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발질을 숙성의 시간으로 바꾸기로 했다

by알레

분명 머릿속에 여러 문장이 떠올랐었는데.


청소기를 돌리는 동안 생각났던 말들이 먼지와 함께 다 빨려 들어가 버린 것 같다. 역시 떠오르는 즉시 기록하지 않으면 잊어버린다는 건 글쓰기의 진리다.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잊어버린 덕분에 첫 문장을 뗄 수 있었다.


글쓰기 덕분에 삶을 대하는 여유가 늘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지나가고 돌아오지 않는 생각에 마음을 두면 당장 쓸 말도 떠오르지 않듯이, 좋든 싫든 지나간 삶에 미련을 두면 오늘을 손해 보는 셈이다. 글이야 시간이 지난 뒤 마음 잡고 다시 쓰면 된다지만, 지나간 오늘은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되돌릴 수 없다.


요즘 삶에 대한 태도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사람은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결핍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러지 않고서야 옷장과 서랍에 가득한 옷을 두고도 입을 옷이 없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싶다.


가끔은 나보다 덜 가진 사람과 비교하는 건 내가 너무 교만한 것 같으니 차라리 더 가진 사람과 비교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걸까 싶을 때도 있다. 이래나 저래나 비교하는 건 매한가지인데.


때론 그것이 동력이 되어 오늘에 박차를 가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계속 결핍의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삶이 매몰될 수 있음을 알았다. '오늘'이라는 유한한 시간을 누리지 못하고 '되돌릴 수 없는 어제'와 '어떤 모습으로 올지 모를 내일'만 생각하며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나 자신에게 너무 가혹한 삶이란 걸 깨닫고 나니, 오늘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상위 0.1% 부자들을 만나본 사람이 했던 인상 깊은 말이 떠오른다. 그들이 우리와 다른 건 '관점'이었다고 했다. 똑같은 오늘을 살지만 그들은 더 나은 내일로 연결하는 오늘에 몰입한다면, 평범한 사람들은 그저 흘려보내는 경우가 많다는 말에 지난 5년의 시간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내 소셜미디어에 올린 콘텐츠를 훑어보다가 몇 년째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라고 한다면, 지금 내 세계의 한계는 몇 년째 같은 굴레 안에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한편으론 씁쓸했지만 달리 보니 정말 같은 굴레에 있는 게 맞을까 싶었다.


현실은 제자리 같아도 마음은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으니까.


지금껏 나는 헛발질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정확한 타점을 찾기 위한 시간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표현이었다. 오늘 나는 이 표현을 '숙성의 시간'으로 바꾸기로 했다.


인생이 얼마나 농도 짙게 흘러가려고 그러나. 숙성의 시간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지만, 생각을 바꾸니 이왕 무르익을 거 더 깊어질 수 있길 바라고 있다.


지난 몇 편의 글을 통해 거듭 말했듯, 나는 오늘의 나와 같은 사람들을 돕는 사람이 되기로 선택했다. 결심하고 나니 조급함이 사라짐을 느낀다. 어떻게 하면 닿을 수 있을까 매 순간 생각하며 삶의 틈을 메우는 중이다.


같은 말을 몇 년째 되풀이하고 있다는 게 이제는 부끄럽지 않다. 숙성이란 원래 겉보기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이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시간이 지나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


오늘 청소기 속으로 사라진 문장들도 아마 그럴 것이다. 잊혔다고 사라진 게 아니라, 어딘가에서 계속 발효되고 있을 거라 믿는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필요한 순간, 더 깊어진 삶의 모습으로 돌아올 거라고.


숙성의 시간은 계속된다. 조급해하지 않고, 오늘의 틈을 메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