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가리고 맛을 남기다

영화 『와인 미라클』과 K커피어워드의 블라인드 테스트

와인 미라클(2008) Wine Miracle



이름이 사라진 잔에서 시작된 변화


영화 『와인 미라클』은 1976년 파리에서 이루어진 블라인드 와인 테이스팅을 소재로 삼는다. 당시 프랑스 와인은 오랜 역사와 산지의 명성, 생산자의 이름을 바탕으로 세계 와인시장에서 강한 권위를 가지고 있었고, 캘리포니아 와인은 그에 비하면 아직 새로운 생산지의 와인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았다.

그런데 생산지와 라벨을 가린 채 와인 자체를 평가하자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가 나타났다. 프랑스와 캘리포니아의 와인이 같은 자리에서 평가받았고, 캘리포니아 와인이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이후 미국 와인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에도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내가 이 사건에서 흥미롭게 보는 것은 어느 나라가 어느 나라를 이겼느냐는 승패의 문제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오랫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권위와 실제 감각 사이에 잠시 거리가 생겼다는 점이다.

라벨이 보이지 않는 순간 생산국과 가격, 생산자의 명성, 오래된 역사와 이미 알고 있던 평판은 잠시 뒤로 물러난다. 심사자의 앞에는 잔 안의 향과 맛, 구조와 균형, 그리고 마신 뒤에 남는 여운이 먼저 놓인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의 의미는 단순히 병을 가리는 행위에 있지 않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이름과 기대, 가격과 명성을 잠시 침묵시키고 실제 감각이 정보보다 먼저 말하도록 순서를 바꾸는 데 있다.

결국 블라인드 평가가 묻는 것은 단순하다. 이름을 모르는 상태에서도 이 한 잔이 충분히 좋은가,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던 권위와 설명 없이도 실제 맛이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우리는 맛보기 전에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사람은 자신이 순수하게 혀와 코로만 맛을 판단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한 잔을 마시기 전부터 우리는 상당히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있다. 브랜드와 가격, 생산지와 품종, 패키지와 수상경력, 누가 만들었으며 누가 추천했는지에 대한 정보가 먼저 기대를 형성하고, 우리는 그 기대를 가진 채 잔을 든다.

그렇다고 이런 정보가 불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산지와 품종, 가공방식과 생산자에 대한 정보는 커피를 훨씬 깊게 이해하게 만들고, 좋은 브랜드가 오랜 시간 쌓아온 신뢰 역시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가격 또한 희소성과 생산비, 품질과 유통구조 같은 여러 조건을 어느 정도 반영할 수 있다.

문제는 정보가 감각을 돕는 수준을 넘어 감각이 도착하기 전에 결론을 대신 내려버릴 때 생긴다.

매우 비싼 와인이나 커피라는 사실을 알고 마시면 실제 감각보다 더 특별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고, 유명한 생산자나 농장의 이름을 알고 있다면 작은 결점을 자연스럽게 지나칠 가능성도 있다. 반대로 익숙하지 않은 생산지역이나 처음 듣는 농장의 커피라면 잔을 들기 전부터 기대를 낮게 설정할 수도 있다.

커피에서도 게이샤 같은 유명 품종의 이름을 알고 마실 때, 세계적으로 알려진 농장이나 로스터리의 커피라는 설명을 들었을 때, 혹은 매우 높은 가격을 알고 있을 때 감각은 이미 완전히 중립적인 상태가 아니다.

이것을 인간의 감각이 불완전하다는 문제로만 볼 필요는 없다. 정보와 기대 역시 실제 소비경험을 구성하는 일부이기 때문이다. 다만 품질 그 자체를 평가해야 하는 순간이라면, 그 정보가 실제 맛을 대신하지 않도록 잠시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블라인드 테스트는 바로 이 순서를 뒤집는다. 먼저 알고 맛보는 대신 먼저 맛보고 나중에 알게 하며, 이름과 가격, 브랜드와 명성을 잠시 가린 상태에서 잔 안에 있는 커피가 어느 정도의 완성도를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게 한다.


