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 후보 함석헌, 그대 그 사람을 가졌는가?

고(故) 김대중대통령께 존경받던 함석헌 선생을 소개합니다

by아헤브

고(故) 김대중 대통령보다 먼저 노벨상 추천을 받은 한 인물이 있었다.

1979년, 1985년 두 번에 걸친 추천이었다.


고(故) 함석헌, 그는 1901년생으로 1924년생 김대중 대통령보다 한 세대 가량 앞서 세상의 등불이 된 큰 인물이었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인권운동가, 종교사상가, 독립운동가로 일찍이 자리매김한 걸출한 인물 함석헌은 일반 대중에게 1970년 씨알의 소리로 보다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종교인, 시인, 언론인, 역사가로서 실로 다양한 삶을 영위하였고 김대중 대통령이 존경하는 시대의 어른으로 불리었다. 1958년 사상계에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를 발표하면서 역사의식을 곧추세우며 서슬 퍼런 정권을 향한 신랄하고 매서운 비판을 던지는데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굳게 서야 하는 이유를 자신의 삶으로 바로 알게 한 그야말로 인문학 정신의 커다란 기둥이라 할 수 있겠다.


20세기 근현대사를 관통한 초기 인권운동가, 양심적인 지식인으로서, 평생 비폭력 평화주의를 실천으로 옮겼다. 말과 삶이 어긋나는 것이 원래 순리인 양 왜곡되어도 한참 왜곡되어 버린 지금의 시대 한가운데, 커다란 경종을 울릴 만한 인물로 그를 오래전부터 소개하고 싶었다. 2002년 국가유공자로 서훈되어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 모두가 은연중에 잊고 지낸 <삶의 참된 의미>를 다시금 마주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섰다. 이 새벽 숨 가쁜 일상의 틈바구니에서 기어이 시간을 쪼개어 고심 끝에 이 글을 써 내려간 이유다. 너무 오랜만의 글이다. 무언가를 쓴다는 행위가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점을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그 사람을 가졌는가


- 함석헌



만리길 나서는 날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출처] 함석헌《그 사람을 가졌는가》

우측 아래 사진 : 김대중 전 대통령 및 함석헌 선생


'그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시를 수백 번 더 되뇌며 살아온 나로서는, 그가 던지는 메시지 하나하나에 순간순간 매료되곤 했다. 그 인자한 미소와 변함없는 자태에서, 이 시대의 어른이란 진정 어떤 의미일까?라는 질문에 나름의 해답을 얻었다. 1983년부터 1989년 생을 마치기까지 함석헌 선생이 거주했던 쌍문동에서, 비슷한 시기에 그 길을 오가며 자란 나로서는 지난 시대의 거목이 남긴 발자취를 어린 시절부터 뒤따라 살 수 있는 행운을 얻은 셈이다.


비폭력 평화주의를 주창했던 함석헌 선생은 간디를 존경했기에 그의 사진을 자신의 집안에 걸어 두었다. 평생 독서와 집필 활동에 여념 없던 함석헌의 인생에 매료된 나는 그가 지은 시와 글을 이따금 시간 내어 읽으며, 내 앞에 놓인 고난과 창창한 미래를 두고 굳센 결의를 재차 다짐할 수 있었다. 역사의 물줄기는 보이지 않는 시류를 타고 계속 흐르고 또 흘러내렸다는 사실을 그의 글을 읽으며 깨닫고 그 물결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면서 말이다.


마음에 부치는 노래


세상이 거친 바다라도

그 위에 비치는 별이 떠 있느니라

까불리는 조각배 같은 내 마음아

너는 거기서도 눈 떠 바라보기를 잊지 마라


역사가 썩어진 흙탕이라도

그 밑에 기름진 맛이 들었느니라

뒹구는 한 떨기 꽃 같은 내 마음아

너는 거기서도 뿌리박길 잊지 마라


인생이 가시밭이라도

그 속에 으늑한 구석이 있느니라

쫓겨가는 참새 같은 내 마음아

너는 거기서도 사랑의 보금자리 짓기를 잊지 마라


삶이 봄 풀에 꿈이라도

그 끝에 맑은 구슬이 맺히느니라

지나가는 나비 같은 내 마음아

너는 거기서도 영원의 향기 마시기를 잊지 마라


<출처> 마음에 부치는 노래 -함석헌-

그의 시 구절 안에 내 삶의 낭만과 다음을 향한 목적성이 이미 다 스며 있었다. 세상이 아무리 거친 바다일지언정,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그 삶에는 언젠가 머나먼 소원의 항구에 비로소 접안할 복이 남아 있을 줄 믿고 살 수 있었다.


고(故) 함석헌 선생이 마음에 부치는 노래를 지었듯이, 나 또한 오늘을 향해 마음에 부치는 노래를 짓고 있다는 강렬한 느낌을 자주 받는다. 그 누가 인정을 하던, 않던 관계없이 나 자신이 지나온 삶의 의미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향한 가치를 잘 이해하고 있다면, 오늘을 사는 이곳에서 여전히 영원의 향기를 마실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을 수 있었다.


