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길을 달려온 버스가 금방이라도 퍼질 듯 요란한 소리를 내며 멈춰 섰다. 승객들이 차례로 내리고, 그 중간쯤 양어깨에 가방을 주렁주렁 메고 있는 강은이 있었다. 땀에 젖은 앞머리가 시야를 가리자 강은은 양손 대신 어깨를 들썩여 이마를 훔치려고 애썼다. 짐을 바닥에 철퍼덕 내려놓자 기사가 버스 하부 수화물칸에서 캐리어 두 개를 꺼내주었다. 예상보다 묵직했는지 기사의 몸이 살짝 앞으로 기울었다. 강은은 감사의 인사를 건넨 뒤 제 앞에 늘어선 짐을 찬찬히 살폈다. 덕지덕지 스티커가 붙은 캐리어 두 개, 옷가지와 우산 손잡이가 삐죽 튀어나온 커다란 파란색 나일론 가방, 에코백과 숄더백까지. 강은은 큰 캐리어 위에 파란 가방을 얹고 작은 캐리어에는 에코백과 숄더백을 포개 올렸다. 그러고는 미리 준비해온 긴 검정 고무줄로 캐리어 두 개를 단단히 연결했다. 강은이 대형견 목줄을 잡듯 짐을 끌고 가는 모습에 짐을 내려준 버스 기사도, 강은을 뒤따라 내리던 사람들도 감탄의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강은은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이사비를 제법 아꼈다는 사실에 느낀 자부심을 당당한 걸음걸이로 드러내고 있었다. 160센티미터가 채 되지 않는 작은 몸으로 자기 몸집의 몇 배나 되는 짐을 끌며, 그렇게 강은은 유유히 터미널을 빠져나갔다.
*
호해군청에 발령받은 강은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제 자리를 개조하는 것이었다. 기본으로 지급된 24인치 모니터 옆에 직접 가져온 울트라 와이드 모니터 설치를 시작으로, 손목을 보호해주는 버티컬 마우스와 소음이 적은 무선 키보드도 차례로 꺼냈다. 의자에 앉아 모니터 높이를 몇 번이고 확인하던 강은은 사무실 한쪽에 방치된 색 바랜 ‘호해군 문화관광백서’ 두 권을 발견했다. 먼지를 털어 모니터 밑에 받치자 화면의 윗부분이 정확히 눈높이에 맞았다. 그제야 강은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번졌다. 옆자리의 채미가 그런 강은을 요상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을 알아챈 강은이 빙긋 웃자 채미도 얼떨결에 따라 웃었다. 자리 정돈이 얼추 끝났을 때 김덕만 과장이 사람들을 회의실로 불러 모았다. 강은은 볼펜 네 자루를 주렁주렁 끼워둔 신년 다이어리를 들고 채미의 뒤를 따라갔다. 채미는 회의실로 향하다가 걸음을 늦췄다. 강은이 곁으로 따라붙자 채미가 물었다.
“그런데 호해군에 아무 연고도 없다면서요. 왜 여기로 지원했어요?”
“티오가 가장 많던데요.”
“······그게 다예요?”
“네.”
채미는 강은의 얼굴을 슬쩍 살폈다. 농담처럼 들렸지만 강은은 웃지 않았다. 채미는 부서에 있는 ‘독수리 오형제’에 강은을 여섯 번째 멤버로 넣어야 할지 잠시 고민하며 걸음을 옮겼다. 회의는 간단한 자기소개를 시작으로 곧바로 업무분장으로 넘어갔다. 문화관광과는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섬바람 축제’ 준비로 정신이 없었다. 호해군 앞바다에는 크고 작은 섬들이 흩어져 있었다. 군에서는 매년 육지와 섬을 잇는 섬바람 축제를 열었고, 그 밖에도 계절마다 각 섬에서 크고 작은 축제가 이어졌다. 그러다 보니 문광과는 매일 지난 축제를 정리하고 새로운 축제를 준비하는데 정신이 없었다. 발령 첫날이었지만 강은에게도 지난 축제의 정산서류와 올해 참여 단체 명단 한 묶음 주어졌다. 채미는 파일 하나를 더미 위에 얹으며 말했다.
