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살까 말까? 그런데 뭘 사지?
요즘 AI 하드웨어와 반도체 독주가 도무지 쉬어갈 줄을 모릅니다.
올라도 너무 올랐는데 아직도 멈출 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지난 4월 말 뱅크오브아메리카 조사에서도 펀드매니저들은
“모두가 반도체 롱을 외치고 있기 때문에 이제 초과 수익을 찾기가 힘들다. 그렇다고 반도체를 팔 수도 없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반도체 전체를 사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세부 분야로 내려가 알파를 찾는 접근을 선호하고 있다는 거죠.
결국 투자자들의 관심은 “반도체를 살까 말까?”가 아니라
“어떤 반도체를 어떤 리스크/리워드로 볼 것인가?”로 이동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수박 겉핥기 수준이라도 AI 반도체 밸류체인의 하위 분야들을 쭉 한번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엔비디아 GPU가 AI 시대의 모든 출발점이었다고 한다면,
이제는 그 병목과 수혜가 점점 더 넓은 분야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죠.
HBM 메모리, 맞춤형 반도체, 첨단 패키징, 장비, 전력 반도체, 파운드리, CPU, 인터커넥트까지 수혜가 연쇄적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시장 전체는 유가상승, 금리 부담, 차익 실현 등으로 흔들리는데 반도체만 마이웨이를 가고 있습니다.
버블이냐 아니냐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인 AI 반도체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될 것 같아 정리해 봅니다.
2022년 말, 조용한 동네 게시판에 공고문 하나가 붙었습니다.
“AI 도시 건설 시작. 심장 공사부터 진행. 참여 건설사 모집.”
공고를 낸 건 오픈 AI였고
가장 먼저 달려온 건설사는 엔비디아였습니다.
엔비디아는 GPU(그래픽처리장치, 수천 개 계산을 동시에 처리하는 칩)라는 이름의 도시 심장 공사를 맡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이 공사가 “데이터센터 몇 개 짓는 프로젝트”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3년 반 뒤,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AI 도시의 핵심 기업 중 하나인 앤트로픽은
매출이 1,000만 달러에서 450억 달러로 성장했습니다.
4,500배입니다.
더 이상한 건 속도입니다.
최근 90일 매출 증가가 이전 17개월보다 많았습니다.
이제 돈은 한 방향으로 흐릅니다.
미친 듯이 주가를 올리고 있는 반도체로 말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 하나.
이 도시는 심장 하나로는 절대 돌아가지 않습니다.
AI 도시의 첫 번째 구조물은 심장입니다.
그리고 그 심장은 GPU입니다.
GPU는 인간의 뇌처럼 하나를 깊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신 수천 개의 계산을 동시에 처리합니다.
그래서 AI는 GPU 위에서만 돌아갑니다.
현재 이 심장 공사는 엔비디아가 사실상 독점하고 있습니다.
AI 서버의 대부분이 엔비디아 GPU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변화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번 주 등장한 회사, 세레브라스.
이 회사는 반도체 웨이퍼(원판)를 잘게 자르지 않고
통째로 하나의 초대형 칩처럼 쓰는 방식을 들고 나왔습니다.
아직 적자 기업이지만 기업가치는 500억 달러 수준까지 언급됩니다.
이건 기술 혁신이기도 하고, 동시에 시장의 과열 신호이기도 합니다.
도시가 커지면 문제가 생깁니다.
심장은 있는데, 도시를 누가 운영하느냐입니다.
GPU가 공장이라면 CPU는 관제탑입니다.
AI 초기에는 GPU만 있으면 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AI 에이전트 시대가 오면서 구조가 바뀌었습니다.
AI는 이제
스스로 판단하고
도구를 호출하고
기억을 꺼내고
여러 작업을 동시에 수행합니다
이걸 조율하는 것이 CPU입니다.
과거에는 GPU 8개당 CPU 1개면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AI의 작업이 복잡해지면서 GPU의 필요성도 함께 증가했습니다.
앞으로는 GPU 1~2개당 CPU 1개가 필요할 거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CPU 수요 최대 8배 증가 가능하다는 말이죠
그래서 AMD, ARM, 인텔이 동시에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ARM은 저전력 설계 강자로
2030년 CPU 시장의 절반 이상을 가져갈 가능성이 언급됩니다.
메모리 — 도시 창고
AI는 기억하는 도시입니다.
이 도시의 기억 창고가 D램과 HBM입니다.
HBM은 GPU 바로 옆에 붙은 초고속 창고입니다.
필요한 물건을 0초에 꺼내오는 구조입니다.
AI가 발전할수록
더 많은 대화
더 많은 데이터
더 긴 기억
그래서 창고는 계속 커져야 합니다.
