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리고 습한 날이지만 잘 보냈다

by알레

오늘따라 유독 날이 습하다.


어제저녁 내내 더부룩한 속이 아침이 되도록 그대로여서 그런가, 오늘은 좀 템포를 늦춰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돌아와 샐러드를 만들었다. 평소라면 요거트에 식빵을 구워 커피 한 잔과 함께 먹곤 하는데, 속이 좀 편해지도록 샐러드를 선택했다.


유튜브로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들으며 가벼운 끼니를 해결하고 났더니 월드컵 경기가 예정된 시간이 되었다. TV를 켜고 잠시 두 손을 모았다. '제발 이기게 해 주세요!' 결과는 1:0. 한국이 멕시코에게 졌다. 양 팀이 강보합 전을 펼쳤던 터라 질 경기가 아닌데 졌다는 게 무척 아쉬웠다.


습한 날에 아쉬움이 더해지니 여운이 꽤 강하게 남았다. '아, 속이 답답한데 나가서 좀 뛰고 올까?' 생각했다가 '아니지, 오늘은 좀 쉬어가기로 했지.' 바로 마음을 돌렸다. 주섬주섬 거실에 있던 노트북과 바카라들, 탁상용 선풍기를 챙겨 방으로 들어왔다.


에어컨을 켜고 거실에 앉아 작업하면 좋겠지만 그냥 방으로 들어왔다. 최선을 다해 소비단식을 해보겠다고 다짐했으니 유혹에 넘어갈 순 없지 않겠나. 근데 또 생각만큼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반바지를 입고 앉아있는 의자에서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허벅지가 '쩌억' 하고 떼어지는 정도랄까. 선풍기 바람을 잠시라도 쐬지 않으면 겨드랑이에 땀이 차는 정도랄까. 뭐 겨우 이 정도 더위인데. 충분히 견딜 수 있다.


축구 경기가 자아낸 찝찝함을 가시기 위해 잠시 인스타그램을 감상했다. 아무 생각 없이 올라온 영상을 보다 보니 꽤 리프레시가 됐다. 역시 가끔은 킬링 타임도 유용할 때가 있다. 너무 애쓰며 살아도 삶이 피곤해질 수 있기에 유연함이 필요하다.


그래도 해야 할 건 해야 하기에 강의 준비를 시작했다. 매 회차가 챌린지다. 회차를 지날수록 강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확고해진다. 다행인 건 그동안 온라인카지노에 쌓아놓은 글이 있어서 강의안에 활용할 만한 내용이 꽤 많다는 점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내가 이런 글을 남겼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것도 많다. 진심으로 과거의 나에게 감사하는 순간이다.


강의 준비를 일단락 짓고 오랜만에 콘텐츠 작업을 했다. 영상을 찍은 건 5월인데 이제 편집을 하고 있다. 글쓰기와는 또 다른 차원의 꾸준함이 필요한 일이다. 그 어려운 걸 해내는 크리에이터들이 실로 대단하다. 오랜만에 작업이라 그런지 꽤 몰입감 있게 했다. 글쓰기와는 또 다른 몰입감.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이쯤 되니 월드컵 패배의 여운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강의 준비와 콘텐츠 작업을 해냈다는 뿌듯함으로 채워졌음을 느꼈다.


이왕이면 맑은 날이었으면, 축구도 이겼으면 더 좋았을 테지만, 하루의 일부가 바라던 대로 흘러가지 않았을 때 남은 시간을 내 페이스대로 끌고 가는 것. 그게 생각보다 꽤 중요한 일이라는 걸 오늘 또 배웠다.


부정적인 마음에 힘을 싣지 않으면 흐린 날도 제법 평온하게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