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커피의 길은 세 개의 언어로 열린다

2026 서울커피엑스포 ‘K-커피의 길을 묻다’

image.png커피엑스포서울 2026에서 “K-커피의 길을 묻다”를 주제로 토론을 진행하고 있는 김경민 교수, 최낙언 교수, 이길상 교수, 박영순 교수(왼쪽부터)


세 사람 사이에 앉는다는 것


2026년 코엑스에서 열린 커피엑스포서울에서 ‘K-커피의 길을 묻다’라는 이름의 커피 토크콘서트를 진행했다. 무대에는 커피인문학자 박영순, 커피역사학자 이길상, 커피과학자 최낙언이 자리했고, 나는 세 사람의 발제를 잇고 질문을 던지는 좌장을 맡았다.

커피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입장에서 세 분야의 연구자가 한자리에서 같은 커피를 전혀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는 장면을 가까이에서 듣는 일은 흔하지 않다. 한 사람은 커피의 맛을 물질과 감각의 문제로 바라보고, 한 사람은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어온 커피의 역사를 다시 자료 앞에 세웠으며, 또 한 사람은 한 모금의 향미가 어떻게 기억과 정서, 의미로 확장되는지를 이야기했다.

발제를 들으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하나의 문장을 떠올렸다.

커피에는 물질의 세계와 시간의 세계, 의미의 세계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K-커피의 길 역시 이 세 가지를 함께 이해하는 데서 시작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과학자는 한 잔을 다시 물질로 돌려놓았다


최낙언 교수의 이야기는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하는 ‘맛있다’라는 표현을 다시 들여다보게 했다. 같은 원두와 장비를 사용해도 물이 달라지면 맛이 달라질 수 있고, 추출의 농도와 수율에 따라 컵의 인상이 변하며, 우리가 단맛과 산미, 쓴맛이라고 부르는 감각도 생각보다 복잡한 물질과 감각의 관계 속에서 나타난다는 것이 발제의 중요한 흐름이었다. 발표는 결국 추출에서 향미는 풍부하게 얻되 거친 쓴맛은 줄이는 문제로 이어졌다.

특히 쓴맛에 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발표자료에는 쓴맛을 받아들이는 여러 종류의 수용체와 사람에 따른 감각 차이가 제시되었고, 맛의 강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어떤 성분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만 볼 것이 아니라 그 물질을 감지할 수 있는 역치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가 커피에 대해 너무 쉽게 형용사를 사용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했다. ‘달다’, ‘쓰다’, ‘산미가 좋다’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결과를 설명하고 있지만, 과학은 그 결과가 어떤 조건을 거쳐 나타났는지 다시 묻는다.

물의 성질과 온도, 분쇄와 추출, 농도와 수율의 미세한 변화는 감성적인 언어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그 보이지 않는 조건들이 우리가 아름답다고 말하는 향미의 물질적 기반을 만든다.

과학은 커피의 낭만을 없애는 언어가 아니라, 그 낭만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게 하는 언어였다.


역사학자는 우리가 알고 있던 커피를 의심하게 했다


이길상 교수의 발제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시작했다. 제목부터 ‘우리나라 커피 역사 속 가짜뉴스 TOP 3’였다.

우리는 한국 커피사를 이야기할 때 고종과 아관파천을 거의 자동적으로 떠올린다. 그러나 발제에서는 우리 땅에서의 커피 기록을 훨씬 앞선 시점까지 추적했다. 자료에는 1861년 한양 남대문 밖에서 베르뇌 주교가 커피를 접한 기록과 1883년 원산항을 통한 커피 수입 기록 등이 제시되었고, 이를 통해 ‘한국 커피의 시작은 고종’이라는 익숙한 서사를 다시 검토하게 했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양탕국’에 대한 이야기였다. 오늘날에는 조선시대 사람들이 커피를 양탕국이라고 불렀다는 설명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길상 교수의 자료에서는 1968년까지의 고신문과 근대 신문, 소설과 잡지에서 그 표현이 확인되지 않으며, ‘양탕국’이라는 말이 1968년 신문 연재에서 등장한다고 설명한다.

