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처럼 뿌리 내리는 일상의 온도

by옫아

어느 날 펼쳐 들었던 박정수 작가의 《좋은 기분》은 작고 다정한 아이스크림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느껴지는 달콤하고도 단단한 온기를 머금고 있었다. 매일 정성스럽게 고소하고 달콤한 맛을 빚어내는 저자의 일상처럼, 바카라 속에 담긴 문장들은 붕 떠 있던 마음을 가만히 내려앉혀 주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마음의 겹에 오래 머무른 세 가지 장면이 있다.


첫째는 동물의 성장과 식물의 생장을 대조하던 순간이었다. 세상은 늘 눈에 보이는 덩치를 키우라고, 남들보다 빠르게 체세포를 늘리며 앞으로 달려 나가라고 재촉한다. 하지만 식물의 생장은 다르다. 식물은 겉모습을 급격히 키우기보다 자신이 서 있는 그 자리에서 필요한 속도로 서서히, 그리고 아주 깊게 아래로 뿌리를 내린다. 타인의 속도나 눈에 보이는 외형적인 성장에 조급해지려 할 때, 이 식물적 생장의 시간은 나에게 묵직한 울림을 주었다. 중요한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덩치가 아니라, 내 안으로 얼마나 깊숙이 내실을 다지며 단단해지고 있느냐는 사실이었다.


둘째는 '자신의 삶을 자신을 삶으로 만드는 여정'을 추구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여기서 '자신을 삶'이라는 말은 단순히 관념적인 삶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타인이나 세상에 내맡기지 않고 '스스로를 제대로 일으켜 세워 살아가는(生) 행위' 그 자체였다. 남들이 정해둔 기준이나 편안한 관성에 떠밀려 수동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일상 속에서 나 자신을 똑바로 직시하고 마침내 스스로를 살아내게 만드는 것. 거창한 결과보다도 내 삶 안에서 나라는 존재를 끊임없이 일으켜 세우고 마침내 '살아가는' 그 능동적인 여정 자체가 가슴 깊이 다가왔다.


셋째로, 우리는 이미 가진 것 안에서 충만한 행복을 발견해야 하며 매일 자기 안에서 움트는 의미를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는 문장이 가슴에 가만히 와닿았다. 행복은 늘 저 멀리 있는 어떤 무언가를 새로 획득해 와야만 완성되는 것이라 착각하곤 했다. 그러나 진정한 충만함은 이미 내 손에 쥐여 있는 작고 소중한 것들을 재발견하는 시선에서 출발한다. 매일 아침과 저녁, 내 일상이라는 정원 안에서 조용히 싹을 틔우는 작은 의미들을 조심스레 들여다보고 아껴주는 마음이야말로 나를 진짜 '좋은 기분' 속에 살아가게 하는 힘이었다.


돌아보면 세상의 조급한 속도에 치여 마음이 서석거릴 때마다, 나는 외부에 있는 무언가를 채워 넣으려 안달하곤 했다. 그러나 이 바카라은 외연을 확장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내 곁에 이미 깃든 소중함을 알아보는 일임을 잔잔히 알려준다. 타인의 속도와 거대한 덩치에 흔들리지 않고 식물처럼 조용히 아래로 깊어지는 시간, 외부에 흔들리지 않고 매일 나 자신을 제대로 일으켜 단단히 살아내는 의지, 그리고 이미 손안에 쥐어진 작은 기쁨과 의미들을 아침저녁으로 다정하게 바라보는 시선. 아이스크림을 정성껏 빚어내듯 매일의 일상을 꾹꾹 눌러 담아 온기로 채우는 저자의 삶처럼, 나 역시 오늘 내 안에서 조용히 움트는 의미의 싹을 가만히 보듬어본다. 이미 내 안에 풍요로움이 가득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은 채, 오늘 하루라는 고유한 계절을 오롯이 내 힘으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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