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남은 자장면 용기와 보양재를 서둘러 걷고 각자의 차에 올라탔다. 십여 분 뒤 탑차가 다시 아파트 앞에 섰다. 이번에는 아무도 차 앞으로 뛰어나오지 않았다. 루미는 적재함 문을 힘껏 밀어 올리며 소리쳤다.
“자, 짐 내립니다!”
늦어진 시간을 따라잡으려는 듯 사람들의 몸이 일제히 빨라졌다. 젊은 부부도 가만히 서 있지 않았다. 삼촌 둘이 화장대를 내려놓기 무섭게 여자는 상자를 열어 화장품을 정리했다. 남자는 소파를 놓을 자리를 알려주다가 한쪽 끝을 들어 함께 밀었다. 루미가 뜯어낸 테이프와 보양재를 한아름 모아 현관 밖으로 내놓으려 하자 여자가 문을 붙들었고, 남자는 바닥에 남은 포장지를 주워 뒤따라 나왔다. 중개사는 밥값은 해야 한다는 듯 서류가방을 차에 두고 화분 하나를 품에 안았다. 중년 부부는 이제 정말 가봐야 한다며 인사를 건넸다. 편의점에서 사 온 생수와 캔커피도 한 사람씩 손에 쥐여주었다. 마지막 짐이 들어간 뒤에도 정리는 한동안 이어졌다. 마침내 모든 짐이 제자리를 찾자 젊은 여자가 거실 한가운데 서서 말했다.
“오늘 진짜 길바닥에 나앉는 줄 알았어요.”
루미가 웃으며 장갑을 벗었다.
“이사하는 날은 원래 누구나 잠깐 집이 없어지는 날이에요. 오늘은 그 잠깐이 조금 길었고요.”
이사비 잔금을 받은 루미는 젊은 부부와 악수를 나누고 인사를 마쳤다. 루미는 홍 반장과 이모들, 삼촌들에게 곧바로 일당을 지급하고 모두를 배웅한 뒤 탑차로 돌아왔다. 루미는 텅 빈 적재함을 한 번 둘러보고 철문을 닫았다.
운전석에 오르기 전 루미는 아파트를 올려다보았다. 조금 전까지 비어 있던 거실에 반짝 주광색 불이 켜져 있었다. 통유리 너머로 젊은 부부가 이리저리 짐을 정리하는 게 보였다. 루미는 문득 삼천포를 떠난 친구들을 떠올렸다. 결혼하며 진주로 간 희주, 가게를 열겠다며 창원으로 간 선경, 취직해 부산으로 간 혜영, 새로운 기회를 찾아보겠다며 서울로 올라간 도진······ 친구들도 삼천포를 떠나던 날 이랬을까. 그들도 처음 낯선 집에 도착한 날에는 저 부부처럼 집에 불을 켜고 상자를 풀었을 것이다. 무엇부터 꺼내야 할지 몰라 짐 사이를 서성이다가, 익숙한 물건을 하나씩 제자리에 놓았을 것이다. 루미는 사다리차 추가 요금이며 이모들과 삼촌들에게 더 얹어준 일당을 계산해보려다가 말았다. 루미는 운전석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한결 가벼워진 탑차가 매끄럽게 단지를 빠져나갔다. 탑차는 비고 집은 채워진다. 루미는 이 단순한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그때 처음 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루미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삼천포익스프레스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