덕수궁 정관헌 역시 비슷한 질문 앞에 놓였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고종이 커피를 마시며 연회를 즐기던 장소’라는 이미지와 실제 건물의 용도 및 변천에 관한 자료 사이에는 검토해야 할 거리가 있다는 것이 발제의 문제의식이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역사학이 과거의 이야기를 많이 기억하는 학문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오히려 이미 알고 있다고 믿는 이야기를 자료 앞에서 다시 의심할 수 있는 능력에 가까웠다.

커피문화가 성장할수록 우리에게도 이런 태도가 필요하다. 멋진 전설과 흥미로운 이야기는 커피를 풍성하게 만들지만, 반복해서 전달된 이야기가 어느 순간 사실을 대신하기 시작하면 문화의 깊이는 오히려 얕아질 수 있다.

이길상 교수는 한국 커피사를 도입기와 대중화, 탄압과 암흑기, 르네상스를 거쳐 2010년대 이후의 ‘K-커피 시기’로 구분했다. 이 구분을 보며 나는 K-커피가 새로운 이름을 만드는 일에 앞서,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정확히 읽는 작업과 함께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래를 이야기하기 위해 역사부터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다.


인문학자는 맛을 ‘읽는 일’로 바꾸었다


박영순 교수의 발제는 다시 한 잔의 커피로 돌아왔지만, 이번에는 물질보다 그것을 경험하는 인간에게 초점이 맞춰졌다.

그는 커피테이스팅을 단순히 감각자극에 반응해 점수를 매기는 행위가 아니라, 신체를 통해 들어온 경험이 어떻게 의미로 조직되는지를 살펴보는 과정으로 제안했다. 발표에서는 한 잔의 경험이 감각과 지각, 정서와 성찰로 이어지고, 커피가 결국 하나의 ‘읽히는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관점이 제시되었다.

예를 들어 어떤 커피에서 레몬이나 초콜릿을 느꼈다는 것은 감각의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 있다. 그 향은 과거의 경험과 만나 이름을 얻고, 어떤 기억이나 감정을 불러오며, 나아가 생산지와 사람, 자신의 삶에 관한 생각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

박 교수의 발표에서는 커피를 ‘음료가 아니라 경험의 매개’로 바라보고, 한 모금을 물리적인 자극과 기억의 호출, 정서의 반응이 함께 일어나는 사건으로 해석했다. 또한 커피를 향에서 시작해 맛과 애프터테이스트로 이어지는 하나의 서사처럼 읽을 수 있다는 기호학적 접근도 제시되었다.

나는 이 관점이 커피인문학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전문가들은 좋은 커피를 만나면 향미를 세밀하게 나누고 이름을 붙이려 하지만, 커피를 마시는 인간의 경험은 언제나 그보다 넓다. 한 사람에게 복숭아 향으로 느껴졌던 커피가 다른 사람에게는 어린 시절의 어떤 계절을 떠올리게 할 수 있고, 같은 한 잔이라도 그날의 기분과 장소에 따라 전혀 다른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

물질로 존재하던 커피가 인간을 통과하면서 의미가 되는 순간이다.


세 개의 커피가 아니라 하나의 커피였다


세 사람의 발제가 끝난 뒤 내가 질문을 이어가면서 흥미롭게 느꼈던 것은, 처음에는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보였던 세 분야가 결국 같은 한 잔을 향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최낙언 교수는 ‘이 맛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물었다. 이길상 교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커피 이야기는 정말 사실인가’를 물었고, 박영순 교수는 ‘그 한 잔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되는가’를 질문했다.

