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새로운 도약

by채도운

석재는 선미에게 폐업신고서를 건넸다.

“나한테 양도해도 괜찮겠어요?”
석재의 입가가 느슨하게 풀렸다.

“넌 존댓말을 하든 반말을 하든 하나만 해라.”
“그래도 나름 보스니까 존댓말을 했죠. 컬쳐씨앤씨를 넘겨받으면 이제 반말만 하려구.”

석재는 논란이 따라붙은 컬쳐씨앤씨의 이름을 없애기로 했다. 남은 계약은 마무리하고, 차후의 일들은 선미가 세울 새 회사가 이어받기로 했다. 석재는 깍지 낀 손을 풀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사무실을 한 번 둘러보더니 말했다.

“그래.”
선미가 석재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아쉬워?”

“음. 아니. 응. 잘 모르겠다. 그래도 8년이나 됐으니까.”

석재는 처음 컬쳐씨앤씨를 차렸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의 자신에게는 무언가에 과감히 뛰어들 시간이 있었고, 가진 것을 전부 쏟아부을 열정이 있었다. 무엇보다 옳다고 믿는 일을 계속하면 세상도 결국 그만큼 달라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때 목표가 무엇이었더라. 그래, 앞으로 평생 살지도 모를 호해군을 지금보다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었다. 내가 살고 있고, 살아갈 터전을 아름답게 가꾸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시작 밖에 없다. 지속하려면 돈과 제도,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민구의 조언을 과감히 수용했다. 회사가 커지면서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넓어지자 연희의 제안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 선택들이 자신을 지금의 자리까지 데려왔다. 돌이켜보면 버린 것도 많았다. 돌이켜보면 버린 것도 많았다. 세상은 애쓴 만큼 나아질 것이라는 순진함, 사람의 선의를 믿던 천진난만함······· 그는 그것들을 현실을 알아가는 대가처럼 하나씩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대가는 분명한 것들을 약속했다.

“기성이는 요즘 어때?”

“재단 일이 잘 맞나 봐. 자기보다 일 못하는 사람들도 꼬박꼬박 월급 받는 걸 보면 마음이 놓인다나, 뭐라나.”

“그 녀석답네.”

석재는 기성이라면 재단에서 일하는 편이 더 잘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기성은 남들보다 잘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남들보다 못하지 않다는 확신이 있어야 편안한 사람이었다.

“이제 너는 뭐 할 거야? 콘텐츠미디어랩도 이번에 군수 쪽 사람한테 넘겼지?”
“기기보급 사업으로 어느 정도 이득은 봤으니까 상관없어. 이제 남은 건 유지보수라던가 소프트웨어 쪽이니까. 그건 그쪽 사람이 더 잘할 수도.”

석재는 턱을 괸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는······ 당분간 이름부터 좀 지워야 하니까 쉬어볼까. 대표도, 누구 사람도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어보던가.“

선미는 팔짱을 낀 채 코끝을 찡그렸다.

“으, 무슨 할아버지 같은 소리야. 그리고 네가 퍽이나 쉬겠다.”

“나도 놀 줄 알아.”

“그래. 하루쯤 놀다가 전화하겠지. 일은 제대로 하고 있냐고 닦달도 하려고.”

석재의 눈매에 장난기가 어렸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채도운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안녕!

3,337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6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54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24화[23화] 빵터짐의 종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