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참으면 되지

by여운

아이를 키우다 보면 가르쳐야 할 것이 끝도 없다. 밥 먹는 법부터 인사하는 법, 친구와 지내는 법, 돈 쓰는 법까지. 어른은 아이를 올바르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렇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다 보면 가끔 누가 누구를 가르치는 건지 모르겠을 때가 있다.

얼마 전 네 가족이 함께 휴가를 떠났다. 어른 8명에 아이만 일곱 명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아이들에게 3만 원씩 용돈을 줬다. 휴가 동안 먹고 싶은 간식이나 갖고 싶은 기념품은 그 돈으로 사기로 했다.

규칙은 간단했다. 원하는 것은 자기 돈으로 산다. 돈을 다 썼다고 빌리거나 엄마 아빠에게 사달라고 하지 않는다. 남은 돈은 집에 가져가도 된다.

아이 일곱 명에게 똑같이 3만 원을 줬는데 쓰는 모습은 제각각이었다.

어떤 아이는 간식을 넉넉하게 사서 친구들과 나눠 먹었다. 어떤 아이는 사고 싶은 것이 생길 때마다 남은 돈을 꼼꼼하게 계산했다. 자기 것을 사라고 준 돈으로 엄마를 위해 엄마가 좋아하는 커피를 사다 준 아이도 있었다.

돈을 쓰는 모습에도 성격이 보였다.

그리고 우리 둘째가 있었다.

둘째는 평소 간식을 아주 좋아한다. 그냥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다. 특히 젤리를 좋아한다. 어른들은 모두 비슷한 예상을 했다. '쟤는 간식으로 다 쓰겠구나.'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둘째는 돈을 쓰지 않았다. 조금 안 쓴 것도 아니다. 10원도 안 썼다.

여행지에서 알록달록한 젤리가 잔뜩 진열된 가게도 만났다. 둘째에게는 상당히 위험한 장소였다. 평소 같았으면 눈부터 돌아갔을 것이다.

그런데 구경만 했다. 그리고 나왔다. 나는 조금 놀랐다. 아니, 많이 놀랐다.

여행이 끝날 때까지 둘째의 3만 원은 그대로였다. 집에 돌아오자 둘째는 10원도 줄지 않은 3만 원을 자기 저금통에 넣었다.

궁금해서 물었다.

“너 젤리 엄청 먹고 싶었을 텐데 어떻게 참았어?”

둘째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냥 참으면 되지.”

순간 할 말이 없었다.

그 유명한 ‘Just do it’을 일곱 살짜리에게 들을 줄은 몰랐다.

생각해 보면 어른은 참는 것도 복잡하다.

살까 말까 고민한다. 필요하냐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비슷한 게 집에 있는지 생각한다. 가격을 확인한다. 오래 쓸 거라는 핑계도 만들어본다. 여기서만 살 수 있다는 말까지 붙으면 마음은 더 복잡해진다.

그러다 결국 산다. 그리고 말한다.

“그래도 잘 샀어.”

나도 이번 여행에서 사고 싶은 게 있었다.

제주도에서만 판다는 작은 손가방이었다. 귀여운 스누피가 그려져 있었다. 크기도 딱 좋았다. 가방을 들고 거울 앞에 섰다. 괜찮았다. 다시 내려놨다가 또 들었다. 역시 괜찮았다.

여행지에서만 살 수 있다는 사실까지 나를 부추겼다. 평소 같았으면 ‘여행 기념인데 뭐’ 하고 샀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갑자기 멀뚱멀뚱 있는 둘째가 보였다.

젤리를 그렇게 좋아하는 일곱 살짜리도 알록달록한 젤리 가게에서 그냥 나왔다.

그리고 말했다.

그냥 참으면 된다고.

갑자기 가방을 들고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몸을 돌리고 있는 내가 조금 부끄러워졌다. 결국 가방을 내려놨다.

사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그냥 참았다.

집에 와서도 그 가방이 없어서 불편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귀엽기는 했다. 그래도 없어도 잘 산다.

아이들에게 용돈을 준 건 돈 쓰는 법을 조금씩 배워보라는 뜻이었다. 사고 싶은 것을 다 살 수는 없고, 가진 돈 안에서 선택해야 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그런데 여행이 끝나고 보니 아이들만 배운 것은 아니었다.

일곱 아이는 같은 3만 원을 가지고도 전혀 다르게 썼다. 나눠 먹는 아이가 있었고, 계산하는 아이가 있었고, 엄마의 커피를 사는 아이가 있었다. 그리고 좋아하는 젤리를 앞에 두고도 한 푼도 쓰지 않은 아이가 있었다.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자꾸 뭔가를 가르치려고 한다. 조금 참아라. 아껴 써라. 충동적으로 사지 마라.

그런데 아이들은 가끔 설명도 없이 해낸다.

어른인 나는 미니멀라이프를 한다며 물건을 줄이고, 소비를 줄이겠다고 다짐하고, 필요와 욕구를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귀여운 스누피 가방 하나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일곱 살 짜리는 훨씬 간단했다.

그냥 참으면 되지.

그날은 엄마가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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