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오씨네 목가구 공방의 운명?

by채도운

장인이 운영하던 오씨네 목가구 공방에서 골목 하나만 돌아 나오면 하운초등학교가 있었다. 학교 정문 맞은편에는 이 층짜리 건물이 줄지어 서 있었는데, 강동과 미자는 결혼하면서 그중 한 칸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일 층을 반으로 나누어 한쪽에는 서점을 열고, 다른 한쪽에는 미싱을 들여놓았다. 강동이 문제집과 문구류를 팔면 미자는 교복 바짓단을 줄이고, 떨어진 이름표를 다시 달았다. 강동은 학교 종소리로 시간을 가늠했다. 마지막 수업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아이들이 서점으로 몰려왔고, 손님이 뜸해질 때쯤이면 옆 가게에서 미싱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건물 뒤편 공방에서는 장인이 나무를 밀 때마다 길고 얇은 대팻밥이 쌓였다. 서로 다른 일을 하는 세 사람이었지만, 문 하나만 열면 언제든 서로의 목소리가 닿았다.

세월이 흐르자 장인의 손에도 예전 같은 힘이 남지 않았다. 자식들 가운데 목공 일을 잇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장인은 억지로 붙잡지 않았다. 대신 제자들이 독립할 때마다 경력확인서와 추천서를 써주고, 공예인으로 이름을 올리는 데 필요한 서류를 챙겨주었다. 그중 몇은 훗날 명장이 되고 무형문화재 보유자가 되었다. 제자들의 서류에는 스승의 이름과 도장이 남았지만, 정작 장인 자신의 이름은 어느 명부에도 오르지 못했다. 마지막 제자가 제 공방을 차린 해, 장인은 대팻날에 기름을 먹여 벽에 걸었다. 다시 쓸 사람을 기다리듯 연장들을 가지런히 정리했지만, 그날 이후 오씨네 목가구 공방에서 새 가구가 나오는 일은 없었다. 장인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강동과 미자는 공방을 처분하지 않았다. 미자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문을 열어 바람을 들였고, 강동은 지붕이 새거나 창틀이 벌어지면 서툰 솜씨로나마 손을 보았다. 작업대 위에는 장인이 마지막으로 깎던 나무토막이 남아 있었고, 서랍 속 대패와 끌은 쓰던 순서대로 놓여 있었다. 공방 안의 시간은 장인이 떠난 날에 멈춰 있었지만, 바깥의 하운시는 해마다 조금씩 쪼그라들었다. 하운초등학교에서는 해마다 한 반씩 사라졌고, 정문 맞은편에는 셔터를 내린 가게가 하나둘 늘어났다. 강동의 서점은 종이 울린 뒤에도 좀처럼 붐비지 않았고, 미자의 미싱 가게에도 손님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박연희가 오씨네 목가구 공방을 찾아온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

“이런 공방이 아직 남아 있었네요.”

강동은 공방 문을 열고 들어선 낯선 여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문이 닫히며 일어난 바람에 연희의 플리츠 원피스 자락이 가볍게 흔들렸다.

“이제 더 이상 영업을 안 합니다”

연희는 대답을 들으면서도 공방 안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가구 위의 먼지를 가볍게 쓸어낸 뒤, 반닫이의 앞문을 젖혀 안쪽 귀퉁이와 뒤판까지 들여다보았다.

“앞판은 느티나무로 보이고, 옆널과 뒤판에는 다른 나무를 썼네요. 보이는 데는 결을 살리고, 힘을 받는 데는 단단하게 짰어요.”

연희는 귀퉁이를 손끝으로 더듬었다.

“여기 물려 짠 것 좀 보세요. 장석도 기성품을 갖다 붙인 게 아니라 이 문짝에 맞춰 따로 만든 것 같은데요.”

미자가 놀란 얼굴로 다가왔다.

“맞아요. 가구는 저희 아버지가 만드셨고, 장석은 옆 마을 이씨 아저씨가 해주셨어요. 지금은 두 분 모두 돌아가셨지만……”

연희는 “저런” 하고 가볍게 혀를 찼다.
“보통 솜씨가 아니에요. 한창 고가구 값이 좋을 때는 서울에서 이런 가구 하나에 몇천만 원씩 주기도 했을걸요.”

“우리는 중간 업자들이 가져갔으니, 그 뒤에 얼마에 팔렸는지는 몰랐어요. 목가구가 그렇게나 비쌉니까?”

강동의 물음에 연희가 부드럽게 웃으며 답했다.

“그럼요.”

연희는 거미줄이 내려앉은 천장과 벽에 걸린 연장들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아쉽네요. 공방에 이렇게 거미줄만 쳐져 있으니.”

