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암 촘스키와 『미니멀리즘 커피 연구』
커피를 업으로 삼아 일하던 어느 날 신문기사에서 ‘커피학과’가 대학원에 만들어졌다는 소식을 보았다. 이미 현장에서 커피를 볶고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지만, 그 기사를 보는 순간 내가 아직 해보지 못한 일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를 만드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내가 매일 다루고 있는 커피를 하나의 학문으로 공부하고 언젠가는 커피에 관한 논문을 써보고 싶었다.
만약 그 대학원이 식품학이나 조리학의 한 전공으로 만들어졌다면 지금처럼 강하게 끌리지는 않았을 것 같다. 물론 커피에는 식품과학과 조리의 영역이 중요하지만, 내가 궁금했던 커피는 그것보다 조금 더 넓은 세계에 있었다. 커피의 맛은 어디에서 오는지뿐 아니라 인간은 왜 그 맛을 언어로 표현하는지, 같은 커피를 마시고도 왜 서로 다른 말을 하는지, 커피가 어떻게 문화와 예술, 공간과 인간의 생각으로 확장되는지가 궁금했다.
그런 내게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대학원이 문화예술대학원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학과 이름 역시 다른 분야와 결합한 명칭이 아니라 ‘커피학과’였고, 커피 자체를 하나의 연구대상으로 삼겠다는 태도가 분명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학과를 만든 사람이 세계적인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의 학문적 영향을 받은 언어학자라는 점이 내 관심을 더욱 끌었다.
커피가 식품이나 조리의 하위영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문화예술과 언어의 세계에서 하나의 독립적인 학문으로 연구될 수 있다는 사실이 매력적이었다. 나는 결국 대학원에 지원했고, 면접에서도 커피에 관한 논문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가능하다면 인문학과 언어학을 기반으로 커피를 연구하고 싶으며, 커피는 세계인이 함께 경험하고 표현하는 하나의 언어체계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는 내가 실제로 그 말을 논문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얼마나 오랫동안 씨름하게 될지 알지 못했다.
대학원 마지막 학기인 5학기에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이미 오랫동안 커피를 해왔고 관련 자료도 상당히 모아두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었다. 평소 커피에 관해 생각해 온 것도 많았으니 그것을 잘 정리하면 논문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논문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길게 쓰는 일이 아니었다.
생각에는 근거가 필요했고, 근거와 근거 사이에는 논리가 필요했으며, 내가 새롭게 주장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기존의 이론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도 설명해야 했다. 현장에서는 경험적으로 충분히 이해하고 있던 것도 학문의 언어로 옮기는 순간 전혀 다른 문제가 되었다.
매주 지도교수에게 원고를 가져갔고, 매주 다시 고쳐야 했다.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해 갔다고 생각한 부분에서도 질문이 돌아왔고, 내가 당연하게 연결된다고 생각했던 문장 사이에는 설명되지 않은 간격이 있었다. 한 부분을 고치면 다른 부분의 논리가 흔들렸고, 개념 하나를 바꾸면 앞뒤의 문장을 다시 정리해야 했다.
사람들이 논문을 두고 자식과 같다고 말할 때 처음에는 그 표현을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직접 써보니 조금 알 것 같았다.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다가 힘들게 형태를 만들어 세상에 내보낸다는 점에서 논문에는 단순한 과제 이상의 시간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가장 오래 붙잡았던 질문은 의외로 단순했다.
현대의 좋은 커피는 어떻게 자신의 맛을 표현하는가.
내가 선택한 이론은 노암 촘스키의 ‘미니멀리스트 프로그램’이었다. 언어학의 이론을 커피에 적용한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쉬운 선택은 아니었지만, 내가 커피를 하나의 언어체계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자연스러운 방향이기도 했다.
촘스키의 미니멀리즘에서 내가 흥미롭게 본 것은 복잡한 언어표현이 무수한 규칙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비교적 단순한 원리와 체계를 통해 매우 다양하고 창의적인 표현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유한한 요소로 무한한 표현을 만들어내는 언어의 구조가 커피의 향미를 경험하고 말하는 방식과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논문의 제목을 『미니멀리즘 커피 연구』라고 정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미니멀리즘은 단순히 맛이 적거나 약한 커피를 의미하지 않는다. 장식을 제거한 인테리어나 검소한 생활방식을 뜻하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복잡한 향미 안에서도 그 커피를 이끌어가는 중심적인 속성이 존재하고, 그 속성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른 향미들과 관계를 맺으며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구조였다.
나는 그 중심이 되는 향미를 ‘리딩플레이버(Leading Flavor)’라고 불렀다.
한 잔의 스페셜티커피를 천천히 마셔보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똑같은 맛이 유지되지 않는다. 잔을 가까이했을 때 먼저 느껴지는 향이 있고, 첫 모금에서 나타나는 맛이 있으며, 온도가 내려가면서 다른 향미가 선명해지기도 한다. 삼킨 뒤에는 또 다른 여운이 남기 때문에 커피의 향미는 하나의 고정된 점보다 시간 속에서 이동하는 경험에 가깝다.
나는 이 시간의 흐름에 주목했다.
