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무렵 엄마와 함께 가던 사우나를 졸업했다. 그때쯤 되면 부모님이 하자고 하는 건 죄다 못마땅한 것이 되고, 가자고 하는 곳은 불지옥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좀처럼 사우나는 다시 갈 일이 없었다. 아랫배가 묵직해진 내 몸이 싫었고, 무엇보다 출산을 겪으며 더 이상 예전의 내 몸이 아닌 내 몸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서도 그랬다. 그러던 내가 사우나를 가게 된 건 순전 아빠 때문이었다.
한참 파크 골프에 빠져있던 엄마는 추석 직후에 개최되는 파크골프 전국 대회에 나간다며, 연휴 기간 우리랑 놀지 못하겠다고 통보를 해왔다. 그런 엄마를 내버려 두고 아빠는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진주에 내려왔다. 아빠는 딸보다 손자를 더 좋아한다. 아빠가 손자를 만나면 꼭 하는 일이 있는데 바로 사우나였다. 차가 없는 아빠를 대신해 사우나에 갔다가, 입장료를 계산해 주려고 카운터에 서게 됐고, 한 시간 반이 걸린다는 아빠의 말에 얼떨결에 탕에 들어와 있었다.
36도 탕은 냉탕도 온탕도 아닌 미지근한 온도였다. 나는 자연스럽게 어르신들이 모여계신 41도 탕으로 들어갔다. 탕은 누리끼리한 노란색이었는데 어쩐지 피부가 좋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두리번 주변을 둘러보니 내가 가장 어려 보였다. 나는 말려있는 어깨를 활짝 피고는 탕에서 잠깐 나와 턱에 걸터앉기도 하고, 몸이 식으면 탕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데도······ 고작 십 분이 지나있었다. 집에 가고 싶다고 생각할 때쯤 한 어르신이 보였다. 꽃무늬 두건으로 머리를 틀어 올리고 검은 망사의 브래지어와 팬티를 입은 할머니였다. 목이 기역자로 꺾여있었는데, 뒷목뼈가 마치 혹처럼 튀어나와 있었다. 천막이 둘러진 세신 구역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나는 냉큼 쫓아갔다. 할머니는 나를 보고선 "기본?"이라고 물었다. 난 기본이 뭔지도 모르면서 냅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나의 세신(洗身), 몸을 씻는 의식이 시작됐다.
지금부터 나는 이 분을 할머니가 아니라 선생님으로 부르겠다. 정말 그럴만하다. 선생님은 뭔지도 모를 화장품을 얼굴에 처덕처덕 발랐다. 그리고는 젖은 수건을 내 얼굴에 올리고, 바로 옆에서 채칼로 오이를 갈았다. 정말 바로 귀 옆에서 갈고 있었는데, 향긋한 오이향이 젖은 수건을 넘어왔다. 잠시 후 수건을 걷어내고 얼굴 위로 간 오이가 올라왔다. 오이는 자꾸만 흘러내렸는데, 선생님은 랩으로 내 얼굴을 칭칭 감았다. 뒤통수에 머리카락이 잘못 엉켜있는 게 느껴졌지만, 더 이상 오이가 흘러내리지 않았다. 오이는 싱그럽고 또 시원했다.
