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알게 모르게 연결되어 살아간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가치를 함께 생각해 볼까요

by아헤브

며칠 전 아이 재활 병원 구석에 앉아 글을 썼다. 열두 해 인생 대부분을 병원에서 보낸 애달픈 아들을 헤아리기 위함이었다. 이곳엔 경험하지 않고선 알 수 없는 삶에 대한 애착과 집착이 뒤엉켜 있다. 소리소문 없이 쳐들어오는 무거운 감정을 언제나 방어해 내야 하는 곳이기에 내면의 경계는 매우 삼엄한 편이다. 그만큼 감정의 집중도가 높아 글쓰기 안성맞춤이다. 강한 에너지가 모이는 장소에 상주하는 동안 대략 삼분의 일 정도를 글쓰기에 할애하곤 한다.


치료 대상자가 아닌 나마저도 '이제 그만 오고 싶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게 만드는 이곳은, 어쩌면 눈앞을 아른거리는 신기루일는지 모르겠다. 희로애락이 점철되어 있는 현실의 가장 서슬 퍼런 공간에 오래 머물다 보면 가끔씩 모든 것이 몽환적이게 느껴진다. 상상 속을 거니는 것처럼 이게 현실인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도파민이나 아드레날린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더 깊은 신경계가 작동하는 자기장 속에 갇혀 있는 듯한 묘한 기분을 들게 한다. 사실적이면서도 몽환적인 이곳은 시시때때로 마음을 어지럽힌다.


피할 수 없는 전쟁터이지만, 이곳은 사랑이 머무는 자리이기도 하다.


결국 내 아이를 살려내는 치료 장소인 이곳을 어쩌면 애증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내 몸 구석 어디선가에서 형언할 수 없는 비릿한 감정이 솟구쳐 오르는 날과 만난다. 이미 상한 것인지, 아니면 상해 가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는 그런 고약한 감정 말이다. 하나 분명한 사실은 이곳은 절박한 사랑과 비릿한 감정이 동시에 용솟음치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고된 치료 후 내 아이를 곯아떨어지게 만드는 부정적 현실 가운데 아이를 더욱 사랑하게 만드는 역동적인 순간을 선물해 주는 장소이기도 하다.


아들의 바쁜 병원 스케줄을 소화하고 나면, 이윽고 어머니가 입원해 계시는 대학 병원으로 서둘러 발길을 옮겨야 했다. 2주 전, 다시 최근 양측 뼈를 길게 두 번 자른 엄청난 고통을 겪은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서다. 앞으로 3-4주 더 입원해야 하는 애처로운 어머니를 볼 때마다 내 아들의 작은 얼굴이 오버랩되었다. 고통은 한꺼번에 몰려온다더니,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의 고통을 함께 마주해야 하는 순간은 여간 쉬운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상한 어머니의 몸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태우는 고통이 느껴졌지만 여전히 곁에 계심에 깊은 안도감을 느꼈다. 그렇게 어머니를 둘러싼 다른 환자들이 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얀 옷을 입은 연세 지긋한 천사들이 한 평 남짓한 공간에 머무는 것을 보며, 하나의 거대한 타운 하우스 안으로 초대받은 느낌이 들었다.


이곳은 수많은 인생이 자신의 아픔을 토해 놓는 공간이었다.


시장만큼이나 병원엔 수많은 이야기가 오간다. 한 명의 예외 없이 동병상련의 고통을 안고 있다. 비슷한 또래로 병실은 채워진다. 일흔, 여든을 훌쩍 넘긴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금세 언니 동생하는 관계가 된다. 비슷한 통증과 같은 수술 이력을 가진 공통분모로 인해 어제까지 모르던 남이 이젠 어느덧 언니 동생 사이가 될 만큼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그렇게 휴게실에서 만난 다섯 어르신의 평균 연령은 여든이었다. 답답한 일상을 채워줄 MBC 드라마 채널을 찾아 드리는 동안,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한동안 나누며 모두는 하나의 단단한 끈으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하얀 백발의 가장 맏언니는 여든다섯, 체구가 작은 맏언니 역시 동갑이었다. 그 곁에 여든, 일흔여섯의 동생이 앉아 있었다. 여든 다섯 어르신은 우스갯소리로 일흔여섯 할머니에게 젊은 게 좋은 거라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건네셨다. 아홉 살의 나이 차이가 있기에 어르신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구나 싶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화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았다. 그저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하는 듯 대화 자체가 신선하게 느껴졌다.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는 중에, 막내 어르신이 자신이 며칠 전 겪은 사고 경험을 나누었다. 지난 목요일 창문 사이로 갑자기 세차게 들이친 장맛비를 닦기 위해 거실을 거닐던 중, 미처 보지 못한 물이 바닥에 고여 있는 걸 모르고 그곳을 밟았던 것이다. 미끄러져 바닥에 나뒹군 어르신은 그대로 팔이 부러져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119를 부르면 가고 싶은 병원으로 바로 갈 수 없는 현실적인 제약을 이미 알고 계셨던 어르신은 사고 순간 불행 중 다행스럽게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하고, 집 밖을 뛰쳐나와 길거리에 지나가는 차량을 향해 급하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다.


