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누군가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모르는 것이 나오면 궁금하다. 바로 휴대폰을 들어 검색해 본다.
사람 사이에서도 그랬다.
같이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나 없이 커피를 마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괜히 신경이 쓰였다.
왜 나한테는 같이 갈 거냐고 안 물어봤지?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나만 모르는 이야기가 생긴 건 아닐까.
혹시 나 빼고 더 친해진 건가.
커피 한 잔 마신 것뿐인데 생각은 산으로 갔다.
나는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는 편이 좋았다. 모임이 있으면 가능하면 참석했고,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도 궁금했다.
특히 아이를 키우면서는 알아야 할 것이 더 많아졌다.
아이 친구 엄마들과 만나면 자연스럽게 아이들 이야기를 했다.
누구는 수학 진도가 어디까지 나갔다더라.
어느 학원이 좋다더라.
누구는 무슨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더라.
그냥 커피를 마시며 나눈 이야기인데 집으로 돌아오면 마음이 불안해졌다.
우리 아이는 지금 어디까지 하지?
이 정도면 늦은 건가?
뭐라도 하나 더 해야 하나?
갑자기 학원을 찾아보고, 문제집을 알아봤다.
문제집을 사기도 했다.
아이는 풀지 않았다.
문제집만 늘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이에게 필요해서 산 문제집인지, 내 불안을 잠재우려고 산 문제집인지 잘 모르겠다.
다른 아이의 진도를 몰랐다면 사지 않았을 문제집도 꽤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복직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자리가 줄었다.
일부러 인간관계를 정리한 것은 아니다.
그럴 시간이 없어졌다.
평일 오전에 아이 친구 엄마들과 온라인카지노를 먹을 수도 없고, 학원을 따라다니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일도 줄었다. 친구를 만나는 횟수도 자연스럽게 줄었다.
처음에는 내가 뭔가 놓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모르는 사이, 좋은 학원이 생긴 건 아닐까.
아이에게 필요한 정보가 오갔던 건 아닐까.
사람들도 나 없이 더 가까워지는 건 아닐까.
그런데 몇 달이 지났다.
아무 일도 없었다.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
내가 그 이야기를 알고 모르고의 차이뿐이었다.
오히려 이상한 변화가 생겼다.
마음이 편해졌다.
다른 집 아이가 수학을 어디까지 나갔는지 모르니 우리 아이가 느린지 빠른지 생각할 일이 줄었다.
누가 상을 받았는지 모르니 우리 아이도 뭔가 하나쯤 해야 하지 않을까 조바심 낼 일도 줄었다.
어느 학원이 좋다는 이야기를 못 들으니 갑자기 학원을 검색할 일도 줄었다.
아는 것이 줄었는데 걱정도 같이 줄었다.
아이와의 사이도 조금 편해졌다.
예전에는 아이를 보고 있다가도 다른 아이 이야기가 머릿속에 끼어들 때가 있었다.
누구는 벌써 저만큼 한다는데.
누구는 저런 것도 한다는데.
너도 한번 해보면 안 될까?
아이 입장에서는 억울했을 것이다.
자기는 그냥 자기대로 살고 있었는데 엄마가 어디선가 다른 아이 이야기를 듣고 와서는 갑자기 속도를 재기 시작했으니까.
요즘은 비교할 재료 자체가 많이 없다.
그러니 그냥 내 아이를 보게 된다.
잘하는 것도 있고 못하는 것도 있다.
하고 싶은 것도 있고 죽어도 하기 싫다는 것도 있다.
그게 전보다 덜 거슬린다.
생각해 보면 아이 이야기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SNS를 보다 보면 예쁘게 꾸미고 사는 사람이 보인다.
좋은 곳으로 여행을 간 사람도 있고, 비싼 음식을 먹는 사람도 있고, 나보다 훨씬 여유롭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다.
보기 전까지는 멀쩡했다.
그런데 보고 나면 갑자기 내 삶이 조금 초라해진다.
아무 문제없던 집이 밋밋해 보이고, 별생각 없던 주말이 심심해 보인다.
주말 맛집을 찾다가 그런 일이 생기기도 한다.
밥이나 한 끼 먹으러 갈 생각이었다.
검색을 시작한다.
맛집 주변에 갈 만한 곳이 보인다.
기왕 나가는 거 아이들이 체험할 만한 곳도 찾아본다.
조금 멀다.
그러면 하루 자고 오면 좋을 것 같다.
숙소를 검색한다.
어느 순간 나는 주말 점심 한 끼를 먹으려다가 1박 2일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가격을 본다.
창을 닫는다.
결국 아무 데도 안 간다.
맛집 하나 몰랐으면 평화로웠을 일이다.
정보가 많으면 선택하기 쉬워질 줄 알았다.
그런데 나에게는 반대인 경우도 많았다.
하나를 알면 하나가 더 궁금했고, 하나를 보면 다른 하나와 비교하게 됐다.
알수록 선택지가 늘었고, 선택지가 늘수록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이 괜찮은지 자꾸 확인하게 됐다.
나는 정보를 얻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가끔은 불안을 모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모든 정보를 알아야 마음이 편했다.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크고 있는지, 어디가 좋은지,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알아야 뒤처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요즘은 모르는 게 많아졌다.
누가 어느 학원에 다니는지 모른다.
사람들이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모른다.
누가 이번 주말 어디를 다녀왔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신기하게도 이제는 별로 궁금하지 않다.
내가 모르는 동안에도 내 하루는 별문제 없이 흘러간다.
아이는 자기 속도로 크고 있고, 사람들은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나도 내 삶을 산다.
모르는 것이 많아졌는데,
오히려 내 삶은 조금 더 잘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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