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감사가 필요할땐 내시경 검사를 추천합니다

by알레

"3일 전부터 식단 관리하셔야 하고요, 하루 전날 저녁 7시부터 8시까지 30분 간격으로 500ml씩 두 번 마시고, 검사 당일 새벽 4시부터 5시까지 또 한 번 하신 다음 6시부터는 물도 못 마셔요. 8시 검사니까 꼭 늦지 말고 오시고요."


묵묵히 앉아서 간호사 선생님의 설명을 경청했다. 혹여 뭐 하나라도 놓칠세라 온 신경을 집중했다. 태어나 두 번째 받아보는 위, 대장 내시경. 그 험난한 시간을 오늘 마쳤다.


겨우 내시경 검사 가지고 뭐 유난이냐 싶겠지만 살면서 딱히 큰 병에 걸려보거나 입원 치료를 받아본 적도 없는 사람에겐 이보다 더 큰 일은 없다.


처음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아본 건 10년도 더 되었을 것이다. 대학생이거나 최소 대학원생일 때였을 테니까. 그때 병원에서 가루약이랑 리터짜리 물통을 들고 왔던 게 생각난다. 아마 2L의 약물을 저녁부터 새벽까지 마셨던 것 같다.


처음엔 이온음료 맛 같아서 '오, 이거 생각보다 괜찮네' 싶었는데 1L 정도를 마시고 나서부터 점점 역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부터 사탕을 먹기 시작했다. 아직도 이름이 기억난다. 애니타임. 간호사 선생님이 알려주신 팁이었다. 사탕과 함께 먹으면 조금 낫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신의 한 수였다.


준비를 마치고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그땐 수면 검사가 있는 줄도 몰랐다. 그냥 생으로 받고 나와 집까지 걸어오며 더부룩했던 속을 정리했다.


저녁 7시. 병원에서 준 크린프렙산 약상자에는 친절하게 500ml 용기가 함께 들어있었다. 눈금에 맞춰 약물을 조제한 뒤 첫 입을 대는 순간 10여 년 전 그때의 기억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이번엔 1시간에 물 1L를 매 15분마다 4회로 나눠 먹는 방법이었다. 이 정도는 솔직히 누워서 떡 먹기 아닌가.


하아. 역시 이번에도 오산이었다. 새벽 4시에 두 번째 약물을 마시는 순간부터 미간에 주름이 없어지지 않았다. 레몬 맛이 첨가되어 있지만 점점 기분이 별로였다. 밤을 꼴딱 새운 탓에 더 온몸으로 거부 반응이 올라왔다.


5시. 마지막 약물을 마시고 물로 입안을 헹궜다. 앞서 여러 마리의 물총새를 떠나보내고 난 다음이라 5시 이후엔 한두 마리 정도가 전부였다.


다행히 이번엔 수면 검사를 진행했다. 처음이라 살짝 긴장했다. 부작용이라도 생기면 어떡하지 불안한 마음도 잠시, 정신을 차려보니 모든 게 이미 끝나있었다. "안 그래도 깨우려고 했어요." 간호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 검사받은 거 맞아?' 밤을 새우고 간 탓에 정신만 몽롱했다.


의사 선생님이 내시경 사진을 보여주며 하나씩 설명해 주셨다. 클린. 깨끗. 위도, 대장도, 7월 이벤트로 진행해 준 간 초음파까지 모두 이상무였다.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기도가 절로 나왔다.


사실 그동안 만성 역류성 식도염과 위염은 내 인생의 동반자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착각이었다. 아무런 증상도 없다고 하셨다. 대장에 종종 가스가 차는 건 과민성 대장증후군 때문이고 유산균을 잘 챙겨 먹으라는 말을 덧붙이셨다.


아내와 통화했다. 고생했다는 따뜻한 한 마디로 시작한 통화는 과민성 대장증후군 유산균 처방을 왜 안 받았냐는 꾸중으로 끝났다. 따스움과 한 소리가 한데 섞인 대화. 이런 게 찐 부부 아닌가.


미리 사 둔 죽을 먹는데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행복할까. 내시경 덕분에 한 끼의 행복을 새삼 깨닫는다. 뱃속도 기분이 좋은가 보다. 식사를 마친 뒤 내내 꾸우웅 꾸우웅 소리를 내는 중인 걸 보니.


며칠 전 친구에게 내시경을 받는다고 했더니 이런 말을 했다. 그 순간은 고생스럽지만 그 덕분에 앞으로 2년간 술을 먹을 수 있는 공식적인 진단을 받는 거라고. 술까진 아니더라도 속이 좀 진정되고 나면 내일이나 주말쯤 밤 사이 생각났던 냉면이나 한 사발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