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미는 탑차를 어시장길에서 조금 떨어진 공터에 세운 뒤 오늘의 고객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객님, 저희 팀 전부 도착했습니다. 지금 차 넣어도 될까요?”
“네. 관리실에도 말씀드렸어요. 바로 오시면 됩니다.”
루미는 다시 탑차에 올라 아파트 입구까지 차를 몰았다. 먼저 도착해 있던 홍 반장이 두 팔을 크게 휘저으며 수신호를 보냈다. 루미는 그 손짓을 따라 생각보다 수월하게 탑차를 빈 공간에 밀어 넣었다. 탑차가 멈춰서자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 움직였다. 홍 반장은 각종 포장 자재가 든 상자 세 개를 한꺼번에 포개 들었고, 주방 이모들은 그릇을 담을 플라스틱 바구니와 에어캡을 양손 가득 챙겼다. 삼촌 둘은 양팔에 박스테이프를 팔찌처럼 주렁주렁 끼고, 가구를 감쌀 담요를 옆구리에 끼었다. 루미도 한 손에 공구함을 들고 반대편 어깨에는 두루마리 보양재를 둘러멨다. 새벽부터 시작하는 현장이 아닌데다 아침밥까지 먹고 온 뒤라, 평소 같으면 올라가는 층수만 멍하니 바라봤을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시답잖은 이야기가 오갔다.
“용궁시장 근처라 아파트 이름도 비룡인가 봐요.”
루미가 엘리베이터 거울에 새겨진 아파트 이름을 보며 말하자, 홍 반장이 능청스럽게 받아쳤다.
“별주부가 우리를 불렀으믄 토끼는 안 놓쳤을 낀데.”
옆에 있던 이모들이 박장대소했다. 나주에서 삼천포로 시집온 뒤 줄곧 나주댁이라 불려 온 이모가 웃음 사이로 말했다.
“그라제. 우리는 토끼고 간이고 싹 다 포장해버리니께.”
루미가 태연하게 말했다.
“간은 귀중품이라 고객님이 직접 챙기셔야죠.”
엘리베이터 안에서 다시 한번 웃음이 터졌다. 웃고 떠드는 사이 엘리베이터가 9층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 웃음소리가 멎고 모두 익숙하게 각자의 짐을 고쳐 들었다. 901호의 현관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그곳에는 루미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젊은 부부가 기다리고 있었다. 루미는 집 안을 한 번 둘러본 뒤 익숙하게 작업 순서를 설명했다.
“포장에는 세 시간 정도 걸릴 것 같고요. 이사하실 집은 여기서 차로 이십 분 정도니까, 넉넉하게 두 시쯤부터 짐을 넣는다고 보시면 됩니다.”
옆에 서 있던 여자가 물었다.
“더퍼스트팔라스오브마레 아파트도 이사해보셨죠?”
“네. 몇 번 가봤어요.”
“저희 집이 마흔두 평 비타입이거든요. 대교가 정면으로 보이는 동이요. 신축이라 바닥 보양은 특히 꼼꼼하게 해주셔야 해요. 아시죠?”
루미가 웃으며 대답했다.
“네, 신경 써서 할게요.”
루미가 돌아서려는데 여자가 다시 말을 붙였다.
“여기는 수납공간이 너무 없어서 불편했거든요. 거기는 팬트리랑 드레스룸이 따로 있어서 그나마 좀 낫더라고요.”
여자는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지만 목소리 끝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루미는 대충 알겠다고 대답하며 박스테이프를 양 손목에 걸었다. 부부가 집을 나서려다 말고, 여자가 남편의 옆구리를 콕 찔렀다. 남편이 지갑에서 오만 원권 한 장을 꺼내자 여자가 건네받아 루미에게 내밀었다.
“하다 보면 점심도 놓치시죠? 이걸로 자장면이라도 시켜 드세요. 이사하는 날에는 자장면이잖아요.”
“괜찮습니다. 식사는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그래도 받으세요. 사람도 많은데.”