결국 커피는 잔 안에서 설득해야 한다


커피의 세계에도 분명한 이름값이 존재한다. 유명한 산지와 품종이 있고, 세계적으로 알려진 농장과 생산자가 있으며, 영향력 있는 로스터리와 브랜드도 있다.

그 이름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좋은 생산자는 오랜 시간 재배와 수확, 가공에 대한 경험을 축적해 왔고, 좋은 로스터는 생두를 해석하는 기술과 감각을 발전시켜 왔으며, 좋은 브랜드 역시 반복되는 품질과 경험을 통해 신뢰를 만들어왔다.

하지만 평가의 순간에는 그런 배경을 잠시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산지의 역사와 품종의 특성, 생산자의 철학과 가공방식, 로스터가 어떤 의도로 열을 사용했는지는 한 잔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정보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이 실제 맛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결국 커피는 잔 안에서 스스로를 설득해야 한다.

향이 얼마나 깨끗하고 선명한지, 산미와 단맛이 어떤 관계를 이루는지, 질감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지, 불쾌한 결점은 없는지, 마신 뒤의 여운이 얼마나 명료하게 남는지 같은 요소가 실제 감각으로 확인되어야 한다.

아무리 유명한 산지의 커피라도 잔 안에서 충분히 설득하지 못한다면 이름만으로 높은 평가를 받을 이유는 없고, 반대로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과 생산자의 커피라도 향과 맛, 균형과 여운에서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면 새롭게 발견될 수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블라인드 테스트는 커피를 다시 잔 안으로 돌려놓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설명이 먼저 오는 것이 아니라 감각이 먼저 오고, 명성이 품질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품질이 그 명성을 다시 확인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K커피어워드가 던지는 질문


K커피어워드 역시 이러한 평가방식을 한국의 커피문화 안에서 실천하려는 시도로 바라볼 수 있다.

대회가 제시해 온 취지에 따르면 세계 여러 생산지에서 출품된 생두를 한국의 커피 전문가들이 관능평가하고, 그 가운데 우수한 커피를 찾아 생산지와 소비지에 소개하는 것이 중요한 방향이다. 워시드와 넌워시드 등 가공의 차이를 구분해 평가하고, 한국의 소비자와 커피 전문가가 세계 여러 생산지의 커피를 직접 만나 좋은 품질을 발견한다는 의미도 함께 담겨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1위부터 몇 위까지의 순위를 정하는 데 있지 않다.

커피를 많이 소비하는 지역에서 생산자의 노력과 결과를 직접 평가하고, 아직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가치 있는 커피와 생산지를 발견하며, 그 평가가 산지의 홍보와 시장 접근, 새로운 거래 가능성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한국은 이미 커피를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슬롯가 되었지만, 소비량이 많다는 사실만으로 커피문화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많이 마시는 단계 이후에는 무엇을 좋은 커피라고 판단할 것인지, 누구의 커피를 새롭게 발견할 것인지, 그리고 소비지에서 이루어진 평가가 생산지에 어떤 의미로 돌아갈 수 있는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소비지의 역할이 단지 커피를 구매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면, 좋은 커피를 알아보고 그 가치를 설명하는 일 역시 하나의 문화적 바카라임이 될 수 있다.

K커피어워드가 흥미로운 이유도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농장의 이름으로 다시 돌려보내는 평가


내가 K커피어워드에서 중요하게 보는 부분 가운데 하나는 평가의 결과를 다시 농장과 생산자의 이름으로 연결한다는 점이다.

현대커피의 이야기는 소비지로 넘어오면서 쉽게 화려해진다. 어느 유명 로스터리가 볶았는지, 어떤 바리스타가 추출했는지, 어느 카페에서 판매하고 있는지가 소비자에게 먼저 보이고, 때로는 그 이름들이 생두의 생산자보다 훨씬 강한 브랜드가 되기도 한다.

