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적당히 흐린 게 가만히 누워있기 딱 좋은 하루였다.
베란다 창을 활짝 열어두니 선선한 바람까지 들어와 더할 나위 없었다. 보통 이럴 땐 '양심'이란 녀석이 튀어나와 "양심적으로 네가 뭐 한 게 있다고 늘어져 있어?"라며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곤 했는데, 오늘은 녀석마저 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그냥 그 기분을 만끽하며 분주하지 않은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다.
돈벌이 걱정으로 마음이 가시밭길이었던 날이 많았다. 조급함에 강의도 결제하고 바카라도 구입하다 보니 제자리인 소득 대비 늘어나는 지출이 되려 마음을 더 불편하게 만들던 시절이었다. 최근 재정 원칙을 세운 뒤 목적 없는 지출을 줄이고 외출 빈도도 상당히 낮췄다. 처음엔 집에만 머무는 게 답답하고 우울하기도 했는데, 이젠 제법 적응했다.
그 과정에서 딱 한 가지를 바꿨다. 나 자신을 '집돌이'가 아닌 '홈 프로텍터(가정 지킴이)'로 정의한 것이다.
'집돌이'일 때의 나는 마치 잉여인간 같았다. 집안일은 내 하루에 마이너스처럼 느껴졌다. 뭔가를 하고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은 기분. 그 기분이 하루를 무겁게 만들었다.
그런데 '홈 프로텍터'로 스스로를 정의하고 나서부터 같은 하루가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집안 구석구석을 살피는 것이 마땅히 해야 할 역할로 느껴졌다. 평소 손이 잘 닿지 않던 곳을 청소하는 것, 눈에 밟히던 것을 정리하는 것. 그 잠깐의 움직임이 몸에 활력을 더하고 기분 좋은 에너지를 채워줬다. 마이너스로만 느껴지던 것들이 비로소 의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아주 미세한 생각의 변화였다. 하지만 그 작은 차이가 삶의 태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동안 나는 보이는 역할과 드러나는 성과에 더 의미를 부여하며 살았다. 재정적으로 보탬이 되지 않는 행동들은 내 시간을 빼앗는 일이라고 여겼다. 가장이라면 당연히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의 틀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 궤도에서 벗어나 보다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고자 했지만, 정작 내가 나 자신을 존중하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은 몰랐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존재로서의 나를 믿어주고 존중해 준 가족들 덕분에 나 또한 스스로를 존중할 수 있게 됐다.
자녀를 키우는 아빠나 엄마 중 누군가는 지금 이 순간 나의 지난날과 같은 생각에 빠져있을지 모른다. 내가 하는 일이 아무 가치 없는 것 같고, 나를 잃어버린 것 같은 먹구름이 드리울 때.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은 자녀의 햇살이 되어주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세상 무엇보다 가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