과학은 물질을 보고, 역사는 시간을 보며, 인문학은 의미를 본다.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마시는 커피에서는 그 세 가지를 나눌 수 없다.

한 모금의 산미에는 물과 추출조건이라는 물질의 문제가 있고, 그 커피가 오늘의 한국슬롯까지 오게 된 역사적 경로가 있으며, 그것을 마시는 순간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통해 의미를 만드는 인간이 있다.

내가 좌장으로 세 사람 사이에 앉아 있으면서 가장 즐거웠던 것도 바로 이 지점이었다. 어느 한 분야가 커피를 독점해서 설명하지 않았고, 한 사람의 말이 끝나는 곳에서 다른 사람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커피는 그렇게 하나의 학문 안에 갇히지 않았다.


K-커피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K-커피의 길을 묻다’라는 제목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단어는 사실 ‘K’보다 ‘길’이었다.

K-커피를 한국 사람이 만드는 커피, 한국에서 소비되는 커피, 혹은 해외에서 인정받는 한국식 커피라는 하나의 정의로 서둘러 고정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지금의 한국 커피문화가 어디까지 왔고 앞으로 어떤 질문을 가져야 하는지를 계속 탐색하는 과정 자체가 K-커피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날 세 명의 석학이 보여준 방향을 하나로 연결해 보면 그 길의 윤곽이 조금 보인다.

우리는 커피를 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과학을 공부해야 하고, 잘못 반복되어 온 이야기를 바로잡기 위해 역사를 살펴야 하며, 커피가 인간에게 어떤 경험과 의미를 만드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인문학의 질문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과학만 있으면 커피는 분석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역사만 있으면 과거의 기록으로 머물 수 있으며, 인문학만으로 접근하면 물질과 사실의 기반을 놓칠 위험이 있다. 세 시선이 서로를 견제하면서 연결될 때 커피는 비로소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읽을 수 있는 풍부한 대상이 된다.

그날 내가 행복했던 이유도 세 명의 유명한 커피학자와 같은 무대에 앉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오랫동안 생각해 온 ‘커피학’이라는 것이 눈앞에서 실제 대화의 형태로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쓴맛을 설명하는 과학자의 언어와 오래된 기록을 다시 읽는 역사학자의 언어, 한 모금에서 인간의 정서와 의미를 읽어내는 인문학자의 언어가 한 테이블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사이에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커피학은 질문이 만나는 자리다


그날의 토크콘서트를 마친 뒤 내게 남은 것은 어떤 하나의 정답이 아니었다.

오히려 커피에 더 많은 질문이 필요하다는 확신이었다.

왜 같은 커피가 다르게 느껴지는지 과학적으로 물을 수 있고, 우리가 믿어온 커피의 역사가 사실인지 다시 확인할 수 있으며, 한 잔을 마신 뒤 왜 어떤 기억과 감정이 떠오르는지도 질문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질문처럼 보이지만 모두 하나의 커피에서 시작된다.

나는 커피학이 바로 이런 질문들이 만나는 장소라고 생각한다.

커피라는 작은 씨앗 하나를 놓고 자연과 과학을 이야기하고, 역사와 슬롯를 살펴보며, 인간의 감각과 정서, 문화와 삶까지 함께 생각하는 학문이다.

그래서 K-커피의 미래 역시 새로운 추출법이나 유명한 브랜드 하나에서만 시작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커피를 얼마나 깊게 질문할 수 있는지, 서로 다른 분야의 언어를 얼마나 자유롭게 연결할 수 있는지가 그 문화의 깊이를 결정할 수 있다.

2026년 서울커피엑스포에서 세 명의 커피학자 사이에 앉아 내가 본 K-커피의 길은 하나의 직선이 아니었다.

과학과 역사와 인문학에서 출발한 세 개의 길이 한 잔의 커피 앞에서 만나는 모습에 더 가까웠다.

그리고 바로 그 교차점에서 나는 다시 한번 생각했다.

커피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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