물론 소비지의 작업 역시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생두라도 로스팅과 추출이 적절하지 않으면 그 가능성이 충분히 표현되기 어렵고, 좋은 커피를 손님에게 설명하고 경험으로 전달하는 카페와 바리스타의 역할도 결코 작지 않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이 시작되기 훨씬 전에는 농장이 있었다.

커피나무를 돌보고 열매가 익는 것을 기다리며, 적절한 시기에 수확하고 가공과 건조를 거쳐 생두를 만들어낸 사람들의 시간 속에서 커피의 가능성이 처음 형성된다.

그렇기 때문에 농장의 이름으로 커피를 인정한다는 것은 완성된 한 잔의 공을 소비지에서만 나누지 않고 그 가능성을 만들어낸 출발점으로 다시 시선을 돌리는 일이다.

커피가 소비지에서 최종적인 한 잔으로 완성된다고 해도 생산지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태도이며, 커피를 이름 없는 원료가 아니라 특정한 땅과 사람, 한 해의 자연조건과 생산자의 판단이 만난 결과로 바라보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름 없는 커피에도 같은 잔을 내어주는 일


블라인드 테스트가 가진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는 평가가 이루어지는 순간만큼은 서로 다른 이름을 같은 출발선 위에 놓는다는 것이다.

널리 알려진 농장과 처음 듣는 농장이 같은 형식의 잔에 놓이고, 오랜 명성을 가진 산지와 아직 소비자에게 익숙하지 않은 생산지역이 같은 기준을 통해 평가받는다.

물론 블라인드 테스트 하나만으로 커피산업 전체가 공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생산국과 지역마다 자본과 인프라, 기술과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조건이 다르고, 국제시장과 연결될 기회 역시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평가 순간의 익명성이 산업 전체의 구조적인 불균형까지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한 잔을 평가하는 순간에는 이름의 크기보다 실제 컵의 품질을 먼저 바라볼 수 있다.

이 점은 아직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생산자에게 특히 중요하다. 세계적인 농장의 명성이나 고가 품종의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잔 안에서 높은 품질을 보여준다면 그 커피는 충분히 주목받을 수 있어야 하고, 평가가 그동안 잘 보이지 않았던 생산자와 지역을 소비지에 소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예컨대 2023년 카메룬 알롱시 농장이 평가를 통해 주목받았던 사례를 생각하면, 어워드가 이미 유명한 이름을 다시 확인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새로운 생산지를 발견하는 역할을 수행할 가능성을 볼 수 있다.

블라인드 테스트가 커피에게 던지는 질문은 결국 단순하다.

이미 알고 있는 이름의 도움 없이도 이 한 잔은 충분히 좋은가.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설명보다 먼저 마셔야 한다.


블라인드 테스트가 보여주지 못하는 것


그렇다고 블라인드 평가만으로 커피의 모든 가치를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한 잔의 감각적 품질과 생산자의 삶은 서로 다른 문제이고, 커피의 맛이 훌륭하다고 해서 그 생산과 거래 과정까지 자동으로 공정하고 지속가능해지는 것도 아니다.

커피에는 노동조건과 거래관계, 생산자가 받는 보상과 생태환경, 장기적인 농업의 지속가능성 같은 문제가 존재하며, 소비지에서는 서비스와 환대, 공간과 가격, 손님이 실제로 경험하는 가치 역시 함께 고려된다.

블라인드 테스트는 이 모든 것을 평가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역할을 명확하게 제한할 때 블라인드 평가의 의미는 더 선명해진다. 감각적인 품질을 평가하는 순간에는 가능한 한 이름과 기대를 내려놓고 컵 자체를 바라보되, 그 커피의 전체적인 가치를 이해하려 할 때에는 다시 생산지와 사람, 거래와 환경에 관한 정보를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블라인드와 정보는 서로 반대되는 방식이 아니라 서로 다른 질문에 답하기 위한 방법이다.