“지난달에 열린 오금도 축제 정산보고서예요.”
강은은 서류 앞에 적힌 오금도 글자를 한참 바라보다가 말했다. 일전에 은하가 한 말이 얼핏 떠올랐지만, 입이 터져 나오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저······ 계장님. 제가 오기 전에 호해군 관할 섬 목록을 전부 찾아봤거든요. 저는 그중에서 금도가 가장 재밌더라고요.”
채미는 이게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러나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금도는 해 질 무렵이면 섬 전체가 금빛으로 변한다는데, 정말 그런가요? 아,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라, 금도 옆에 있는 섬이 이금도더라고요. 이금도 뒤에 있는 섬이 삼금도, 삼금도와 붙어있는 섬이 사금도, 거기서 대각선으로 조금 위에 있는 섬이 오금도. 그럼 그 주변은 해질녘이 되면 번쩍번쩍하나요? 섬 이름은 누가 붙였을까요?”
채미가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
“글쎄요. 전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불러서 한 번도 궁금해한 적 없었는데.”
채미는 독수리 오형제에 새 자매가 들어왔음을 직감했다. 군청에는 자잘한 사고를 치거나 멀쩡히 대화를 나누다가도 혼자 엉뚱한 고도로 날아오르는 직원들을 ‘독수리 오형제’라고 불렀다. 새대가리라고 할 순 없지 않은가. 채미는 바쁜 시기에, 하필이면 자기가 근무하는 부서에 새 한 마리가 날아왔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채미의 표정을 본 강은은 온라인 게임 상사와 친해지려 던졌던 회심의 일격이 실패했음을 깨달았다.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아직 꺼내지도 못했건만. 하나부터 다섯까지 차례로 붙인 일관성 있고 효율적인 작명 센스가 꼭 공무원답다는 하이클래스 블랙코미디를 하려고 했는데······ 아까 어색하게나마 웃어주던 채미는 어딜 가고 냉랭한 상사로 바뀌었다. 채미는 무뚝뚝한 어투로 서류를 검토하는 기준을 설명했다. 강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때론 지침서에 형광펜을 칠하거나 빠르게 메모를 남기기도 했다. 제법 성실해 보이는 태도에 채미는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흠, 오늘은 그냥 한 번 훑어만 봐요. 급한 건은 아니니까.”
강은은 자리로 돌아가는 채미를 바라보았다. 팔자로 걷는 탓에 곱실곱실거리는 히피 머리가 좌우로 움직이고 있었다. 강은은 빙긋 웃으며 서류 한 묶음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낯익은 서류들이었다. 강은은 사실 신입이지만 낡은 신입이었다. 강은은 임용 전 도청에서 기간제 행정원으로 일하다가 공공기관의 육아휴직 대체자로 일했다. 무기계약직을 시켜준다는 말에 삼 년이나 버텼지만, 돌아온 것은 임시직의 연장일 뿐이었다. 그 뒤로 학교와 주민센터에서 일하기도 했다. 떠돌던 오 년은 강은의 이름 앞에 어떤 직급 하나도 남겨주지 않았지만, 안목만큼은 제대로 길러주었다. 무엇보다 유용한 건 서류를 보는 눈이었다. 강은은 엄지손가락의 스냅을 이용해 서류를 재빠르게 넘겼다. 업체마다 통장 사본이나 견적서, 서명이 하나씩 빠져 있었다. 누락된 곳마다 노란색 인덱스를 붙이고, 내용이 잘못 기재된 곳에는 메모를 남기기도 했다. 유일하게 인덱스가 붙지 않은 서류는 컬쳐씨앤씨의 것이었는데, 사업계획서부터 지출증빙, 행사 사진과 참석자 명단까지 항목별로 정확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목차와 서류의 순서도 군에서 배포한 지침과 한 치도 어긋나지 않았다. 강은은 볼펜을 달칵거리며 생각에 빠졌다.
