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면서 외국인을 만날 일이 많다. 처음에는 언어가 가장 큰 장벽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나를 가장 당황하게 만드는 건 영어 실력이 아니라 글씨체다. 분명 영어로 적혀 있는데 읽을 수가 없다.
숫자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외국인이 쓰는 1과 7, 4와 9는 한국인이 보기엔 헷갈릴 때가 많다. 하지만 몇 번 겪고 나면 대충 감이 온다.
문제는 알파벳이다. 같은 A, 같은 G, 같은 R인데 내가 알던 모양과 너무 다르다. 한참 들여다봐도 모르겠어서 다시 한번 물어봐도 발음도 알아듣기 힘들다. 분명 영어인데 왜 암호처럼 느껴질까.
신기한 건 반대의 경우다. 한국 사람이 급하게 휘갈겨 쓴 글씨는 꽤 잘 읽는다. 획이 뭉개져도 대충 무슨 뜻인지 알겠다. 아마 수십 년 동안 같은 방식의 글씨를 보고 살아서일 것이다.
문득 예전 해외여행 때 일이 떠올랐다. 숙소 체크인을 하면서 서류를 작성한 적이 있었다. 나는 최대한 또박또박 정자로 썼다. 한국에서라면 누구나 쉽게 읽을 만한 글씨였다. 그런데 직원이 내 글씨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다시 물어봤다. 몇 글자는 아예 못 알아봤다. 그때는 조금 의아했다.
'이렇게 또박또박 썼는데 왜 못 읽지?'
솔직히 속으로는 답답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알겠다. 그 직원도 나와 같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분명 영어인데 낯선 모양. 분명 읽을 수 있는 글자인데 익숙하지 않은 필체. 서로가 같은 언어를 쓰고 있으면서도 다른 방식으로 배우고 다른 방식으로 써온 결과였다.
생각해 보면 참 재미있는 일이다. 영어는 만국공용어에 가깝다고 한다. 전 세계 사람들이 같은 알파벳을 사용한다. 그런데 막상 손으로 쓰기 시작하면 나라별로, 사람별로 완전히 다른 언어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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