먼저 맛으로 만나고, 그다음 그 맛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아가는 순서라고 생각하는 편이 더 적절하다.


한국의 감각으로 세계의 커피를 읽는다는 것


K커피어워드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한국의 커피 전문가들이 세계 여러 생산지의 커피를 직접 평가한다는 데 있다.

다만 이때 ‘한국인의 입맛’이라는 표현은 조심스럽게 사용할 필요가 있다. 한국 사람이 좋아하는 커피만 좋은 커피라고 규정하거나 한국의 감각을 다른 지역의 평가기준보다 우월한 것으로 이해한다면 쉽게 폐쇄적인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커피는 애초부터 이동과 교류를 통해 세계적인 음료가 되었다. 한 지역에서 생산된 커피가 다른 나라로 이동하고, 서로 다른 문화가 자신들의 방식으로 볶고 추출하고 마시면서 오늘의 다양한 커피문화가 만들어졌다.

따라서 세계의 커피를 평가한다는 것은 국제적으로 축적된 품질의 언어와 감각적인 기준을 존중하면서도, 각각의 소비문화가 실제로 무엇을 경험하고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함께 살펴보는 일에 가깝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의 감각으로 세계 커피를 읽는다는 것은 세계의 기준을 거부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 축적된 커피 지식과 평가방법을 바탕으로 한국의 소비문화 역시 자신만의 경험과 해석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편이 적절하다.

한국에는 이미 수많은 카페와 로스터리, 바리스타와 교육기관, 대회와 축제가 있고, 일상적으로 다양한 커피를 경험하는 소비자층도 넓다. 그렇다면 이제 해외에서 만들어진 커피의 언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머물지 않고, 세계의 커피를 직접 만나고 평가하면서 어떤 커피를 왜 좋다고 느끼는지 자신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지역의 감각은 세계를 좁히는 벽이 아니라 세계를 다른 방향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하나의 창이 될 수 있다.


좋은 평가는 감각 이전에 태도의 문제다


커피를 평가한다는 것은 점수표에 숫자를 적는 일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향과 맛, 산미와 단맛, 질감과 균형, 여운과 같은 여러 항목을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실제 판단을 내리는 심사자의 감각과 경험을 완전히 기계적인 기준으로 만들 수는 없다.

어떤 특징을 결점으로 볼 것인지, 어느 정도의 산미를 긍정적으로 읽을 것인지, 낯선 향미를 개성으로 받아들일지 불편한 요소로 판단할지에는 심사자의 경험과 문화적 배경, 감각훈련이 어느 정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좋은 평가에는 감각의 훈련만큼 태도의 훈련이 필요하다.

자신에게 익숙한 산지의 이름을 모르는 상태에서도 커피의 품질을 읽을 수 있어야 하고,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향미라 하더라도 자신의 취향과 그 커피의 완성도를 분리해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반대로 유명한 농장이나 품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이유로 잔 안에서 실제로 느껴지는 부족함을 외면해서도 안 된다.

블라인드 테스트는 이런 태도를 반복해서 시험한다.

심사자에게 이름 없이도 이 커피를 읽을 수 있는지, 가격을 모르는 상태에서도 그 품질을 판단할 수 있는지, 익숙하지 않은 향미를 만났을 때 자신의 취향과 품질의 문제를 구별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결국 블라인드 평가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를 이상적인 상태로 만들자는 방식이 아니다.

오히려 충분히 공부하고 경험한 사람이 평가의 순간만큼은 자신이 알고 있는 이름과 명성을 한쪽에 내려놓고 다시 잔 앞에 앉는 훈련에 가깝다.

지식이 커피보다 먼저 결론을 내려버리지 않도록 하고, 실제 감각이 경험한 것을 이후에 지식이 설명하도록 순서를 조정하는 것이다.