그때 사무실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파티션 너머로 빠꼼 고개를 내밀자 삐쭉 솟아오른 한 남자가 보였다. 외부 손님이 온 모양이었다. 남자가 무슨 말을 하자 주변에서도 웃음이 연달아 터졌다. 남자는 흰 셔츠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리고 청바지를 입었는데, 말끔하면서도 어쩐지 자유분방함이 느껴졌다. 그는 웃을 때마다 왼쪽 눈이 조금 더 가늘어졌다. 강은의 눈에는 그게 제법 매력적으로 보였다. 강은이 남자를 멍하니 바라보자 채미가 곁으로 다가와 귀띔했다.
“신석재 대표예요. 이번 섬바람 축제 운영을 맡은 행사대행사 컬쳐씨앤씨 대표. 우리 과에 있으면 과장님보다 자주 보게 될 사람이니까 얼굴 익혀둬요.”
그때 석재가 강은의 시선을 알아채고 먼저 다가왔다.
“처음 뵙는 분인데, 새로 오신 주무관님인가 봅니다.”
석재가 허리를 살짝 숙이며 손을 내밀었다. 강은도 따라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이강은입니다.”
“신석잽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군청에서 가장 일 많은 부서로···”
석재의 안쓰러운 눈빛에 강은 대신 채미가 어리광 부리듯 말했다.
“이번 주도 줄야근이에요. 힘들어 죽겠어, 정말.”
“안 그래도 요새 축제 때문에 일이 많으실 것 같아서 간식거리 좀 사왔어요. 나중에 드세요. 그리고 오늘도 야근 부탁드립니다? 저희가 아무리 밖에서 뛰어다녀도 주무관님이 서류를 올려주지 않으면 진행이 안되거든요.”
장난스러운 석재의 말에 채미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호호 웃더니, 핀잔을 주듯 말했다.
“간식으로 야근을 시키시겠다?”
“그렇게 들렸다면 정확하게 들으신 겁니다.”
사무실에 웃음이 번졌다. 강은은 뭐가 웃긴지도 모른 채 사람들을 따라 어색하게 웃었다. 그런데 웃다 보니 정말로 웃음이 났다. 강은은 언젠가 은하가 했던 말을 떠올랐다. 잘생긴 사람은 다 개그맨이야. 역시 은하의 말은 틀린 적이 없다. 잠시 후 김덕만 과장이 석재를 불러 회의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과장은 석재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는데 그 친밀함의 표현이 부럽게 느껴졌다. 그때 석재가 가져온 비닐봉지를 부스럭거리던 성수가 다가와 과자를 건넸다. 성수는 이번에 채미와 함께 섬바람 축제를 담당한 주무관이었다.
“어, 이거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과잔데!”
강은은 신난 목소리로 말했다. 성수가 내민 과자는 길쭉하게 포장된 초코 파운드 케이크였다. 회의용 다과를 볼 때마다 강은은 늘 이 초코 파운드 케이크를 찾았다. 과자를 발견할 때면 식탐이 발동해서 늘 두어 개는 입에 쑤셔 넣고, 다른 하나는 다이어리 사이에 슬쩍 끼워 가져오곤 했었다. 눈을 반짝이며 웃고 있는 강은에게 성수가 말했다.
“저는 치즈 크래커가 제일 좋더라고요.”
성수는 품에 크래커를 비롯해 과자를 종류별로 가득 안아 들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성수의 자리는 채미의 맞은편이었는데, 성수가 바카라상 서랍장을 여는 소리가 들리자 채미는 혀를 찼다. 강은은 성수가 이해됐다. 이 초코 파운드 케이크에 한해서는 어쩐지 자꾸 욕심이 생겼다. 강은은 박스를 뒤적여 두어 개를 더 챙겨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