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미의 일과는 작업반장에게 연락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반장님.”
“어, 루미 씨. 오늘은 어데고?”
“아홉 시 사십 분까지 어시장길로 오시면 돼요. 정확한 위치는 문자로 남길게요.”
“용궁시장? 아이고, 오늘도 욕 바가지로 먹긋네.”
삼천포의 도로명은 대단히 직관적이고 또 재밌기까지 한데 유람선을 타는 곳은 유람선길, 박재삼문학관이 자리한 곳은 박재삼길, 용궁시장 주변을 어시장길이라고 불렀다. 도로명만 들어도 위치가 어디인지, 그 골목이 어떤 형편인지까지 눈에 훤히 그려질 정도였다. 그러니 주소를 들은 홍 반장이 대번에 욕먹겠다고 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길 한쪽에는 활어차가 바닷물을 콸콸 쏟아내며 서 있고, 반대편에는 갓 뜬 회를 배달하려는 오토바이들이 줄지어 있는 데다가, 시장 상인들의 끼니와 참을 챙기는 참 아주머니들까지 커다란 은쟁반을 머리에 이고 쉴 새 없이 골목을 오가는 곳, 그곳이 바로 어시장길이었다. 그 사이로 5톤 탑차를 밀어 넣는 일은 시장의 혈관 하나를 틀어막는 일과 다를 바가 없었다.
“뭐, 죽이기야 하겠어요.”
루미가 가볍게 웃으며 말하자, 홍 반장이 코웃음을 쳤다.
“회 뜨던 칼 들고 쳐다보면 을매나 살벌한 줄 아나.”
루미가 지난번 이사를 떠올리며 부르르 몸을 떨며 웃었다.
“무섭긴 하네요.”
“맞제? 하여간 우리 봉고차는 시장 밖에 대야겠네. 그럼, 좀 이따 보제이.”
“네, 들어가세요.”
전화를 끊은 루미는 서둘러 눈앞에 차려진 미역국에 밥을 후루룩 말아 먹었다. 그릇째 들이켜는데 루미의 아빠, 두만강이 물었다.
“사장님, 오늘은 몇 팀이나 가셔?”
“홍 반장님만요. 사다리차 한 대 붙고요.”
“이십 평대인가 보네.”
“네.”
루미는 빈 그릇을 싱크대에 내려놓고 곧장 욕실로 들어갔다. 뒤이어 만강의 목소리가 따라 들어왔다.
“잔금 잘 챙기고. 거기서 점심값이니 목욕비니 따로 챙기준다 하믄 사양하지 말고 다 받아라.”
칫솔질을 시작한 루미가 입 안 가득 거품을 문 채 대답했다.
“아뉩,요샙그냥다포함햇버따러안밥죠”
“뭐라노. 하나도 안 들린다.”
루미가 욕실 밖으로 얼굴만 내밀고 크게 외쳤다.
“알아서 한다구요!”
루미는 입을 헹군 뒤 수건으로 입가를 닦으며 욕실에서 나왔다. 두만강은 의자 등받이에 걸어둔 조끼를 집어 루미에게 내밀었다.
“잘 댕기 온나. 여사님들한테 안부 전해주고.”
“네.”
루미는 건네받은 검은색 메시 조끼를 걸쳤다. 휴대전화와 수첩, 네임펜을 가슴 주머니에 넣고 작업용 장갑은 옆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주머니가 여섯 개나 달린 조끼는 루미가 처음 일을 시작하던 날 만강이 사준 것이었다. 처음에는 낚시꾼 같아 보인다며 질색했지만, 만강은 “내가 니보다 이십 년은 선배인데, 괜히 주머니 많은 걸 골랐겠나”라고 말했었다. 말마따나 만강의 경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삼천포익스프레스를 일군 사람이 만강이 아니었던가. 만강이 제 일을 내려놓기로 한 것은 사 년 전, 허리가 더는 버텨주지 않으면서였다. 탑차를 헐값에 팔아버리려 하자 때마침 구직활동에 지쳐있던 루미가 진지하게 말했다.
“저한테 넘기는 건 어때요? 요즘은 젊은 사람들도 도배하고 타일 붙여요. 웬만한 대기업 직원보다 돈도 많이 번대요. 이삿짐이라고 못 할 게 뭐예요.”
그런데 어머니 송희의 반대가 특히 심했다. 아직 젊으니 온라인 게임을 더 알아보라고 했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면 오 년 동안 아무 말 없이 뒷바라지해주겠다고도 했다.
“막말로 네가 이삿짐센터를 하면 시집은 갈 수 있겠니? 누가 널 데려가!”
“엄마, 내가 이삿짐이에요? 누가 데려가게.”
송희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가 혀를 찼다. 루미가 순순히 물러서지 않자 만강은 고민 끝에 허락했다. 딸의 결심을 믿어서라기보다 이 일의 고됨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그러나 한 철이면 그만둘 거라는 그의 예상과 달리, 루미는 어느새 삼천포익스프레스에서 네 번째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한 번은 만강이 루미와 맥주잔을 기울이다 진지하게 물은 적이 있었다.
“사장님, 비결이 뭡니까?”
만강이 처음으로 딸을 ‘사장님’이라 부른 건, 삼천포에서 이사 이야기가 나오면 사람들이 으레 삼천포익스프레스를 먼저 떠올리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아빠에게 인정받은 것만 같아 신이 난 루미는 비결을 풀어놓았다. 루미는 다른 이삿짐센터에서 까다롭다고 여길 만한 부탁도 자신은 척척 알아들을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고객들은 아이의 전집을 순서대로 꽂아달라거나 냉장고에 붙어 있던 사진을 새집에서도 똑같은 위치에 붙여달라고 하곤 했다. 사람들은 짐만 옮기고 싶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방식까지 고스란히 다음 집으로 가져가고 싶어 했다. 루미는 그 마음을 이해했다. 그래서 구체적인 요청사항을 수첩에 꼼꼼히 적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새집에서도 가능한 한 그대로 놓아주기 위해서였다.
그뿐만 아니라 수첩 뒷장에는 용궁시장 상인들의 명함이 두툼하게 끼어있었는데, 어시장길에 이사가 잡힐 때마다 탑차가 드나들 시간을 알리며 얼굴을 익힌 사람들이었다. 이사 첫날 집에서 밥을 지어 먹는 가족은 드물었다. 루미는 손님들에게 회 한 접시도 배달해주는 용궁시장 41번 상회를 알려주었다. 해삼 몇 마리를 덤으로 얹어주는 집이었다. 다음 날 아침거리를 묻는 손님에게는 십오 분이면 끓일 수 있는 바지락국을 권했다. 52번 상회에서 바지락을 오천 원어치만 사도 네 식구가 먹을 만큼 담아주고, 한 줌을 더 얹어주었다. 루미는 그 한 줌을 남겨뒀다가 저녁에 라면수프를 조금 넣어 바지락술찜을 해 먹으면 끝내준다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그래서일까. 루미의 소개로 찾아온 손님들이 가게에서 그 이름을 꺼내자, 상인들도 이사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삼천포익스프레스의 번호를 알려주었다. 처음에는 젊은 여사장의 목소리에 주저하던 사람들도 하나둘 쌓여가는 입소문으로 삼천포익스프레스에 의뢰를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