지난 두 달간, 세 번의 수술과 재활 끝에 최근 퇴원한 어머니는 숱한 시간 이어진 고통을 참고 또 참았다. 마약성 진통제와 같은 강한 의술의 힘으로 겨우 짧은 잠에 들고 깨고를 반복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머니와 내 아이의 병원 생활을 번갈아 봐야 하는 삶은 때때로 고역처럼 느껴졌다. 다행스럽게도 어머니와 내 아이를 동시에 섬길 수 있는 그 모든 시간 안에 나는 살아 있었고 충실할 수 있었다. 아무리 내 인생이 가시밭길이라도, 나는 여전히 그들과 함께 이 길을 걸으며 한없는 사랑의 보금자리를 짓기에 여념이 없구나 싶어 그 자체로 커다란 위로를 얻었다.


어쩌다 이토록 숭고한 삶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는지 그 세세한 이유까지 다 알바는 없지만,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의 고통을 두 눈으로 매일 확인하는 건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내게는 함석헌 선생의 정신이 이미 오랜 기간 단단히 뿌리 내어 있었다. 함석헌 선생이 말한 대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오늘의 삶은 그분의 정신과 그 줄기를 맞대고 있어서 그런지 오히려 커다란 행복감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의미를 덧붙이자면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오늘도 작지만 분명한 유산을 남기며 살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었다.

함석헌 기념관은 2015년 9월에 개관했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 일이다. 실천적 사상가에 독립운동가였던 그의 정신과 뜻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조금 지난 후이지만, 나는 개관 이후 시간이 날 때마다 이곳에 들려 그의 정신을 흠모하고 지나간 영상을 보고 또 보았다. 민중의 소리를 대변했던 시대의 소리, 함석헌 선생의 영향력이 지금 나의 세대에 알려진 바를 찾기는 어렵다. 그래서 언젠가 나 자신이 그에 대한 글 한 편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가 살았던 가옥의 모퉁이를 돌면서 그가 지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라는 제목에 강하게 이끌리어, 나는 그의 사상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에 대한 바카라을 읽었다.


『양심』 이란 무엇인가?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양심』이란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을 뜻한다. 양심이 메말라버린 시대, 법을 운운하는 자들이 앞장서서 법을 왜곡하여 해석하거나 범법을 저지르는 시대 한가운데 우리는 늘 살고 있다. 젊은 세대들은 필터 없이 드러나는 기성세대들의 왜곡된 삶을 매일 보고 들으며, 은연중에 기득권에 대한 깊은 분노와 미움을 가슴 깊이 품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보고 듣는 것을 통해 그 모습의 일면을 나도 모르게 미래에 답습하게 될 위험에 처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에겐 여전히 보고 배울 만한 시대의 어른들이 있다. 스스로가 양심적으로 살겠다고 마음먹고 작정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함석헌 선생의 인생을 통해 제대로 보고 배울 수 있다. 우리 미래는 어떻게 바뀔까? 나 한 사람이 양심을 간직하고, 제대로 하루하루 살아간다면 우리의 미래는 얼마나 달라질까? 거기에 대한 대답은 모두 우리 자신의 몫으로 남겨졌다. 함석헌 선생이 먼저 살아내었다면 우리 역시도 그 삶을 충분히 따라 살아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 역시 할 수 있다.

『씨알의 소리』는 1970년에 창간되었다. 함석헌 선생은 그 후로 '같이 살기 운동'을 제창하였고, 유신체제의 철폐를 위해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 그는 자신의 길을 뚝심 있게 걸어 나갔다. 1979년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고, 1985년 두 번째로 재추천될 만큼 그는 일평생 자신의 길을 걸었다. 1987년 동아일보사가 제정한 제1회 인촌언론상 수상자로서 1988년 서울올림픽 평화대회 추진위원회 공동의장까지 맡게 된 그는, 죽어서는 자신의 몸을 실험용으로 오산고등학교에 기증할 뜻을 밝히기도 했다.


함석헌 선생을 따르는 수식어가 굉장히 많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1919년 3.1 만세 시위에 참여한 인물이 비단 유관순 열사뿐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함석헌이란 인물을 관찰하며 금세 알게 된다. 그는 일제에 의해 투옥되었던 독립운동가였다. 그는 너무도 척박한 시대를 살면서도 <그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주옥과 같은 시를 1947년에 쓰고야 말았다.


우리는 그 사람을 가졌는가?


우리는 정말 누군가에게, (내어 맡길 수 있는) 그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가?


그 누군가를 믿고 처자를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나라는 것은 일생일대의 축복이다.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펼친 그는 평생 살아있는 지성인으로서 자신의 생을 불사르며 수많은 인생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 주었다. 그는 자신이 말한 대로 생각하며 사는 백성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욕망과 싸워 나갔다.



