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오늘 열심히 도왔으니까 치킨 사줘

by알레

"아빠, 놀아줘, 놀아주라, 놀아달라고오오."


주말 오후가 되니 아이가 점점 보채기 시작한다. 그전까지 안 논 것도 아니다. 교회 예배가 끝나면 항상 놀이방에서 놀다가 나온다. 어제도 그랬다. 점심도 굶었는데 아이는 전혀 배가 고프지 않다고 했다. 집에 돌아와 장인 장모님께서 다녀가시는 동안은 잠잠했다. 두 분이 떠나시고 나서부터 아이는 본격적으로 떼를 부리기 시작했다.


솔직히 좀 쉬고 싶었다. 내내 늦게 자니 주말에 피곤한 건 내 바카라임이라 할 말은 없지만, 낮잠 한숨만 자면 더할 나위 없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밀려왔다. 슬쩍 이야기해봤지만 씨알도 안 먹힌다. 내가 워낙 잠자는 걸 싫어하는 사람인데 아들이라고 다를까. DNA가 아주 완벽하게 흘러간 듯하다.


바닥을 굴러다니며 오만 짜증을 다 내던 아이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더니 순간 태세 전환이 일어났다. 그 제안은 바로 '청소'였다.


선풍기를 분해하여 함께 닦자고 했다. 6살이 되고 부쩍 공구 다루는 걸 좋아하는 아이다. 장난감 건전지를 교체할 때도 드라이버를 달라며 졸졸 따라 들어온다. 해체라는 말에 아이의 눈이 반짝였다.


처음엔 거기까지만 하려고 했는데 판이 커졌다. 이왕 하는 거 날이 더 더워지기 전에 에어컨 준비까지 해두자는 마음이 생겼다. 그때부터 아이와 함께 마치 스테이지 미션을 깨듯 하나씩 정리해 나갔다.


겨우내 아이 침대에서 사용하던 텐트를 정리하고, 겨울 커튼을 내리고, 이부자리를 정돈했다. 아이에겐 인형 정리를 맡겼다. 제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며 인형들을 줄 세우는 게 대견스러웠다.


조금 더 욕심을 냈다. TV장 먼지를 제거하고, 침실 에어컨 아래 옷장 윗면을 닦았다. 아이에게도 할 수 있을 만큼의 할당량을 줬더니 조막손으로 꼬물거리며 열심히 먼지를 닦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데 이토록 청소 시간이 행복할 수가 있나 싶었다.


마지막으로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 한 번에 다 들고나갈 수 없는 양이었는데 아이는 자기가 다 들겠다고 욕심을 냈다. 결국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에 박스를 쏟았다. 발로 드리블하듯 끌고 내려갔지만 하나를 놓친 채 내려가야만 했다. 다시 올라가 챙겨 내려오고, 마지막으로 소형 가전까지 내다 버린 뒤 청소기를 돌리는 걸로 모든 게 마무리됐다.


그 모든 과정에 아이는 함께 했다. 혼자 했으면 더 빨랐겠지만 함께라서 의미 있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스스로도 자랑스러웠는지 아이는 당당하게 요구했다.


"아빠, 오늘 열심히 도왔으니까 치킨 사줘." "그리고 나 오늘 TV도 많이 안 봤으니까 TV도 많이 볼게." "아, 또 하나. 아이스크림도 먹을 거야."


까짓것. 뭐가 문제겠나. 아이가 이토록 즐거워하는데.


덕분에 늦은 저녁을 먹고 늦게까지 놀다가 자정 무렵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침대에 누워 아이에게 말했다. "아들, 아빠는 오늘 아들이 도와줘서 너무 고마웠어. 사랑해." 아이는 마지막 요구사항을 전했다.


"아빠, 내일은 새우가스랑 소시지도 주고 나랑 계속 놀아주기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 듯해서 이야기해줬다.


"근데 아들아. 내일 너 유치원 가는 날이야."

아이는 진심으로 놀란 표정이었다. 그리고 조금 더 쏙닥거리다 이내 잠이 들었다.


아이와 함께하는 날들은 모든 순간을 다 잡아채지 못해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말 한마디, 표정 하나를 그대로 담아내고 싶지만 다 담을 수 없기에 순간에 최선을 다해 집중하게 된다.


어느새 이만큼 커버린 아들이 대견하고 고맙고 사랑스럽다. 정말 이 맛에 아빠가 되는가 보다. 청소를 하자고 했더니 같이 해주고, 치킨에 아이스크림에 새우가스까지 요구하는 이 작은 사람이. 세상 누가 이런 즐거움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아이는 정말이지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