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이런 쪽, 그런 쪽의 만남

by채도운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강은은 자신의 위를 전부 꺼내 탈탈 씻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때는 섬바람 축제 현장 점검을 나간 날이었다. 주 담당자인 채미와 성수를 보조하기 위해 강은이 동행하게 되었다. 위생과에서 일하는 박지훈 주무관도 함께 했다. 입구까지 마중 나온 컬쳐씨앤씨 이선미 팀장은 컬러로 인쇄된 행사 기획서를 나눠주며 경쾌하게 인사를 했다.

“반갑습니다. 날이 많이 덥죠? 카페에서 설명을 좀 드릴까요?”

채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동선이나 행사 진행 상황을 좀 보고 싶은데요.”

“아, 그러시면 바로 이동하면서 설명해 드릴게요. 잠시만요.”
이선미 팀장은 뒤에 서 있던 남직원에게 눈짓을 보냈다. 남직원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뒤돌아 어딘가로 가버렸다. 강은을 포함한 일행은 이선미 팀장이 이끄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녀는 행사장 배치도를 보여주며 설명을 시작했다.

“이쪽이 메인 공연 무대가 들어올 거고요. 저쪽에는 체험존을 구성해서····”

채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었고, 채미의 뒤에 서 있던 박지훈 주무관은 연신 볼펜으로 무언가를 체크하고 있었다. 성수는 언제 돌아왔는지 남직원이 건넨 바닐라 라떼를 쭉쭉 들이키고 있었다. 강은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얻어먹으며 동선을 살폈다. 그런데 가는 길마다 주황색 조끼를 입은 아주머니들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무리 지어 돌아다니며 행사장 주변을 거닐고 있었는데 조끼만 아니라면 산바카라 나온 주민처럼 보였다.

“먹거리존은 그럼 저쪽인 거죠?”

지훈의 물음에 선미가 말했다.

“맞습니다. 현재 푸드트럭을 포함해서 스물세 곳이 입점 예정입니다.”

먹거리존으로 걸음을 옮긴 지훈이 천막 위에 달린 업체 이름을 살펴보다 말했다.

“부스 위치 좀 바꿔야겠는데요. 호해새마을부녀회, 바르게살기운동본부는 부스 세동씩 메인존과 연결해서 다시 조정하시죠.”

“그래도 나름 메인존과 연결된 공간으로 했는데······”

“아뇨, 여기 체험존과 메인존이 만나는 지점으로요. 그래야 사람이 많이 몰리죠.”

지훈의 대화를 듣던 채미가 의문을 갖고 쳐다보자 지훈이 뒤돌아 속삭였다.

“군수님.”

그 한마디에 채미는 더 묻지 않고 뒤로 물러섰다. 호해군에서 열리는 행사 가운데 이번 섬바람 축제가 가장 규모가 컸다. 행사 기간 매출이 억대를 넘기기도 했고, 같은 음식을 팔아도 부스 위치에 따라 매출이 몇 배씩 벌어졌다. 입점자들은 보통 공개 추첨으로 자리를 배정받았지만, 군수실에서 따로 챙겨달라는 말이 내려온 단체는 늘 예외였다. 올해는 호해새마을부녀회와 바르게살기운동본부인가보다. 군수 주변에는 이런 단체가 여럿 있었다. 평소에는 자원봉사단체로 활동하다가도 축제 기간에는 한시적 일반음식점 영업 신고를 내고 파전이나 돼지 수육 같은 음식을 팔았다. 그렇게 번 돈은 ‘봉사기금’이라는 이름으로 쌓였다. 그 사용처를 굳이 묻는 사람은 없었다.

지훈은 그 외에도 몇 가지 지시한 뒤에 당부사항을 덧붙였다.

“축제 기간에 위생과에 민원 속출하는 거 아시죠? 업체들이 즉석판매업 등록했는지는 마지막까지 꼼꼼히 점검해주세요.”

선미가 지시사항을 메모하며 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저쪽으로 가보실까요?”

사무실로 돌아온 일행은 각자 자리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강은도 성수가 지시한 출장보고서를 썼다. 보고서 안에 표를 만들어 현장에서 찍어온 사진들도 첨부했는데, 그 중 한 사진을 보고 강은은 멈칫 멈춰 섰다. 주황색 조끼를 입은 아주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사진이었다. 여름 햇살 아래 환히 웃고 있는 모습이 아름다워서 저도 모르게 셔터를 눌렀었다. 무언가 발견한 강은은 인상을 찌푸리며 사진을 확대해보았다. 그러자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강은은 지난 오금도 축제 정산보고서를 들춰보았다. 몇 장을 뒤적거리다가 한 서류를 찾았다. 오금도 축제의 한 코너로 있던 강연 결과보고서였다. 결과보고서 하단에는 사진이 하나 첨부되어있었는데 하얀 폴로 셔츠에 연한 청바지를 입은 수려한 석재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아까 보았던 그 아주머니였다. 마이크를 쥔 손에는 익숙한 금반지가 끼워져있었다. 정원 전문가 박선자씨였다. 박선자씨는 ‘오금도 정원 활성화 방안’을 주제로 한 시간 동안 강연하고 강연비로 총 백만 원을 받아 갔다. 행사 보조자는 열 명이 고용되어 인당 십만 원씩 받아 갔는데, 명단에는 최옥희, 서정희, 이연서 등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강은은 헛웃음을 지었다. 아까 이선미 팀장이 주었던 섬바람 축제의 운영인력 배치표와 나란히 놓고 보니 더 웃음이 나왔다. 아까 보았던 이름들이 사골 우려먹듯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다. 짐작하건대 오전에 보았던 주황색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분명했다.

강은은 성수를 찾아갔다. 입에 과자를 물고 있던 성수가 표정이 달라지며 물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한 번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 해서요.”
성수는 이전에 서글서글한 표정은 어딜 가고 매섭게 말했다.

“서류상 문제없지요?”

“네, 서류상으로는요.”
“그럼 됐잖아요.”

“박선자씨가 지난 축제에서는 정원 전문가로 강연하고 백만 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행사 운영요원으로 최옥희, 서정희씨 등과 참여하고 계셨고요.”

“정원 전문가가 운영요원으로 일하면 안 됩니까?”

“그런 의미가 아니라, 겨우 서른 명 참여한 강연에 행사 보조자가 열 명이나 고용되었습니다. 그중 여섯 명은 이번 축제 운영인력 명단에도 들어 있고요.”

성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호해군이 얼마나 넓다고 행사마다 새로운 사람이 나타납니까? 축제에 참여하는 주민들이 거기서 거기인 게 이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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