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면서 신기하게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일이 하나 있다.
어르신들은 안내문을 자세히 읽지 않는다.
(물론 모든 어르신이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데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신청하거나 인증해야 하는 일을 하다 보면 비슷한 일이 꽤 자주 생긴다.
화면에는 분명히 적혀 있다.
‘생년월일 8자리를 입력하세요.’
그런데 6자리만 입력한다. 당연히 다음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몇 번을 해도 안 되니 결국 휴대폰을 들고 찾아온다.
“이거 왜 안 돼요?”
확인해 보면 휴대폰은 멀쩡하다.
8자리를 넣으면 된다.
신청 기간이 ‘내일부터’라고 적혀 있는데 오늘 접속해서 안 된다고 찾아오는 분도 있다. 때로는 화까지 낸다.
“왜 안 되는 거예요?”
나는 화면을 보다가 날짜를 본다.
“내일부터인데요.”
그러면 순간 조용해진다.
이런 일을 몇 번 겪다 보니 궁금해졌다.
왜 바로 앞에 적힌 글자가 안 보일까.
남 이야기만 할 것도 아니다.
친정엄마도 그렇다.
얼마 전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하다가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지 않는다며 나를 불렀다.
“이거 이상하다. 몇 번을 해도 안 된다.”
화면을 봤다.
‘동의’에 체크한 뒤 다음 버튼을 누르라고 적혀 있었다.
“엄마, 여기 동의 눌러야 돼.”
“했는데?”
안 했다.
다시 해본다. 또 안 된다.
“이 휴대폰이 이상한 것 같다.”
휴대폰은 억울하다.
나는 답답했다.
아니, 바로 밑에 써 있잖아.
처음에 못 볼 수는 있다. 그런데 안 되면 화면을 한 번 다시 보지 않나. 내가 뭘 빠뜨렸는지 찾아보지 않나.
나는 그게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졌다.
정말 당연한 걸까.
그래서 찾아봤다.
나이가 들면서 시력이 떨어져 작은 글씨를 읽기 어려워지는 것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기억이나 새로운 정보를 익히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 스마트폰을 얼마나 자주 사용했는지, 새로운 화면에 얼마나 익숙한지, ‘내가 이걸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영향을 준다고 한다.
특히 재미있었던 건 자신감이었다.
디지털 기기를 잘 다룬다는 자신감이 낮으면 작은 문제가 생겨도 불안을 크게 느낄 수 있다. 실수하면 무언가 잘못될까 걱정하기도 한다. 반대로 교육이나 도움을 통해 사용법에 익숙해지면 불안이 줄고 자신감은 높아진다는 연구도 있었다.
생각해 보니 나에게는 너무 익숙한 순서가 있다.
버튼이 안 눌린다.
그러면 위아래를 본다.
체크하지 않은 칸이 있는지 찾는다.
그래도 안 되면 입력한 내용을 다시 본다.
그래도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찾아본다.
나는 이걸 누가 가르쳐줬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당연히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쩌면 수십 년 동안 컴퓨터와 휴대폰을 쓰면서 나도 모르게 익힌 것인지 모른다.
실제로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스마트폰 앱 연구에서도 처음에는 앱을 직관적으로 사용하기 어려워하던 사람들이 몇 번 반복하자 훨씬 익숙해졌다. 기본적인 사용법을 교육하면 실수와 다른 사람의 도움도 줄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엄마가 휴대폰 탓을 하는 것도 조금 다르게 보였다.
나는 다음 버튼이 안 눌리면 ‘내가 뭘 빼먹었지?’부터 생각한다.
엄마는 ‘휴대폰이 왜 이러지?’부터 생각한다.
둘이 보고 있는 화면은 똑같다.
그런데 문제를 찾는 출발점이 다르다.
물론 그렇다고 안내문을 읽지도 않고 화부터 내는 것까지 이해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신청 날짜가 내일부터라고 적혀 있는데 오늘 찾아와 직원에게 화를 내는 건 나이와 별개의 문제다. 디지털 기기가 어렵다는 것과 다른 사람에게 언성을 높이는 것은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예전처럼 ‘왜 저걸 못 보지?’라는 생각만 하지는 않게 됐다.
우리는 새로운 기술을 너무 오래 써서 내가 익숙하다는 사실조차 잊고 사는지도 모른다.
엄마가 휴대폰을 들고 와서 물어볼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아니, 여기 써 있잖아.’
그런데 엄마도 젊었을 때 나를 보며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아니, 이걸 왜 몰라?’
나는 아직 스마트폰 화면에서 글자를 잘 찾는다.
대신 언젠가 내 딸들이 내 앞에 처음 보는 무언가를 내밀지도 모른다.
나는 한참 들여다보다가 말할 것이다.
“이거 이상한데? 고장 난 거 아니야?”
그러면 딸은 내 손에서 그것을 받아 들고 몇 번 툭툭 누르겠지.
그리고 아주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말할 것 같다.
“엄마, 여기 써 있잖아.”
그날에는 오늘의 엄마가 조금 생각날 것 같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