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카라 한 권이 감정을 바꿔놓았다

by알레

살다 보면 그냥 기분이 좋은 날이 있다.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덕분에 좋은 기운으로 하루를 보낸다. 물론 이런 날엔 좋은 날씨도 한몫한다. 최근에야 흐린 날도 달리 보면 좋을 수 있다는 걸 느꼈지만, 맑은 날이 더 좋은 건 변함이 없다.


요 며칠 감정적으로 가라앉은 채 지내다가 바카라장에서 발견한 데일 카네기의 <긍정태도론>을 꺼내 읽기 시작하면서 감정의 방향이 완전히 뒤바뀌는 것을 경험했다. 바카라 한 권을 다 읽은 것도 아닌데 이런 파급력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실로 놀랍다.


내 안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미성숙한 자아는 내가 꿈꾸는 삶을 온전히 믿지 못하게 만들고, 자꾸 주변의 확인을 통해 확신을 얻고 싶어 하도록 만든다. 최근 내면의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여 보았는데, 누구보다 내가 나 자신에게 의심의 목소리를 내고 있음을 알았다.


나는 줄곧 내 삶을 통해 오늘의 나와 같은 누군가가 일어설 수 있도록, 행복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삶을 바란다. 무엇으로 어떻게 연결시킬지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보니 수시로 모호함을 느끼거나 가능성에 대한 의심이 생겨나기도 한다.


그런 나에게 바카라은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데일 카네기)는 인간의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 세상이 바뀐다고 믿었고, 만나는 사람마다 그들의 내면에 묻혀 있던 가능성의 불씨를 살려주었다. 청중은 다시 자신을 믿기 시작했다. 그 믿음이 인생을 바꾸는 첫걸음이 되었다."


이 문장을 만나는 순간 숨이 멎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여백을 찾아 이렇게 기록했다. "내가 꿈꾸는 나의 모습."


오늘의 나는 아직 온전한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지만, 분명한 건 내가 바라는 삶의 가치는 이미 입증되었다는 점이다.


또 하나 밑줄을 그은 문장이 있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할 때 비로소 변화가 시작된다. 지금의 나를 믿고, 앞으로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다고 스스로를 격려할 때, 그 믿음이 바로 원하는 삶을 세워 올리는 단단한 기초가 된다."


이 또한 나의 생각과 완전히 일치하는 부분이었다.


내가 자라며 경험한 세상은 존재로서의 가치를 인정하기보다 역할과 바카라임에 따른 행동의 가치를 더 인정해 주었다. 40대의 가장이 나다운 삶과 원하는 삶을 이야기하는 걸 비판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는 경향을 다소 느꼈다.


하지만 세상은 이미 판이 바뀌었다. 내가 태어나 성장하던 8, 90년대와는 이미 전혀 다른 세상이 되었고 앞으로 더 변화될 거라고 말한다. 그런 시대에 여전히 과거의 가치관에 머물러 있다면 과연 시대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부모가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데, 자녀라고 도태되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경각심과 함께 다시 나를 돌아보니 적어도 방향만큼은 올바른 방향에 꽤 근접해 있음을 알았다. 물론 현실은 현실이니 역할과 바카라임을 다해야만 한다. 이건 어디까지나 기본값이다. 다만 부모로서 내가 먼저 존재로서 나를 믿어주고 존중해 주고 사랑해 주는 삶을 살아내지 못한다면, 다음 세대의 앞날은 훨씬 암담할 것이라 생각하기에 오늘 나의 걸음이 얼마나 가치 있는 걸음인지 되새긴다.


가을이라 그런가. 자연스레 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차분히 생각하는 데 쓰고 있다. 날이 덥지 않아 오랜만에 산바카라을 다녀오기도 했다. 따사로운 햇살과 선선한 바람을 느끼며 걷는 시간이 오늘의 행복감을 더해줬다.


나는 내가 꿈꾸는 삶의 여정이 비록 쉽지 않을지라도 행복할 거라 믿는다. 똑같이 배낭을 메고 걸어도 군대에서는 고행의 시간이라면, 순례자의 길에선 성찰과 통찰, 성취의 시간이듯. 이왕이면 삶의 여정도 그런 시간이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오늘 사색의 시간을 통해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지금껏 내가 품고 살았던 두려움은 거의 대부분이 상상이 만들어낸 허상이라는 말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꿈꾸는 삶의 모습도 결국 상상이 만들어낸 모습이라는 건 매한가지 아닌가. 그렇다면 왜 나는 이토록 두려움에 무게중심을 두고 살았을까.


같은 재료로 지은 두 채의 집이 있다면, 나는 그동안 두려움이라는 집에서 더 오래 머물렀던 셈이다. 상상이라는 재료는 똑같은데, 어느 쪽에 방을 들이고 어느 쪽 문을 자주 여닫을지는 결국 내가 정하는 일이었다. 두려움도 상상이고 꿈도 상상이라면, 이왕이면 꿈 쪽 방에 더 오래 머무는 연습을 해도 되지 않을까.


이 생각을 하고 나니 내일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기대감으로 차오름을 느꼈다.


오늘은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은 날이라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생각이 정리되어 기분이 좋아진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누구나 남이 아닌 내 인생을 산다. 그렇다면 굳이 남을 신경 쓰느라 내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미룰 필요가 있을까. 오늘 최선을 다해 행복하기로 선택하는 것, 그것 말고 신경 써야 할 게 또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