연희는 이런 전통을 이대로 사라지게 두어서는 안 된다고, 목공예가 얼마나 귀한 솜씨인지 아느냐고 나긋나긋 말을 이었다. 사람의 마음을 무르게 만드는 것은 말씨였다. 하운 사람들의 말끝이 툭 떨어진다면, 연희의 말은 마지막 음절까지 둥글게 감싸며 이어졌다. 같은 말도 타박이 아니라 부탁처럼, 남의 사정을 묻는 말도 참견이 아니라 걱정처럼 들렸다. 미자는 아버지의 노고를 알아주는 말에 감동한 듯 멍하니 서 있었다. 강동도 마음이 움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내색한 적은 없지만, 그는 평생 장인정신으로 가구를 만들었던 장인을 존경해왔던 터였다.

그 뒤로도 연희는 몇 번이나 공방을 찾았다. 어느 날은 카스테라를 들고, 다음 날은 팥빵과 소보로빵이 든 봉투를 들고서. 처음 한두 마디로 끝났던 대화는 방문이 거듭될수록 길어졌다. 미자도 차츰 연희에게 마음을 열었다. 아버지가 유난히 아끼던 대패가 무엇이었는지, 장석 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아 이씨와 밤새 다툰 적이 있다는 이야기까지 꺼냈다. 강동은 옆에서 보리차를 따라주며 틀린 연도나 이름을 바로잡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연희는 평소의 나긋한 말투를 거두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건 하운시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에요.”

연희는 한때 머물렀다는 다른 도시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곳에서는 사라질 뻔한 공방을 복원해 박물관으로 만들고, 장인이 쓰던 작업대와 연장을 그대로 전시하고 있다고 했다. 그에게 기술을 배운 제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아이들이 직접 대패질을 배우는 목공 교실을 열어 사라져가던 기술을 이어간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연희는 오씨네 목가구 공방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자는 누가 이 낡은 공방을 보러 오겠느냐며 꿈같은 소리라고 웃었다. 미자와 강동은 공방이 문을 닫은 것을 시대가 변하면서 벌어진 자연스러운 일로 여겼다. 장인의 이름이 차츰 잊히고, 언젠가 낡은 공방마저 허물어지는 것까지도 어쩔 수 없는 순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연희가 찾아올 때마다 같은 미래를 조금씩 더 구체적으로 그려 보이자, 미자의 마음속에서도 바람이 자라기 시작했다. 그 바람은 미자의 마음속에서만 자란 것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하운시에 지방선거가 치러졌다. ‘문화로 되살리는 하운’을 내건 후보가 시장 선거에 나왔다. 그는 사라져가는 지역의 전통을 발굴하고, 쇠퇴한 구도심을 문화와 관광의 중심지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강동은 가게 우편함에 꽂힌 공약집을 무심코 펼쳤다가 익숙한 문장들을 발견했다. ‘사라져가는 장인의 기술을 하운의 유산으로’, ‘낡은 골목을 살아 있는 문화공간으로.’ 그 후보는 시장으로 당선되었고, 취임하자마자 문화도시 기획단을 꾸렸다. 수도권에서 도시재생 사업을 오랫동안 해왔다는 전문가와 학예사, 큐레이터, 건축가와 교수들이 기획단에 이름을 올렸다. 지역신문에서는 그들의 화려한 경력과 함께 단체 사진이 실렸다. 그들이 오씨네 목가구 공방을 찾아온 것은 기획단이 꾸려진 지 보름도 되지 않아서였다.

“축제를 우리 공방에서 한다고요?”
강동이 묻자 기획단 관계자는 얇은 기획서를 내밀었다. 표지에는 ‘하운 목공예 페스티벌’이라고 적혀 있었다. 강동이 한 장을 넘기자 지도가 나왔다. 공방을 중심으로 사방의 골목을 감싼 붉은 선이 그어져 있었다. 강동의 서점과 미자의 미싱가게도 그 안에 들어 있었다.

“공방만 둘러보는 행사는 아닙니다. 여기서 학교 앞까지 골목 전체를 행사 구역으로 묶을 겁니다. 구도심을 살리는 축제니까요. 분명 두 분 장사에도 도움이 될 테고요.”

강동이 얼떨떨한 얼굴로 지도를 들여다보는 사이, 일행 중 한 사람이 공방을 한 바퀴 돌아본 뒤 물었다.

“혹시 댁에 선생님이 만든 목가구가 더 남아 있습니까? 전시할 만한 물건이 있는지 봐도 될까요?”

강동과 달리 미자는 눈을 반짝이며 사람들을 집으로 안내했다. 서점과 미싱가게 위 이 층 집까지 올라온 학예사는 안방의 반닫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장석을 살폈다. 건넌방의 삼층장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미자는 서랍에 든 옷가지를 황급히 꺼내면서 아버지가 만든 것이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은빛 장석이 달린 문갑까지 펼쳐 보이자 큐레이터는 휴대전화를 꺼내 연달아 사진을 찍었다. 평생 집 한구석에 놓여 있던 가구들이 낯선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하나씩 작품이 되었다. 큐레이터는 미자를 돌아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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