발견한 뒤에는 바카라임이 남는다


좋은 커피를 발견하고 난 뒤에는 또 다른 질문이 시작된다.

그 평가가 생산자에게 무엇으로 돌아갈 것인가.

수상 결과가 소비지에서만 브랜드와 마케팅을 위한 자산으로 사용되고, 정작 그 커피를 만든 생산자가 그 가치에서 충분한 혜택을 얻지 못한다면 좋은 평가가 만들어내는 의미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생산지를 대상으로 하는 커피어워드는 수상자를 선정하고 트로피를 전달하는 데서 끝나기보다, 그 결과가 생산자의 이름을 알리고 새로운 거래와 시장 접근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이후의 연결까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좋은 것을 알아보는 능력은 발견한 가치가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바카라임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소비지의 역할은 세계의 커피 가운데 좋은 것을 선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왜 그 커피가 좋은지 설명하고, 그것을 누가 만들었는지 알리며, 소비지에서 높아진 관심과 가치가 다시 생산지에 연결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까지 포함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K커피어워드에서 정말 중요하게 바라보아야 할 것은 순위 자체보다 발견 이후의 과정일지도 모른다.

한 잔의 평가를 통해 하나의 농장을 알게 되고, 그 이름이 새로운 로스터와 소비자에게 전달되며, 그 관심이 실제 거래와 다음 수확의 가능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품평은 단순한 점수 기록을 넘어 관계를 만드는 행위가 된다.


이름보다 먼저 맛이 있어야 한다


『와인 미라클』이 보여주는 1976년 파리의 블라인드 테이스팅은 오랫동안 쌓인 전통과 권위가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 사건이라기보다, 아무리 강한 명성을 가지고 있더라도 실제 맛 앞에서 다시 검증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장면으로 보는 편이 더 흥미롭다.

프랑스라는 이름도, 캘리포니아라는 이름도 보이지 않는 순간 심사자는 자신이 실제로 마시는 잔 앞에서 다시 판단해야 했다.

커피에서도 이 태도는 여전히 중요하다.

큰 브랜드와 유명한 농장, 희귀한 품종과 화려한 설명은 한 잔의 가치를 더 풍부하게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지만 그것들이 실제 맛을 대신할 수는 없다.

한국의 커피문화가 더 깊어진다는 것 역시 유명한 커피를 더 많이 소비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이름을 보지 않고도 좋은 커피를 알아볼 수 있는 감각을 기르고, 그렇게 발견한 커피가 어디에서 왔고 누가 만들었는지를 다시 찾아가며, 소비지에서 형성된 관심과 가치가 생산지와 연결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하다.

K커피어워드의 블라인드 테스트는 이런 질문을 던지는 하나의 방법이다.

이름이 가려진 상태에서도 다시 마시고 싶은지, 설명을 듣기 전에 이미 향과 맛에서 충분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지, 유명한 품종이나 농장의 명성을 알지 못하더라도 한 잔 자체가 분명한 인상을 남기는지를 먼저 묻는다.

그 질문을 통과한 뒤 우리는 비로소 다시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때의 이름은 처음부터 맛을 지배하던 권위가 아니라, 우리가 방금 경험한 좋은 한 잔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출처가 된다.

이름을 가리는 이유는 이름을 없애기 위해서가 아니다. 맛이 먼저 말할 기회를 주고, 그 맛이 충분히 자신을 증명한 뒤 다시 생산자와 농장, 장소의 이름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다.

좋은 커피는 이름이 가려져도 자신의 존재를 어느 정도 드러낼 수 있어야 하고, 우리가 그 맛을 따라가 다시 생산자의 이름에 도착할 때 블라인드 평가의 의미도 완성된다.

결국 블라인드 테스트가 만드는 가장 아름다운 순서는 이름에서 맛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맛에서 다시 이름으로 돌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이름을 잠시 가리면 맛이 남고, 그 맛을 끝까지 따라가면 결국 다시 사람과 장소의 이름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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