모건스탠리 전망에 따르면 2030년까지 메모리 수요는 공급 대비 최대 77% 부족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네요.
그래서 마이크론, SK하이닉스, 삼성전자가 동시에 핵심이 됩니다.
파운드리 — 도시 공장
설계된 칩을 실제로 만드는 곳입니다.
TSMC가 1위, 삼성전자와 인텔이 뒤를 쫓습니다.
특히 요즘은 “첨단 패키징”이 핵심입니다.
최근 첨단 패키징이 새로운 병목으로 떠올랐습니다.
AI 서버는 GPU와 HBM을 하나로 묶어야 하는데, 이 묶음 작업이 생각보다 까다롭습니다.
GPU는 워낙 비싸서 묶는 과정에서 불량이 하나라도 나오면 수억 원짜리 패키지 전체가 날아갑니다.
TSMC의 CoWoS라는 기술이 지금 이 병목을 쥐고 있고, 인텔의 EMIB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전력 — 도시 전기망
AI 도시에서 가장 빠르게 커지는 문제가 전기입니다.
GPU 성능이 올라갈수록 전기를 더 먹습니다.
데이터센터 서버 랙 하나가 쓰는 전력이 냉장고 수십 대 수준입니다.
이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전압을 필요한 수준으로 바꿔주고,
순간적인 변동을 잡아주는 게 전력 반도체입니다.
AI가 데이터센터를 벗어나 로봇, 자율주행차, 산업 장비로 퍼질 때는
아날로그 반도체가 핵심이 됩니다.
디지털 신호가 아닌 온도, 압력, 속도 같은 아날로그 신호를 처리하는 칩입니다.
GPU가 AI의 두뇌라면, 아날로그 반도체는 AI가 물리 세계를 느끼는 감각기관입니다.
인터커넥트 — 도시 도로
GPU 수천 개를 초고속으로 연결해야 합니다.
AI 도시의 고속도로 공사입니다.
빛으로 데이터를 전송하는 실리콘 포토닉스 기술이 핵심입니다.
최근 루멘텀이 하루에 16% 올랐습니다.
나스닥 100 편입 소식 덕분이었지만,
그 배경엔 AI 인터커넥트 시장의 핵심 공급자라는 이유가 있습니다.
코히어런트와 코닝도 같은 날 10~12% 올랐습니다.
EDA — 설계 사무소
칩을 설계할 때 반드시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파는 회사들입니다.
어떤 칩이 잘되든 못되든, 칩을 만들려면 이 소프트웨어가 필요합니다.
도시 건설 현장에서 어느 건설사가 이기든 도면 소프트웨어는 팔리는 것처럼요.
전쟁터에서 어느 편이 이기든 총포 설계 도면을 독점 판매하는 사람 같은 포지션입니다.
공사가 이렇게 빠르게 진행되면 두 가지 걱정이 생깁니다.
하나는 "이 속도가 진짜인가"이고,
다른 하나는 "너무 빨리 올랐으니 거품 아닌가"입니다.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반도체 회사들 주가를 묶어놓은 지수)는
3월 말 이후 6주 만에 67% 급등했습니다.
같은 기간 S&P500은 8~9% 올랐습니다.
메모리 PER (내년 실적 기준) 7~8배가 올랐는데
이는 닷컴버블 당시는 100배 이상 올랐습니다.
200일 이동평균선이란 최근 200일간 평균 주가를 이은 선입니다.
시장의 장기 체력을 보는 기준선으로 씁니다.
주가가 이 선보다 57% 위에 있다는 건 단기간에 너무 빨리 올랐다는 신호입니다.
1995년과 2000년에만 이런 현상이 있었고, 두 번 모두 크게 조정을 맞았죠.
여기서 두 진영이 맞붙습니다.
'공사는 계속된다.'는 진영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나스닥 3년 상승률 118%. 2000년 당시는 296%였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메모리 PER 7~8배는 저렴한 편이죠.
AI 수요는 꺾일 기미가 없어 보입니다.
설비 투자 계획은 계속 상향 중이고요.
그러니까 AI관련 반도체 주가는 '당분간 우상향 할 것이다.' 하는 의견이 강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반면 공사가 너무 빠르다는 주장도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너무 빠르게 올랐다.' '곧 버블이 터질 거다.'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죠.
200일선 대비 57% 위는 1995년과 2000년 이후 처음입니다.
빅쇼트라는 영화의 실제 주인공 마이클 버리가
"지금 2000년 3월이랑 같다."라고 경고했다.
마이크론은 올해 3월 어닝 서프라이즈에도 2주 만에 30% 폭락한 전례가 있습니다.