루미는 한 번 더 거절하려다가 아침에 만강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루미는 지폐를 조끼 주머니에 넣었다. 부부가 떠나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각자 맡은 구역에서 짐을 싸고, 사다리차로 내리고, 탑차에 싣는 일이 쉼 없이 이어졌다. 주방의 그릇들은 신문지에 싸여 사라졌고, 안방의 이불은 파란 상자 안으로 차곡차곡 접혀 들어갔다. 홍 반장을 비롯한 작업자들은 현장에서 점심을 먹기보다 점심값만 챙겨 일을 일찍 끝내는 쪽을 선호했다. 한 번 주저앉아 밥을 먹고 나면 몸이 무거워진다는 이유였다. 덕분에 마지막 상자까지 예상보다 일찍 탑차에 실렸다. 루미는 조끼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여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객님, 상차 끝났습니다. 지금 그……”
루미는 입을 다문 채 수첩을 펼쳤다. 이사 갈 아파트 이름이 뭐였더라. 패스트펄스트, 팔라말라 낯선 이름들이 머릿속에서 뒤엉켰다.
“어머, 벌써요? 더퍼스트팔라스오브마레로 바로 오시면 돼요. 저희 그 근처 카페거든요.“
“아, 네. 지금 출발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루미는 내비게이션 검색창에 아파트 이름을 한 글자씩 입력했다. ‘ㄷㅍㅅㅌ’까지만 입력해도 아파트가 바로 나왔다. 내비게이션도 끝까지 부르기를 포기한 모양이었다. 아파트까지는 이십 분도 걸리지 않았다. 부부는 동 출입구 앞에 서 있었다. 곁에는 중년 부부와 수첩을 옆구리에 낀 부동산 중개사가 있었다. 루미가 탑차를 세우자 중년 여자가 차 앞으로 달려 나왔다.
“짐 내리지 마세요!”
봉고차에서 내리려던 홍 반장이 한쪽 발만 땅을 디딘 채 멈췄다. 루미는 운전석에서 내려 중년 여자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세요?”
“잔금이 안 들어왔다니까요, 글쎄!”
젊은 부부는 휴대전화를 붙들고 쩔쩔매고 있었다. 이 번호 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가,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가, 끊기가 무섭게 다시 다른 번호를 누르기를 반복했다. 중년 부부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두 사람은 집에서 짐을 모두 뺀 뒤 이삿짐 차만 다음 집으로 먼저 보내놓고, 젊은 부부에게서 받을 잔금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중년 남자도 전화기 너머 누군가에게 연신 사정하고 있었다.
“사장님, 조금만 더 기다려주이소. 잔금이 두 시까지는 된다고 하니까……”
그 가운데 부동산 중개사는 미간을 한껏 찌푸린 채 멀뚱히 서 있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보니 사정은 이랬다. 젊은 부부가 돌려받을 보증금은 비룡아파트에 묶여 있었고, 비룡아파트로 들어올 사람의 돈은 부산에 있었고, 부산에서 나올 돈은 아직 은행의 대출 실행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 돈이 통장 몇 개를 거쳐 이곳까지 도착해야 젊은 부부도 잔금을 치르고 짐을 내릴 수 있었다. 그래야 그 돈을 기다리던 집주인, 그러니까 중년 부부도 다음 집으로 잔금을 보내고, 곳곳에 멈춰 선 이삿짐 차들도 차례로 움직일 터였다.
루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기 이삿짐부터라도 먼저 옮기면 안 될까요? 저희 사다리차도 시간도 있고······”
중년 여성이 곧바로 말을 잘랐다.
“잔금이 들어왔는지도 확인이 안 됐는데 어떻게 짐부터 들여요. 돈이 끝내 안 들어오면 그 짐은 누가 다시 빼고?”
젊은 여자가 답답하다는 듯 끼어들었다.
“진짜 들어온다니까요. 오늘부터 저희가 살 집인데, 짐부터 넣는 게 그렇게 큰 문제예요?”
두 부부 사이에서 수첩만 만지작거리던 부동산 중개사가 그제야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잔금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오늘부터’가 아닙니다.”
중년 부부는 판결문이라도 들은 듯 나란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관리실 직원이 출입구 밖으로 나와 말했다.
“사장님들, 차 여기 오래 세워두시면 안 됩니다. 뒤에 다른 입주 차량 들어와요.”
관리실 직원은 탑차와 봉고차는 물론이고 젊은 부부의 승용차, 중년 부부의 차, 중개사의 경차까지 모조리 단지 밖으로 빼달라고 했다. 루미가 주변을 둘러보니 엉켜 선 차들이 단지 입구를 통째로 틀어막고 있었다. 잠시 후 몇 번의 대화가 오가고 탑차를 선두로 다섯 대의 차가 줄지어 아파트를 빠져나왔다. 그 모습은 마치 간을 구하지 못한 수중 사절단이 용궁에서 줄지어 쫓겨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