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면서 생긴 능력이 있다. 사람들은 엄마의 촉이라고 부른다. 나는 그게 촉이라기보다 아이를 키우면서 생긴 다양한 사건사고 이후에 생긴 레이더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한 번 놀라면 사람은 달라진다. 몸이 먼저 기억한다.
예전에 공원에서 아이를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남편과 나는 서로가 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아이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주 짧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몇 분은 길었다. 이름을 부르면서 뛰어다녔다. 놀이터를 보고, 벤치를 보고, 화장실 쪽도 봤다. 머릿속은 이미 가장 나쁜 장면으로 가득했다. 다행히 아이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 하지만 내 안에서는 뭔가 끝나지 않았다.
또 한 번은 주차장을 지나는데 우리 앞으로 차가 빠르게 지나간 적이 있었다. 정말 가까웠다. 아이 손을 잡고 있었는데도 심장이 내려앉았다. 차는 지나갔고 우리는 그대로 서 있었지만, 그 장면은 잊히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도 횡단보도를 건널 때 긴장한다. 신호가 초록불이어도 한 번 더 본다. 아이 손을 더 꽉 잡는다. 아이는 “엄마 차 없어.”라고 말하는데 내 손은 쉽게 힘이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얼마 전, 큰아이가 학원 다녀오는 길에 낯선 사람이 말을 걸었다고 했다. 느낌이 이상해서 아이는 도망쳤다. 그런데 길을 한참 갔는데도 그 사람이 또 나타났다고 했다. 아이는 무서워서 더 빨리 걸었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는데 등줄기가 차가워졌다.
며칠 뒤 학교 공문이 왔다. 가까운 학교에서 비슷한 수법의 아동 납치 미수 사건이 있었다고, 아이들에게 각별히 주의시켜 달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공문을 오래 봤다.
아무 일도 없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그런데 엄마 마음은 “끝났다”로 끝나지 않는다. “이번에는 괜찮았다”가 된다.
그래서 아직도 큰아이 혼자 놀이터 가는 건 허락하지 않는다. 친구들끼리만 약속 잡는 것도 보내지 못한다. 아이는 컸다. 혼자 학원도 가고, 제법 의젓하다. 그런데 내 마음은 아직 공원 어딘가에서 아이 이름을 부르고 있다.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너무 불안한 엄마일까.
그런데 생각해 보면 엄마의 신경은 날카로운 게 아니라 넓어진 것이다. 내 안전 범위 안에 다른 사람이 들어온 것이다. 그 사람이 다치지 않기를, 무섭지 않기를, 무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하루 종일 켜져 있는 상태다.
아이들은 자란다. 점점 손을 덜 잡고, 먼저 걸어가고, 혼자 세상을 만나러 간다.
그런데 엄마의 레이더는 잘 자라지 않는다.
아이는 초등학생이 됐는데 내 마음은 아직 주차장 입구에 서 있고, 횡단보도 앞에 멈춰 있고, 공원에서 아이 이름을 부르고 있다.
아이들은 세상을 향해 걸어간다.
엄마는 위험 쪽을 본다.
아마 엄마의 사랑은 그런 모양인지도 모른다.
계속 불안하고, 자꾸 긴장하고, 아무 일 없기를 바라며 같은 길을 수백 번 걷는 것.
그리고 매번 속으로 생각한다.
오늘도 무사해서 다행이라고.
정말 다행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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