물론 반도체 랠리가 끝났다고 말하기엔 펀더멘털이 너무 강해 보입니다.
빅테크와 하이퍼 스케일러들의 실적은 예상 이상으로 높게 나왔고요.
그렇다고 추격 매수하기엔 또 너무 빨리 올라서
팔기도 무섭고, 더 사기도 무서운 상태라는 것입니다.
요즘 월가 펀드매니저들은 공통적으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계단이 끝없이 보이는데 엘리베이터는 이미 만원인 느낌.
지금이 딱 그 상태입니다.
여기에 공사 현장을 흔들 수 있는 세 가지 변수가 있습니다.
삼성전자 파업 (5월 21일 총파업 예고, 결행 시 공급 차질로 차익 실현 빌미가 될 수 있습니다),
세레브라스 상장 (이번 주, 상장 후 반응이 랠리에 기름이 될지 물이 될지 미정),
AI 규제 논의 (미중 정상회담에서 AI 안전 협의체 구성이 논의될 수 있습니다)가 그것입니다.
이것들이 AI 펀더멘털을 훼손하지는 않지만,
이미 과열된 시장에선 부정적인 작은 뉴스 하나에도 흔들릴 가능성도 있습니다.
AI 도시 건설이 확실하다면, 문제는 어디에 투자하느냐입니다.
심장(GPU)은 이미 너무 알려졌고 가격도 비쌉니다.
그래서 월가는 지금 어느 발주처에 주목하고 있을까요.
메모리 (창고) - 모건스탠리 1순위
어디가 뜨든 창고는 커져야 합니다.
CPU 수요가 늘면 D램이 더 필요하고, GPU 수요가 늘어도 HBM이 더 필요합니다.
수혜 축이 가장 많은 분야입니다.
마이크론·샌디스크 목표주가 1,000달러가 연달아 나왔습니다.
ARM (관제탑 설계) - UBS 최선호
저전력 설계의 강자. 엔비디아·아마존·구글이 모두 ARM 아키텍처로 자체 CPU를 만들고 있습니다.
UBS는 2030년 CPU 시장에서 ARM이 52%를 차지할 것으로 봅니다.
직접 경쟁하지 않으면서 시장 전체의 성장을 누리는 구조입니다.
AMD (관제탑 + 엔진) - CPU·GPU 동시 수혜
CPU와 GPU를 동시에 만드는 유일한 회사.
인텔보다 월가 선호도가 높습니다.
두 분야의 성장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포트폴리오 관점으로 매력적입니다.
아날로그디바이스 (감각기관) - 뱅크오브아메리카 대형주 1순위
AI가 현실 세계로 나올 때 빛나는 회사.
지금 당장 화려하지 않지만, 방향이 맞는 거북이입니다.
로봇·자율주행·산업 자동화가 본격화될 때 조용히 가장 많이 웃는 분야입니다.
인텔 (조립 공장) 가능성은 있지만 증명 필요
미국 내 자체 파운드리를 보유한 전략적 가치는 있습니다.
산바노바와 AI 추론 인프라 공동 개발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시장에 증명해야 할 것이 많습니다.
기다릴 수 있는 분들을 위한 선택지일 수 있습니다.
EDA 소프트웨어 (설계 사무소)- 조용한 독점
시놉시스, 케이던스.
어떤 칩이 잘되든 못되든 칩 설계에 반드시 필요한 소프트웨어입니다.
경쟁이 없고, 전환 비용이 높고, AI 반도체가 복잡해질수록 수요가 올라가는 구조입니다.
에필로그
도시가 완성되면 어떤 세상이 올까 궁금해집니다.
우리의 전망은 언제나 틀릴 수 있지만
지금 보이는 큰 그림을 보면 단기적으로는 AI 수요가 꺾일 신호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주 만에 67% 오른 지수를 보면
작은 빌미 하나에도 숨 고르기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지금 추격 매수보다는 숨 고르기 구간에서 관심 종목을 미리 골라두는 게 현명합니다.
중기적으로는 AI 슈퍼사이클이 진짜라면 메모리와 CPU 수요가 예상보다 훨씬 오래 강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시장은 소수 AI 종목만 끌고 가는 구조입니다.
전체가 오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훨씬 좁은 길입니다.
장기적으로는 지금 데이터센터에 몰려 있는 수혜가 점점 바깥으로 퍼질 것입니다.
로봇, 자율주행, 위성이 본격화될 때 전력 반도체, 아날로그 반도체, RF 반도체의 시간이 옵니다.
도시 외곽 부지가 빛나는 시점이 그때입니다.
그리고 그 도시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이 글이 지도 역할을 했으면 합니다.
지도 없이 달리는 것보다, 지도를 보고 달리는 쪽이 훨씬 나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