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아빠일까

아직도 후회와 반성중인 아빠입니다.

by알레

내 아이에게 나는 어떤 아빠일까?


혼자 집에 앉아있을 때면 가끔 생각에 잠기곤 한다. 태어나 10개월 정도 되었을 때부터 6살인 지금까지 함께했으니, 아빠는 늘 함께 있는 존재로 여기는 건 당연하다. 가끔 아들에게 "아빠도 아침 일찍 일하러 갔다가 저녁에 들어오면 어떨 것 같아?"라고 물어보면 아들은 대번에 "안 돼!"라고 답한다. 이제껏 재취업을 하지 않은 이유라고 살짝 숟가락을 얹어본다.


최근 하루는 생각이 많아지는 사건이 있었다. 등원 준비를 하던 아침, 그날따라 전날 늦게 잠든 탓에 아침부터 날이 서 있었던 게 화근이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등원 버스를 타기 위해 서둘러야 하는 타이밍에 하등 쓸데없는 것으로 생떼를 부리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어떻게든 꼬드겨서라도 데리고 나갔을 텐데, 그날은 날이 선 강한 말투로 "그만!"이라고 내뱉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울기 시작했다. '그렁그렁'도 '훌쩍'도 아니라 '엉엉' 울었다. 무섭고 서러웠나 보다. 하필 바로 전날 밤에도 한차례 울고 잠들었던 터라, 그날 아침 아이에게 아빠는 아직 무서운 존재로 남아있었던 것 같다.


엄마가 달래주니 아이는 더 서럽게 울었다.


"아빠는 맨날 나한테 화내."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한편으론 살짝 억울하기도 했다. '내가 또 언제 그렇게 맨날 화를 냈다고.' '그동안 재밌게 놀아준 건 다 어디 갔고.'


나도 안다. 이것이야말로 때 늦은, 하등 쓸모없는 생각이었다.


어릴 적 기억 속의 아버지는 무서운 존재였다. 지금이야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고 마음 깊이 감사함을 느끼고 있지만, 과거에는 아니었다. 그 흔적 때문에 내가 아빠가 되면 아이랑 친구처럼 지낼 거라고 다짐했었는데, 가끔 나도 모르게 기억 속의 아버지가 등장할 때가 있다.


잠을 충분히 자지 않아 날이 서 있던 내가 문제였는데, 되려 아이를 찌르고 나서야 늘 후회를 반복하는 나 자신이 안타깝고 답답했다. 혹여 아이의 기억 속에 정말 맨날 화내는 아빠로 남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생겼다. 진심으로 아니길 바라본다.


아빠가 된다는 건, 아니 어른이 된다는 건 정말 생각보다도 더 어려운 일이다.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사려 깊고 배려심 넘치는 지혜로운 아빠의 생각과 말투를 닮으면 좋겠지만, 인생은 연기가 아닌 실전이기에 나도 모르는 사이 가장 약한 대상을 향해 부정적인 에너지를 쏘아대는 건 아닌가 반성하곤 한다.


오늘 아침, 아이는 유치원에 가기 전 치과에 들러 앞니 한 개를 뽑았다. 하필 전에 나의 실수로 다쳤던 이빨이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직 유치지만 앞니는 보통 초등학교 1, 2학년 즈음 빠지는 거라 최대한 붙어있길 바랐는데, 결국 둘 중 하나가 오늘 떠났다.


발치를 기다리며 누워있는데 아이가 말했다.


"아빠, 나 이제 치과 하나도 안 무서워. 재밌어."



글쎄, 이게 치과에 가기 전 미리 받은 선물 효과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대견스러웠다. 내심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아빠를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바로 옆에서 어떤 아이가 검사를 받다가 엉엉 울고 나가는 걸 보면서 몇 년 전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땐 치과 가는 것 자체를 싫어했던 녀석인데, 언제 이렇게 커버렸을까 싶다.


어쩌면 나의 걱정은 쓸데없는 기우일지도 모른다. 아이는 아이대로 아빠에 대한 이해와 배려의 폭을 넓혀가는 중일 텐데, 아빠라서, 처음이라서 오히려 내가 너무 절절매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수면 부족으로 날카로워졌던 건 아무리 곱씹어봐도 반성할 만한 일이긴 하다.


오늘 저녁은 아이랑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해야겠다. 벌써 빠진 이가 세 개다. 다행히 아랫니 두 개는 영구치가 자라고 있다. 웃을 때마다 구멍이 숭숭일 텐데. 아이에게 '영구'라고 놀리는 건 좀 아니겠지? 입이 자꾸 근질거린다.


나 자신, 반성한 거 맞나 싶다. 오늘은 입 조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