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약을 보관하는 서랍이 한 칸 있다.
자주 여는 서랍은 아니다. 매일 먹는 약이나 영양제는 따로 두기 때문이다. 이 서랍에는 가끔 필요한 약들만 들어 있다. 그래서 평소에는 있는지도 잊고 산다.
이 서랍을 여는 순간은 마음이 급할 때이다.
여유로울 때는 열 일이 없다. 아이가 갑자기 아프거나, 배가 아프거나, 어딘가 다쳤을 때 연다.
"해열제 어디 있지?"
"소화제 있었는데."
"밴드가 분명 여기 있었는데."
마음 급한 사람이 뭘 차분하게 찾겠나. 앞에 있는 거 꺼내고, 뒤에 있는 거 들추고, 파우치 열었다가 아무 데나 다시 쑤셔 넣고. 필요한 약 하나 찾으면 그걸로 끝, 서랍은 그 꼴 그대로 닫힌다.
그러니 다음에 열면 늘 한 단계 더 엉망이 되어 있다.
이번에도 오랜만에 열었다가 조금 놀랐다.
분명 처음엔 나름대로 정리해 뒀었다. 종류별로 나눠놓고, 뭐가 어디 있는지 기억도 했었는데. 그런데 몇 번 급하게 열었다 닫았더니 어느새 이 지경이 됐다.
정리를 시작했다. 파우치를 하나하나 꺼내서 열어보는데, 어라.
사용기한이 지난 약이 나왔다.
이상했다. 내 기억엔 분명 기한이 꽤 남아 있었는데.
'이거 아직 1년 정도 남았네.'
확인했던 기억까지 생생하게 나는데 그새 1년이 지나 있었다.
내가 서랍을 안 열어도 시간은 저 할 일 하고 있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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