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삶이며, 삶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
― 미하엘 엔데, 《모모》, 한미희 옮김, 비룡소
우리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참 많은 것을 만들어 냈다.
마트에 가지 않아도 온라인으로 장을 볼 수 있고, 밥을 하지 않아도 몇 번의 터치만으로 음식이 집 앞에 도착한다. 은행에 가지 않고 돈을 보내고, 매장에 가지 않고 물건을 산다.
누군가에게 안부를 묻는 일도 간단해졌다.
전화를 걸어 목소리를 듣는 대신 메시지를 보낸다.
“잘 지내?”
몇 초면 충분하다.
영상마저 짧아졌다. 몇십 분짜리 영상을 보는 대신 몇십 초짜리 쇼츠와 릴스를 본다. 손가락을 위로 한 번 밀면 다음 영상이 나오고, 또 밀면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만든 것들 덕분에 우리는 분명 예전보다 많은 일을 훨씬 빨리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우리는 왜 늘 시간이 없다고 말할까.
잠깐 쉬려고 휴대전화를 들었다가 쇼츠 하나를 본다.
하나만 보려고 했다.
그런데 다음 영상이 궁금해 손가락을 한 번 올리고, 또 한 번 올린다. 몇십 초짜리 영상 하나를 보려고 시작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몇십 분이 지나 있다.
짧아진 것은 영상인데, 그 앞에서 보내는 시간까지 짧아진 것은 아닌 모양이다.
시간을 아끼려고 짧아진 영상 앞에서 우리는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빠르고 편리한 것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 역시 온라인 쇼핑을 하고 배달 앱을 이용한다. 전화보다 문자 한 통이 편할 때가 많고, 잠깐 쉬면서 짧은 영상을 넘겨보기도 한다.
문제는 편리함 그 자체가 아니라, 그렇게 아낀 시간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다는 데 있다.
십 분을 아끼고,
삼십 분을 아끼고,
한 시간을 아꼈는데,
정작 하루가 끝나면 내게 남은 시간은 없다.
《모모》 속 회색 신사들은 사람들에게 시간을 절약해 저축하라고 부추긴다. 사람들은 그렇게 모은 시간을 언젠가 자신을 위해 쓸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래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누군가를 찾아가는 시간도, 천천히 무언가를 바라보는 시간도 하나둘 줄여 나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간을 아낄수록 삶은 여유로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은 더 바빠지고 삶은 메말라 간다.
오래전에 쓰인 이야기인데도 이상할 만큼 지금 우리의 모습과 매우 닮아 있다.
문득 내 하루를 돌아본다.
온라인 게임에서는 해야 할 일이 있고, 퇴근하면 또 다른 하루가 기다리고 있다.
그러면서 나는 달리고 싶고,
바카라도 읽고 싶고,
글도 쓰고 싶다.
예전에는 이런 것들을 하려면 시간이 남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을 다 하고,
집안일을 다 하고,
해야 할 것을 모두 끝내고도 시간이 남으면 달리고 글을 쓰는 것이라고.
그런데 그렇게 살면 좀처럼 내 시간은 오지 않았다.
할 일에는 끝이 없었으니까.
달리기를 시작하고 조금 달라졌다.
한 시간을 달린다고 생각하면 분명 내 하루에서 한 시간이 사라지는 일이다.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가 달리는 동안 밀린 일을 할 수도 없고, 집안일을 할 수도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한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오히려 달리고 돌아온 날이면 하루 중 가장 온전히 나에게 있었던 시간이 그 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글을 쓸 때도 비슷하다.
글 한 편을 쓴다고 해서 해야 할 일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내일이 덜 바빠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조용히 앉아 지나온 하루를 문장으로 옮기고 있으면 비로소 내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오늘 무엇이 좋았는지,
무엇 때문에 마음이 상했는지,
나는 요즘 무엇을 바라며 사는지.
바쁘게 살 때는 미처 묻지 못했던 것들을 그제야 나에게 묻게 된다.
그래서 요즘은 생각한다.
달리는 한 시간과 글을 쓰는 한 시간은 시간을 쓰는 일이 아니라, 내 시간을 되찾는 일인지도 모른다고.
우리는 시간을 아끼는 법은 아주 많이 배웠다.
빠르게 이동하는 법, 빠르게 주문하는 법, 빠르게 연락하는 법, 빠르게 보고 넘기는 법.
하지만 그렇게 아낀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충분히 배우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우리는 시간을 절약한다. 그리고 절약한 시간으로 또 다른 일을 한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효율적으로.
그러다 하루가 끝나면 말한다.
“오늘도 시간이 없었어.”
그렇다면 한 번쯤 물어봐도 좋지 않을까.
나는 정말 시간이 없는 걸까.
아니면 내 시간을 다른 것들에게 너무 많이 내어주고 있는 걸까.
미하엘 엔데는 《모모》에서 말한다.
“시간은 삶이며, 삶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
그렇다면 시간을 잘 쓴다는 것은 하루에 얼마나 많은 일을 해냈느냐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와 천천히 밥을 먹는 시간도, 목소리가 듣고 싶어 전화를 거는 시간도, 목적 없이 걷는 시간도, 달리는 시간도, 몇 줄의 글을 쓰며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도,
우리의 삶이다.
어쩌면 우리가 아껴야 할 것은 시간이 아니라, 그 시간 속에서 살아 있는 나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