씨알이란 민중을 뜻하고 씨앗 종자를 나타내는 말로 씨앗과 알의 합성어다. 그 안에는 초월적 존재와 내재적 존재가 연결되어 역동성을 가졌다는 속 뜻이 담겨 있다. 민주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행동하는 양심의 주축으로서 그는 씨알이라는 단어 속에 시작과 끝의 의미를 모두 담아 놓았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 주체적으로 살아가되, 그것이 생명의 존엄과 맞닿을 수 있도록 그 의미를 확대하였다.


나는 어쩌다가 장애를 가진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는가에 대한 속뜻을 다 알지 못한다. 비슷하거나 다른 종류의 숱한 어려움을 가진 수많은 이웃들을 오래 지켜보면서 시대의 또 다른 깊은 아픔을 알게 되었다. 어느 누구는 호위호식하며 탕진하는 시대에 그늘진 곳에 울며 사는 많은 이웃이 있다는 것을 십몇 년 동안 일상 속에서 배우고 있다.


밤을 새워 태극기를 찍어내고, 비밀리에 독립선언서를 받아와 평양경찰서 앞에 뿌렸던 함석헌 선생은 스무 살도 되지 않은 그때에 3.1 운동의 선봉에 서서, 생각하는 사람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하길 시작했다. 일본의 압제 하에 조선인 수천 명이 학살된 사건을 눈앞에 두고 보며, 그는 민족의 정기를 세우는 교육자의 꿈을 꾸게 되었다고 알려졌다.


민족의 시련이 다가오는 날마다, 그는 홀로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해 조용히 묵언의 기도를 드렸는지 모른다. 도무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일제 치하에서 태어나 해방을 겪고, 다시 한국 전쟁을 통과하며 그는 수많은 피를 두 눈으로 보고 또 보았을 것이다. 자신이 소련군에 의해 피살당할 위기를 가까스로 벗어나, 월남한 그는 남한에 내려와 다시 한번 민주화 투쟁을 하며 거친 삶을 버텨내었다. 물론 그에게도 연약한 면이 있었을 것이다. 그가 비판받는 대목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대통령 직선제와 문민정부 수립의 초석을 놓기까지 근현대사에 미친 커다란 영향력을 우리 모두는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는 인간 다운 인간으로서의 하나의 삶의 표본을 제시하였다.



나에게 지지 않는 이, 나에게 속지 않는 이,

나에게 아첨하지 않는 이가 굳센 이다.

세계를 얻는 사람도 나에겐 약할 수가 있어도

나를 이긴 사람은 세계도 이길 수 있다.


출처 <사상과 실천> 함석헌



사는 길이 결코 발끝에 있지 않고 저 먼 앞에 있다. 땅이 아니고 하늘에 있다. 지금 있는 것에 있지 않고 장차 올 것에 있다. 뵈는 것에 있지 않고 뵈지 않는 이치에 있다. 힘에 있지 않고 정신에 있다.


출처 <씨알의 소리> 8호 중


나는 그와 같은 신앙인이다. 비록 그의 무교회주의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가 기울인 삶에 대한 진한 애정과 신앙심, 민주 시민으로서의 주체적이고 민족적인 커다란 정신을 계승하고 싶은 깊은 갈망을 안고 살아간다. 소시민으로서 살아가는 오늘이 소중한 이유는 내 삶이 차곡차곡 쌓여 역사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앞에 함석헌이란 거목이 살다 간 삶의 발자취를 분명히 남겨주었기 때문이다. 평생 바카라을 곁에 두며, 깨어있는 지성인으로서 살고자 한다면 언젠가는 그와 같이 숭고한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겠다는 굳센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함석헌 선생과 머지않은 공간에서 자랐던 나의 어린 시절에 크게 감사한 것은 그의 들숨과 날숨이 지나가는 공간에 한동안 내가 숨을 쉬며 살았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다. 그를 기념하는 지금 이 시간은 내게 커다란 숨이 되어 주었다. 깊은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이 시간 동안 내 영혼은 다시 한번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생각하는 백성으로서 살아갈 나의 남은 날들을 기념하며 더욱 멋지게 성장할 내일을 그려 본다.


이제 어머니는 퇴원하였고, 아들은 자기 속도대로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 그렇다. 내일이 있는 한 나는 결코 꺾이지 않을 것이다. 그의 말대로 굳센 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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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씨알의 소리 함석헌 기념사업회를 소개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씨알의 소리를 구독 신청하셔도 좋겠습니다.


https://www.ssialsori.org/47




2. 함석 헌 체를 선물로 드리고 싶은 마음에 소개를 드립니다.


https://hangriafont.com/bbs/board.php?bo_table=free&wr_id=30


-- 지난 한 달 넘게 기다려주신 고마운 독자가 계시다면 그간 기다려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간곡히 전해 드립니다. 새벽 1시에 아헤브 드림


출처 : 도봉문화재단, 현충시설 활성화 사업 함석헌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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