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내 편일때는 덮어줄 수 있지만?

by채도운

호해군에 군수 선거가 시작됐다는 사실은 눈보다 귀로 먼저 알 수 있었다. 아침 일곱 시만 넘으면 유세 차량들이 로터리를 돌았다. 아직 셔터도 올라가지 않은 상가 앞에서 후보의 이름을 넣은 노래가 흘러나왔고, 시장과 여객선터미널을 오가는 동안 같은 구호가 몇 번이고 반복됐다. 좁은 사거리에서 서로 다른 후보의 차량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노래와 연설이 뒤엉켜 어느 쪽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흰 장갑을 낀 선거운동원들은 지나가는 차마다 허리를 숙였다. 시장 상인들은 후보 이름보다 차량 색깔로 사람을 구별했고, 학교에 가는 아이들은 뜻도 모른 채 유세 노래의 후렴을 따라 불렀다. 군청도 선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각 부서에서는 예정된 준공식에 3선에 도전하는 현직 군수가 참석해도 되는지, 참석은 가능하더라도 단상에서 인사말을 하면 선거법 위반이 되는지, 군청 누리집에 올라간 군수의 사진은 그대로 둬도 되는지, 축제 홍보 영상에서 군수의 인사말을 빼야 하는지를 놓고 하루에도 몇 번씩 선거관리위원회에 전화를 걸고는 했다.

그중에서도 강은이 속한 문화관광과가 가장 바빴다. 축제와 공연, 전시 개막식처럼 군수가 주민들 앞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행사가 대부분 문화관광과에 몰려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과장이나 담당 계장이 참석하던 마을 음악회까지 군수 비서실에서 연락이 왔다. 군수가 잠시 들를 수 있도록 행사 시작을 삼십 분 늦춰달라거나, 내빈석을 하나 더 마련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참석자라야 서른 명 남짓인 주민 공예품 전시회에도 군수의 일정이 추가됐다. 그때마다 강은은 문광과의 막내로서 선거관리위원회에 부리나케 전화했다. 참석만 하는 것은 괜찮은지, 슬롯자가 군수를 소개해도 되는지, 축사를 하지 않더라도 주민들과 악수하고 사진을 찍는 것은 가능한지 하나씩 확인해야 했다. 비서실에서는 선거운동이 아니라 통상적인 군정 업무라고 강조했지만, 군수가 다녀간 행사의 사진은 빠짐없이 군청 누리집과 지역신문에 실렸다. 오늘도 비서실에서 다음 달 예정된 행사 가운데 군수가 참석할 만한 것들을 추려 보내달라는 연락이 온 참이었다.

“더 알릴 얼굴도 없는데······”

강은의 푸념에 성수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호해군에서 군수님 얼굴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요.”

채미는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모르는 사람 보라고 하는 거겠어요? 아는 사람들도 잊지 말라고 하는 거지.”
채미가 마우스 휠을 내리며 행사 목록을 훑었다. 군수배 초등학생 줄넘기 대회, 생활문화동아리 발표회처럼 평소라면 과장이나 담당 계장이 참석하고 말 행사들이었다. 채미는 그중 주민이 많이 모일 만한 행사 옆에 표시를 남겼다.

“이번에도 될까요?”

“전과 다르지. 이번에는 당 간판 없이 싸워야 하잖아.”

강은이 더 물으려던 차에, 담배를 피우고 돌아온 덕만이 손을 휘저으며 둘 사이를 갈랐다.

“어허, 떨어져. 떨어져.”

강은과 성수는 영문도 모른 채 한 걸음씩 물러났다.

“쓸데없이 모여 있지 마. 특히 선거 기간에는 셋만 모여 있어도 말이 나온다고.”

“저희는 그냥 이번에도 될 것 같으냐고 물어본 건데요.”

“그게 선거 얘기지, 업무 회의야?”

덕만은 목소리를 낮췄다.

“정치적 중립 몰라? 누가 되든 공무원은 그냥 똑같이 일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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