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센스는 '육아'라는 기획실에서 태어난다

뉴질랜드 D+439

by꿈꾸는 유목민

1. 이틀 연속으로 새벽 1시 30분 넘어서 잤다.

한국시간에 맞춰 온라인으로 커뮤니티 멤버들을 만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월요일은 성공의 기록 멤버들, 화요일은 꿈유북족 독서모임 멤버들.

새벽 1시 30분에 누워도 잠이 드는 시간은 새벽 2시이다.

새벽기상 5시는 물건너 갔고, 아이들 도시락 싸는 시간에 맞춰 일어나야 한다.

이틀 연속 4시간 수면이었고, 낮잠을 청했지만 잠을 잔건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상태로 몽롱하다.


2. 남편이 한국에서 손님처럼 찾아온지 일주일이 되어가고 있다.

지난 1월 말에서 2월 중순까지 3주동안 여동생이 함께 있었을 때는 뭔가 든든했다.

내가 아이들의 도시락과 아침을 준비하는 동안,

동생은 밤동안 돌린 빨래를 널고 샤워를 했고,

밥을 다 먹고 내가 준비를 하는 동안 설겆이와 청소를 담당해줬다.


"너와는 이게 되는데, 왜 니 형부와는 이런게 안될까?"


동생과 나는 이게 여성과 남성의 구조적 차이일까를 두고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20년동안 온라인 게임을 다닐 때도 내 주변의 여성들이 훨씬 일을 깔끔하게 잘했다.

센스도 있고, 눈치도 있었다.

무조건 물어보는 게 아니라 눈치를 살피며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건 알아서 해결하는 일이 훨씬 많았다.

나이가 들수록 그 차이는 벌어졌다.

하지만 출세에 적합한 언어인 '내가 젤 잘알아..'와 '내가 젤 정치를 잘해'의 여성들은 만나기 힘들었다.


동생과 내가 이야기를 나눈 바로는 여성들이 아이를 낳고 기른다는 건,

뛰어난 기획력이 요구되는 일이라는 것이다.

아이의 식사시간, 낮잠시간, 욕구등을 맞춰주기 위해서는 아이의 많은 부분을 관찰해야하고 잘 키우는 걸 기획해야하기 때문이다. 기획한 후 실행도 혼자 해야한다.

그러다보니 회사에서도 상대가 말하지 않아도,

눈치와 센스로 업무를 '잘' 마무리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어디 아이만 키워야할까. 집안일도 해야하고 슬롯생활도 해야하고,

나도 키워야 하니.. 기획력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동생과 지난달에 나눈 이야기들은,

남편이 6개월만에 뉴질랜드에 오면서 현실화되었다.

혼자 고군분투하며 아이들의 도시락과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있을 때

거실을 어슬렁 돌아다닌다거나,

내가 하는 걸 유심히 쳐다보며 대답하고 싶지 않은,

(예를 들면, 예전 집에서 이건 왜 안가져 왔냐고 묻거나..

파리를 잡을 때 왜 천천히 잡지 않냐고 하거나...)

질문들을 퍼붓는 것 밖에 없었다.


손님대접을 받고 싶다는 건 남편의 이기적인 소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한국에 간다고 남편이 손님처럼 대접해주는 것도 아니다.

한국에 가서도 나는 하던 일 그대로 해야한다. 오히려 남편이 한국에서도 손님이 된다.


무엇보다 아침에 열폭한 일이 있다.

하루종일 청소기를 돌려야하는 남편.

청소기 소리가 유난히 힘든 나.

남편이 뉴질랜드에 도착한 첫날 아침부터 청소기를 신나게 돌리기 시작했다.

제발 내가 아이들을 학교에 데리러 갔을 때 청소기를 돌리면 안되겠냐고 애원했다.

이 애원의 굴레는 처음이 아니다.

매번 돌림 노래이다.


오늘 아침도 4시간 밖에 못자고 일어나 밥을 하고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온라인 컨설팅을 마치고, 4월의 일들을 정리하려고 집중하고 있는데

청소기를 돌리기 시작한다.

이틀간 잠을 못잤더니 더 예민해져있었다.

남편이 정말 미웠다. 그렇게 애원하고 부탁해도 먹혀들어가지 않는 이 까르마.

'이쯤되면 내가 포기하는 게 맞지 않을까'라며 자포자기하면서도 미간의 주름은 깊어져갔다.

결국엔 참지 못하고 찐하게 짜증을 내고 못잔 잠을 자러 들어갔다.

잠을 자니 조금은 너그러워진 것일까..

크라이스트 처치 가을 햇살이 눈부시고 따뜻해 내 맘이 풀어진 것일까.

삼겹살을 맛있게 구워주고 설겆이까지 해주니, 언제 짜증이 났나 싶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짜증나는 순간은 백만번이었는데 글로 쓰려면 다 잊어버리는 것도 혼자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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