었다. 대견스럽고 자랑스럽다고 입이 마르도록 칭찬해 주었다. 아이는 온몸이 경직된 듯 누워있었다. 주사 바늘을 꽂지 않은 반대 팔을 움직이기 전에 아이가 물었다.
"아빠, 이쪽 팔은 움직여도 돼요?"
이 상황이 낯설게 다가온 건 존댓말을 썼기 때문이다. 아프고 무섭긴 했나 보다. 평소 거의 쓰지 않는 존댓말까지 쓰는 걸 보면. 한편으론 짠하기도 했다. 오죽하면 저럴까 싶었다.
주사를 맞는 동안 아이의 머리는 땀에 흠뻑 젖었다. 수액 주사가 효과가 크긴 한 것 같다. 내내 뜨겁던 몸이 그사이 식어버렸다. 아이도 컨디션이 좋아진 걸 느끼는지 기분이 좋다고 했다. 이제 남은 건 주사를 빼는 단계다. 또다시 잔뜩 긴장했던 아이는 바늘이 빠지는 순간, "어?" 한마디를 내뱉었다. 괜히 졸았나 싶은, 다소 허무한 마음이 전해지는 듯했다.
그날 밤 아이를 재우며 이야기했다. "아들, 아빠는 아들이 오늘의 경험을 잘 기억했으면 좋겠어. 근데 주사를 맞기 전에 막 두렵고, 무섭고 했던 그 경험 말고, 그럼에도 거뜬히 해낸 그 경험을 잘 간직했으면 좋겠어." 딱 여기서 끝냈어야 했는데 이놈의 말 습관이 문제다. 그때부터 훈화 말씀이 시작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말했다. "아빠, 나 졸려. 잘게." 이래서 사람은 멈출 때를 알아야 하며, 인생이란 덜어내기가 더 중요하다고 하는가 보다.
주말 사이 아이를 힘들게 했던 독감은 아내에게로 건너갔다. 결국 아내도 오늘 주사를 맞고 왔다. 남은 건 나 하나뿐이다. 목이 간질거리면서 계속 잔기침이 난다. 위태위태하다. 아무래도 오늘 밤이 고비일 것 같다.
독감.
독한 녀석!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제발 그냥 가라.
마지막은 간절한 마음을 담아 2행시로 마무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