얼굴이 얼추 마무리되자 때 미는 일이 시작됐다. 선생님은 양손에 때수건을 끼우고 박자감 있게 때를 밀었다.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는 장단단 육보격 운율, 긴 음절 하나와 짧은 음절 두 개를 기본으로 이루어진 서사시다. 나는 선생님의 때밀이에서 서사시의 웅장한 리듬을 느꼈다. 스윽싹싹, 스윽싹싹. 리듬감은 어느새 내 몸의 긴장을 덜어냈다. 멍하니 누워있는데 자꾸 누군가 나를 때리는 게 느껴졌다. 뭔가 하고 실눈을 떠보니 선생님이 뭐라고 말씀하고 계셨다. 선생님은 "옆!"이라고 소리치면서 내 허벅지를 때리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허벅지를 기울여 세웠다. 그러나 선생님이 다시 한번 내 허벅지를 때리면서 "옆!"이라고 소리쳤다. 나는 삐걱거리며 오른 다리를 움직였다. 안쪽으로 돌려보기도 하고, 바깥쪽으로 기울여보기도 했지만 선생님은 "옆!"이라고 소리칠 뿐이었다. 거의 절망하는 마음이 들 때쯤 선생님이 내 몸을 굴려 몸뚱이 전체를 옆으로 뉘었다. 때리는 다리의 옆이 아니라, 몸 전체를 말하는 옆이었음을 그제야 안 것이다. 그 뒤로 나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선생님이 "팔"이라고 외치면 나는 똑같이 "팔"이라고 읊조리면서 팔을 앞 뒤로 돌렸다. 선생님이 "다리"를 외치면 나는 "다리"라고 중얼거리며 다리를 기역자로 세웠다. 선생님이 "뒤"라고 외쳤다. 나는 "등"을 따라 말하며 몸을 돌리려다가, 얼굴 위로 얹어진 오이가 생각났다. 어떻게 해야 하지 머뭇거리고 있는데 선생님은 사정없이 허벅지를 때리며 말했다. "뒤!" 나는 옛다 모르겠다 뒤를 돌았다. 짓무른 오이물이 코로 들어왔다. 입 안에는 오이가 씹혔다. 나는 혀로 슬그머니 밀어내려 했지만 더 많은 오이가 들어올 뿐이었다. 두어 번 정도 더 뒤집혔을까, 선생님이 때로 서걱거리는 내 몸에 물을 끼얹었다. 드디어 끝이 난 것이다.
시간을 보니 아빠와의 약속시간이 거의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몸을 한 번 더 헹구고 밖으로 나갔다. 후딱 옷을 꿰어 입고, 세신비를 드리려 머뭇거리고 있는데, 머리를 말리고 있던 어르신이 손짓으로 거울을 가리켰다. 계좌는 찾았지만 얼마를 보내야 하나 고민하자, 어르신이 다시 물었다.
"뭐 했는데? 기본은 삼만오천 원."
나는 생각보다 저렴한 가격에 놀랐고, 그게 기본일리가 없다는데 확신을 가졌다.
"서비스일리가 없어요. 얼굴만 해주신 게 아니라 등이랑 어깨도 마사지해 주셨거든요."
"경락도 했나?"
그때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거들었다.
"아이다, 기본만 해도 서비스로 해준다. 백푸로 서비스다, 서비스."
그때 세신 선생님이 나왔다. 나를 도와주셨던 두 아주머니가 나보다 먼저 물었다.
"즈 아가씨 얼마고?"
"기본 아이가?"
세신 선생님이 "삼만오처 넌" 무심하게 말하며 다리를 닦았다. 나는 속으로 '미쳤다', '너무 좋다', '이 정도 서비스가 삼만오천 원이라니'를 남발하며 계좌이체를 했다. 그런데 옆에 계시던 아주머니가 씩 웃으며 말했다.
"맞제? 즈기 유명한 사우나에서 온 사람이다 아이가."
다른 아주머니도 목욕 바구니를 정리하며 말했다.
"세신도 중독된디. 내가 일주일에 한 번 댕겼다고."
나는 그제야 입 밖으로 "너무 좋아"를 계속해서 말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빠를 생각해서 서둘러 세신 선생님께 인사를, 그리고 나를 도와주셨던 아주머니들께도 고개 숙여 인사를 전했다. 미로 같은 락커에서 길을 헤매자 뒤에서 키득키득 웃는 소리가 났지만, 그 웃음 사이로 "귀엽네", "착하네", "참하네"라는 말도 들렸다. 나는 볼을 붉히며 서둘러 계단을 내려갔다.
사우나는 참 좋은 곳이다. 몸의 때도 벗기고, 땟물 가득한 마음의 때도 벗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