보면서도 지나쳐 버리는 대부분의 차량들 사이로, 차량 한 대가 긴급히 섰다. 삼십대로 보이는 한 젊은 청년이 차량을 세웠고, 어르신을 태우고 대학병원 응급실 앞에 어르신을 내려 드렸다. 급하게 나오느라 핸드폰도 제대로 못 챙겨 나온 어르신은 사례할 길이 없어 거듭 미안함을 표현했지만, 마음 좋은 청년은 옅은 미소로 얼른 들어가셔서 응급 치료를 받으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이름 모를 MZ 청년을 향한 고마움을 완곡히 표현한 어르신은 글을 쓴다고 하는 내게 자신의 이야기를 그 글에 담아 달라는 부탁의 말씀을 건네셨다. 고마운 청년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려줄 수 있겠냐 물으시는데, 마치 기자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만 분의 일의 확률로 청년이 자신의 이야기를 읽는다면 얼마나 마음에 좋겠냐는 뜻이었다. 그 마음이 얼마나 크게 다가오던지 나는 이틀 안에 그 약속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드렸다. 그렇게 새벽 3시에 깨자마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사고를 당하고 너무나 고통스러운 순간에 만난 천사의 얼굴을 그분은 아마 남은 여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 순간 얼마나 고마우셨을까. 외면하지 않고 자신의 시간과 자원을 사용하여, 이름 모를 할머니를 응급실로 모신 그의 이름을 이미 하늘이 알고 언제든 복을 내려줄 것이다.


지난 몇 달 가는 곳마다 마주하는 이 땅의 어머니들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내 어머니와 비슷한 연배와 비슷한 체구를 가진 수많은 어머니들이 계속 시야에 들어왔다. 지하철, 버스 정류장, 길거리, 식당 어디든 불문하고, 가능하고 필요한 상황이 오면, 다가가 어머니들의 필요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려 노력했다. 무거운 짐을 들어 드리거나 키오스크 사용법을 알려드리거나, 헷갈리는 길의 방향을 거듭 알려 드리고자 했다.


지하철에는 언제나 무거운 짐을 홀로 지고 이동하는 어머니들이 계신다. 어느 역이든 예외가 없다. 대학 병원에 2주간 드나드는 동안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들리는 식당 주방에도 어느 누군가의 어머니가 계셨다. 폭염 한가운데서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오늘도 수고를 아끼지 않는 어머니들이었다. '존재 자체로 위대한 어머니', 그 존재의 가치를 깊게 묵상하며 살아가는 나에겐 하나의 습관이 있다. 식당 음식을 다 먹고 나면 주방 건너편에 보이는 이모님들께 일일이 눈을 맞추어 감사 인사를 드린다. 물론 바쁜 시간대나 타인과 함께 가는 경우는 예외로 한다. 몇 시간이고 불 앞에서 더위를 참고 만든 음식은 결코 값싼 음식이 아니다. 당연한 건 더욱 아니다. 그 어머니의 인생이 들어간 시간이다. 그래서 그 음식을 허투루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반찬까지 모두 싹싹 긁어 다 먹고 나온다.


어머니 세대에 대한 존경을 담아 인사를 드리는 것만으로도 이글거리는 가스불 앞에 서 있는 이웃의 어머니들의 마음이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생계를 위해 불볕더위를 피할 수 없는 운명에 갇힌 것일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 나의 수고를 기억한다는 사실 하나를 알게 될 때, 그 일에는 새로운 의미가 부여된다. 전날 밤, 다섯 분과 나눈 대화는 진심을 다해 서로에게 건네는 덕담이 대화의 주를 이뤘다. 우리를 키워주신 어른 세대 전체에 대한 존경심을 직접 표현하면서 나 역시 나라 걱정을 하시는 그 마음을 받았다. 나라를 걱정한다는 것은 결국 나를 넘어서 우리 이웃을 모두 아우르는 커다란 생각임을 말씀드렸다. 자녀가 모두 50대, 60대인 부모님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시간은 마치 고전 한 권을 집중해서 읽는 시간과 다름없었다.


세대와 세대가 어우러지며 나눈 대화 가운데 나는 조금 더 성장한 느낌을 받았다. 비록 옆 방에는 고통 속에서 신음하다 진통제를 맞고 잠에 든 가여운 어머니가 있었지만 어머니도 이 이야기를 들려 드리면 좋아하실 게 분명했다. 그렇게 내 옆에는 우리 모두의 어머님들이 자리하고 계셨다. 얼마나 든든한 존재감이 느껴졌는지 모른다. 오늘 아침 퇴원하신다고 한 여든 다섯 어르신과 사진 한 컷을 찍는 것으로, 어르신께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모쪼록 건강하시라고, 이제 재활 병원 가셔서 건강하게 회복하시고 더 기쁘게 사시길 바란다는 말씀을 덧붙였다. 사진을 찍는 순간 우리가 나눈 시간은 영원히 추억 속에 축적되었다. 마음속에는 잔잔한 호수 같은 눈물샘이 흐르고 있었다. 어머니의 고통이 서린 아픈 기억을 남긴 공간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이제 내 어머니의 눈물을 닦아 드릴 일만 남았다. 내가 어르신들께 드린 시간만큼 이젠 내 어머니께 시간을 쓸 차례다. 모든 순간이 기적과 같다. 아마도 살아가는 모든 날들은 기념일이 아닐까 싶다.

여든 다섯 큰 언니 할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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