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실수를 지적하는데 왜 내가 혼난 기분이 들까

by여운

집에 뭔가 고장 나서 사람을 부를 때가 있다.

내가 고칠 수 없는 일이니 전문가를 부른다. 그런데 가끔 작업을 시작하자마자 이런 말을 하는 분들이 있다.

"이걸 왜 이렇게 해놨지?"
"원래 이렇게 하면 안 되는데."
"전에 하신 분이 잘못하셨네요."

처음에는 진지하게 들었다.

'그래? 그럼 전에 했던 사람이 잘못한 건가?'

조금 더 듣다 보면 다른 생각도 든다.

'나 그때 잘못한 사람한테 맡긴 건가?'
'나는 그것도 모르고 여태 쓴 건가?'

심하면 사기라도 당했던 건 아닐까 싶다.

미용실에서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머리를 보더니 전에 한 시술이나 커트를 지적한다.

"이쪽을 왜 이렇게 잘랐지?"
"이렇게 하면 안 되는데."

말하는 사람은 아마 내게 뭐라고 한 게 아닐 것이다.

그런데 듣고 있는 나는 이상하게 혼난 기분이 든다.

전에 머리를 자른 건 미용사인데 왜 내가 혼난 것 같지?

생각해 보니 그 서비스를 선택한 사람이 나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 미용실에 갔고, 내가 그 사람에게 머리를 맡겼다. 결과가 잘못됐다는 말을 들으면 이전 작업자의 실력을 지적하는 말이 어느새 내 선택에 대한 평가처럼 들린다.

'그런 사람을 왜 골랐어요?'

상대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데 내 머릿속에서는 한 문장이 더 붙는다.

심지어 이런 생각도 한다.

'나는 왜 그때 이상한 줄 몰랐지?'

여기까지 가면 전에 서비스를 제공한 사람은 사라지고 내가 등장한다.

내가 좀 더 알아봤어야 했고, 내가 제대로 확인했어야 했고, 이상하면 내가 알아채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면 좀 억울하다.
내가 그걸 알았으면 사람을 왜 불렀겠나.
전문가가 아니니까 돈을 내고 전문가에게 맡긴 것이다.

배관을 맡길 때 내가 배관 전문가일 필요는 없다. 머리를 자르러 갈 때 커트 기술을 공부하고 갈 필요도 없다. 소비자가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는 없다.

그런데 전문가가

"이걸 왜 이렇게 해놨지?"
하고 말하는 순간, 나는 갑자기 그 분야의 시험을 보러 온 사람처럼 작아진다.

아마 여기에는 정보의 차이도 있는 것 같다.

나는 잘 모른다. 상대는 안다.
잘 모르는 분야에서 전문가가 단정적으로 "잘못됐다"라고 말하면 나는 그 말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더 쉽게 흔들린다.

물론 실제로 이전 작업에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그냥 작업 방식의 차이일 수도 있고, 지금 상태를 설명하다가 말이 그렇게 나온 것일 수도 있다. 왜 그렇게 말했는지는 사실 나도 알 길이 없다.

그러니 이제는 그 말을 듣자마자 결론부터 내리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지금 어떤 문제가 있는 건가요?"라고 묻는다.

조금 더 궁금하면 다시 묻는다.

"사용하는 데 문제가 있는 건가요, 아니면 작업 방식이 다른 건가요?"

그러면 이야기가 과거의 사람에게서 지금의 문제로 돌아온다. 누가 잘못했는지보다, 내가 진짜 알고 싶었던 것도 사실 그거였다. 지금 뭘 하면 되는지.

생각해 보면 나는 서비스에 돈을 지불하면서 결과뿐 아니라 안심도 사고 싶었던 것 같다.

고장 난 것은 고쳐지고, 엉킨 머리는 예쁘게 정리되고, 나는 "이제 괜찮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집에 돌아가고 싶다.

그런데 서비스를 받으러 갔다가 이전 선택까지 평가받는 기분이 들면 일이 하나 더 생긴다. 고장 난 것도 신경 써야 하고 내 과거의 선택까지 복기해야 한다.

피곤하다.

그래서 나는 전문가가 이런 식으로 말해주면 참 좋을 것 같다.

"기존에는 이렇게 되어 있네요. 지금은 이렇게 하는 게 더 좋습니다."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듣는 사람의 마음은 꽤 다르다.

"누가 이렇게 해놨어요?"에는 과거의 잘못이 있고,

"지금은 이렇게 하면 됩니다"에는 앞으로의 해결바카라이 있다.

나도 이제 전자의 말을 들으면 후자로 바꿔서 들으려고 한다.

'아, 전에 내가 잘못 선택했구나'가 아니라,

'아, 지금은 다른 방법이 있구나.'
그 정도면 된다.

모든 선택을 잘할 수는 없다. 내가 모르는 분야에서 전문가를 믿고 맡긴 것까지 내 실수로 만들 필요도 없다.

다음번에도 누군가 내 집의 무언가를 보며 말할지 모른다.

"이걸 왜 이렇게 해놨지?"

그러면 속으로 한마디 해야겠다.

그러게요. 저도 모르니까 선생님을 불렀죠.

그리고 겉으로는 담담하게 묻는다.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하면 되나요?"

문제가 해결되면 고맙다고 인사하고 나온다.

예전 같으면 집에 가는 내내 그 말을 곱씹었을 거다. 요즘은 현관을 나서기도 전에 다 잊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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