한 잔에서 여러 향미가 나타나지만 그 가운데 커피의 인상을 지속해서 이끌어가는 향미가 있을 수 있고, 다른 향미들은 그것과 만나거나 떨어지면서 전체적인 인상을 보완한다. 중요한 것은 가장 강하거나 가장 많이 느껴지는 향미가 반드시 리딩플레이버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양적인 우위보다 그 커피의 개성을 얼마나 분명하게 이끌고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논문에서는 이 현상을 ‘병합’과 ‘반복’이라는 언어학적 개념을 빌려 설명했다. 향미들은 서로 고립되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만들고, 리딩플레이버는 시간에 따라 위치를 바꾸면서도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내가 말한 반복은 똑같은 향이 기계적으로 되풀이된다는 뜻이 아니라, 중심적인 속성이 다른 향미와의 관계 속에서 구조적으로 다시 나타난다는 의미였다.
실제 사례로 하와이 코나 게이샤와 콜롬비아 라 루이사를 분석했고, 각각의 커피에서 프룬(Prune)과 퍼먼티드(Fermented)를 리딩플레이버로 도출했다. 이 향미들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른 속성과 관계를 맺으면서도 반복해서 커피의 중심을 형성하는지를 설명하려 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찾고 싶었던 것은 좋은 커피의 향미 목록이 아니라 좋은 커피의 문법이었다.
커피 향미를 공부하면 자연스럽게 플레이버 휠을 만나게 된다. 과일과 꽃, 견과와 초콜릿, 향신료와 발효향처럼 커피에서 경험할 수 있는 여러 감각이 하나의 체계 안에 정리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플레이버 휠을 커피의 정답지로 보고 싶지 않았다.
어떤 커피를 마시고 “이 커피에서는 자두 향이 나야 합니다”라고 먼저 알려준 뒤 모두가 같은 답을 찾게 하는 방식이라면 인간의 감각은 오히려 좁아질 수 있다. 같은 커피를 마시더라도 누군가는 자두를 떠올리고 다른 사람은 건포도나 잘 익은 과일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언어도 비슷하다. 사람들은 같은 문법을 사용하지만 모두 같은 문장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공통의 문법이 있기 때문에 각자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만들어낼 수 있다.
내 논문에서 플레이버 휠을 필수출력조건의 하나로 바라본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감각을 획일화하기 위한 정답표가 아니라 서로의 감각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최소한의 공통언어로 보고 싶었다.
공통의 체계는 표현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표현할 수 있는 범위를 넓혀줄 수 있다.
논문을 쓰면서 결국 가장 중요하게 남은 단어는 ‘시간’이었다.
커피는 정지된 상태로 경험되지 않는다. 향을 맡고 첫 모금을 마시며 온도가 내려가고 마지막 여운이 사라지기까지 계속 움직인다. 리딩플레이버 역시 한 위치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시간 속에서 다른 향미와 만나고 자리를 바꾸면서 반복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그래서 내가 말한 미니멀리즘 커피는 단순한 커피가 아니라 중심을 잃지 않으면서 변화하는 커피에 가까웠다.
여러 향미가 무질서하게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 중심이 되는 속성이 있고, 다른 향미가 그것을 보완하며, 시간이 흐르는 동안 관계가 조금씩 변한다. 처음과 중간, 마지막의 맛은 서로 다를 수 있지만 한 잔을 다 마신 뒤에는 그 커피를 관통했던 어떤 인상이 남는다.
나는 그것이 좋은 음악과도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하나의 주제가 그대로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변형되고 다른 요소와 만나면서도 전체를 이끌어간다. 커피에서도 리딩플레이버는 혼자 모든 것을 지배하는 독재자가 아니라, 다른 향미가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전체의 방향을 만들어가는 주인공에 가까웠다.
논문을 완성했다고 해서 내가 제안한 ‘미니멀리즘 커피’가 현대커피를 모두 설명하는 하나의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커피의 향미를 언어학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시간과 반복이라는 구조를 통해 현대커피를 설명해보려 했던 하나의 연구이자 제안이었다.
그러나 그 연구를 거치면서 나의 커피를 바라보는 방식은 분명히 달라졌다.
커피를 잘 볶고 잘 추출하는 것만으로는 내가 궁금했던 모든 질문에 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한 잔의 커피가 언어학과 미학, 감각과 인지, 문화와 철학의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도 경험했다. 커피가 문화예술대학원에서 학문으로 다루어졌다는 사실에 처음 매력을 느꼈던 이유도 결국 그곳에서 다시 확인되었다.
커피는 식품인 동시에 농산물이고, 과학의 대상이면서 인간의 감각을 통과하며 언어가 되고, 그 언어는 다시 문화와 생각을 만든다. 어느 한 분야의 지식만으로는 그 전체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나는 오히려 커피학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돌이켜보면 『커피 사피엔스』라는 바카라을 쓰게 된 출발점 가운데 하나도 이 논문에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논문을 쓰면서 커피에 정답을 하나 더 추가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한 잔을 바라보는 질문을 하나 더 만들고 싶었다. 왜 어떤 향미는 사라지고 어떤 향미는 끝까지 남는지, 여러 맛 가운데 무엇이 한 잔의 인상을 이끌어가는지, 그리고 인간은 그 경험을 어떻게 자신의 언어로 바꾸는지가 궁금했다.
결국 내가 찾고 싶었던 것은 맛의 목록이 아니라 맛이 움직이는 질서였고, 커피의 정답이 아니라 커피가 스스로를 표현하는 문법이었다.
그 문법을 나는 ‘미니멀리즘 커피’라고 불렀다.
그리고 논문을 다 쓰고 난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커피를 학문으로 공부한다는 것은 한 잔을 더 어렵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 익숙해서 지나쳐왔던 한 잔 속에서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질문을 발견하는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