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하기 싫었지만 컬쳐씨앤씨의 축제 기획력은 뛰어났다. 메인존 무대는 단순히 공연팀이 올라오고 내려가는 공간이 아니었다. 호해군의 옛 뱃길에서 시작해 섬의 풍경과 먹거리,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의 흐름으로 묶어내고 있었다. 특히 요란한 타악 공연 뒤에 이어진 파도명상이 인상적이었다. 무대의 모든 소리가 멎고, 헤드셋을 쓴 사람들의 귀에는 각 섬에서 녹음한 파도소리와 뱃고동 소리가 흘러나왔다. 무대 뒤 대형 화면에는 일금도에서 오금도까지, 배를 타고 섬을 건너는 듯한 풍경이 차례로 펼쳐졌다. 때마침 노을을 받은 섬의 윤곽이 하나씩 금빛으로 번졌다. 강은은 그제야 발령 첫날부터 품고 있던 궁금증의 답을 얻을 수 있었다. 헤드셋을 쓴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말없이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아름다웠다. 금빛으로 빛나는 섬도, 사람들도, 이 순간도.
마지막 뱃고동 소리가 잦아들고 대형 화면에 호해군의 로고가 떠오르자 사람들은 하나둘 헤드셋을 벗었다. 뒤늦게 박수가 번졌다. 강은은 프로그램표에 적힌 시작 시각을 다시 확인했다. 우연히 해가 진 것이 아니었다. 파도명상은 그날의 일몰 시각에 맞춰 시작되도록 짜여 있었다. 석재는 해가 지는 시간까지 축제의 순서 안에 넣어놓았던 것이다. 명상까지 별다른 사고 없이 끝나자 덕만은 직원들에게 두 명씩 교대로 저녁을 먹고 오라고 했다. 강은은 성수와 한 조가 되었다. 성수가 먼저 걷고 강은은 두어 걸음 뒤에서 따라갔다. 둘 사이에는 여전히 치즈 크래커 한 상자만큼의 어색함이 남아 있었다. 행사장 구석에 설치된 천막에 도착하자 다른 직원들이 먼저 자리를 잡고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강은과 성수는 그들에게 고갯짓으로 아는 척을 한 뒤 나란히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강은은 지급받은 도시락을 먹으며 행사장 주변을 둘러보았다. 금도의 노을을 본떠 만든 작은 조명을 든 아이들이 체험존 주변을 뛰어다녔다. 어둠이 내려앉은 이곳의 금빛 반딧불이었다. 마지막 반찬까지 입에 넣고 고개를 들자 성수는 어느새 식사를 마치고 빈 도시락 뚜껑을 덮고 있었다.
“앗, 벌써 다 드셨어요?”
“네.”
“시간이 좀 남았는데 한 바퀴 돌아보실래요? 저 사실 먹거리존이 제일 궁금하거든요!”
강은은 일부러 밝은 목소리를 냈는데, 그런 강은의 노력을 알아차린 건지 성수가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성수가 먼저 걷고 강은은 두어 걸음 뒤에서 따라갔다.
‘음, 치즈 크래커 두 상자로 늘었나?’
강은이 둘 사이의 거리를 가늠하고 있는 동안 어느새 먹거리존에 도착해있었다. 금도에서 난 김과 멸치, 갓 잡은 해산물을 파는 부스들이 길게 이어졌다. 상인들은 시식해보라며 음식을 들이밀었는데, 둘은 내미는 족족 받아먹었다. 먹거리존을 절반도 돌지 않았지만 두 사람의 손에는 빈 이쑤시개가 열 개씩 들려 있었다. 행사장은 사람들로 가득했지만 답답하거나 어수선하지 않았다. 앉아서 먹는 공간과 분리수거대는 사람들의 이동 동선과 겹치지 않도록 배치되어 있었다. 덕분에 음식을 사려고 줄을 선 사람과 식사를 마친 사람, 그 사이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데 엉키지 않았다. 그리고 가장 목 좋은 자리에 호해새마을부녀회와 바르게살기운동본부가 있었다. 다른 업체들이 천막 한 동씩을 차지한 것과 달리 두 단체의 부스는 세 동씩 이어져 있었다. 회원들은 여러 해 같은 행사를 치러본 사람들처럼 손발이 잘 맞았다. 건장한 남자 둘이 커다란 통돼지를 천천히 돌리면, 곁에 있던 아주머니가 잘 익은 부위를 큼지막하게 잘라냈다. 빨간 고무장갑을 낀 다른 아주머니는 고기를 받아먹기 좋게 썰어 접시에 담았다. 축제 음식값은 늘 민원 거리였지만, 이곳의 가격은 양에 비해 적당해 보였다. 되려 한 손님이 호해군에서 다섯 시간 떨어진 외지에서 왔다고 하자, 호해군의 인심을 보여줘야 한다며 고기 한 줌을 더 얹어주기도 했다. 넉넉한 인심을 미워할 수 없었다. 다만 그 인심을 베풀 수 있는 자리는 누구에게나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이 미울 뿐. 강은이 부스를 빤히 바라보고 있자 옆에서 성수가 말했다.
“하나 드실래요?”
“네?”
“아까부터 통돼지만 보고 계시잖아요.”
“아니, 고기를 보고 있던 게 아니라······ 근데 돼지가 진짜 윤기가 좔좔한 것이 맛있어 보이기는 하네요. 같이 주는 건 쌈장이 아닌가 봐요? 색이 특이한데.”
“바로 알아보네요. 여긴 쌈장에다가 잘게 다진 다시마를 섞거든요.”
“억, 안 비려요?”
“먹어보면 알겠죠.”
성수는 부스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천막 안으로 들어서려던 순간, 그의 걸음이 멈췄다. 안쪽 간이 탁자에 꽃무늬 챙모자를 쓴 옥희 할머니가 혼자 앉아 있었다. 지난번처럼 주황색 조끼를 입은 모습이 아니라 꽃무늬 블라우스 차림이었다.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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